- 최우성
- 조회 수 3733
- 댓글 수 4
- 추천 수 0
산다는 게 뭔가. 사람 만나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를 만나서 희희덕대고 수다 떨고 사랑하고
미워하는게 당연히 A급이고, 그렇게 지지고 볶는 걸 글로 쓰거나
그림이나 음악으로 옮기는 건 당연히 B급인 것이다.
- 조영남, 어느날 사랑이 -
내시경, 초음파, 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를 헤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본인은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의료진이 특별한 문제를 찾지 못하니,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라고, 왜 이상이 없다는데 그러냐며 환자에게 짜증을 냅니다.
어머니는 무엇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했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되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체했습니다. 형은 왜 병을 치료하지 못하느냐며 의사를 소개한 저에게 화를 냅니다. 그렇게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한달에 두 번을 연속...그게 2007년 4월이니 벌써 6년 전 일입니다.
첫 번째 해결책은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병원을 옮겼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서울시에서 새로 설립한 노인종합병원으로 옮겼는데 아주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채광이 좋고 요리놀이, 그림치료, 노래교실 등 각종 프로그램이 상설화 되어 있으며, 공동간병인이 깔끔하게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깨끗한 환경과 운영 프로그램, 간병인의 서비스에 만족해 하던 어머니는 두달 후 오히려 10kg 이나 살이 쪄서 퇴원했습니다. 조금 황당했습니다. 노인병원에서 드시던 약은 저희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었기 때문입니다. 먹던 약은 그대로인데 환경변화로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심인성 질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퇴원 후 시간이 지나자, 또 다시 소화를 못시키는 증상이 재발되었고, 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약의 변경입니다. 혹시나 해서 다른 대학병원에서 병력을 얘기하고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 약을 복용하자, 신기하게도 바로 증상이 가라앉았습니다. 약을 확인해보니, 항우울제가 섞여 있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긍정적이셨던 어머니께 우울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약을 복용하다가 2년 전부터 다시 새로운 증상이 발현되었습니다. 웃음이 사라지고 화를 많이 내며, 식사를 하셨는데도 먹지 않았다고 애기하고, 몸의 통증을 자주 호소합니다. 자식들은 모두 분가하고 거동은 불편한데, 혼자있는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치매 초기증상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 번째 해결책은 센터의 이용입니다. 아침 9시가 되면 어머니는 나갈 차비를 합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데이케어센터(노인주간보호센터) 봉고차가 어머니를 모시러 오기 때문입니다. 센터에 가면 요일마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데, 2년째 이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어머니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알차고 재밌는지에 대해서, 자원봉사자들의 성의있는 태도와 발 맛사지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 수녀님들의 정갈하고 꼼꼼한 시설관리에 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나물반찬이 나오는 점심식사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자식에 대해 섭섭한 애기를 하면, 같이 공감해주고 맞장구 쳐주는 재미가 쏠쏠하신가 봅니다. 센터에서 같이 의지하고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좋다며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들이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웃음기 없이 짜증만 내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환경의 변화도 중요하고, 적절한 약의 선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는 역시 사람들입니다. 센터 이용결과가 좋은 것도, 프로그램이나 식사보다는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센터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와 절친이신 어르신께 둘째 아들이라고 인사를 드리자, 제 손을 잡으시고 앞뒤 없이 말씀하십니다.
“아유.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에요.”
센터를 나오는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마음맞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낄낄대고 히히덕대며, 아주 수다스럽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것이 어머님께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사는 거, 별거 있나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577 |
꿀처럼 달다 ![]() | 최우성 | 2013.01.27 | 3641 |
1576 | 사랑, 그 다양함에 대하여 | 부지깽이 | 2013.01.24 | 7199 |
1575 | 농사꾼 말고 농부로 살고 싶은 이유 | 김용규 | 2013.01.24 | 5263 |
1574 | 프로가 된다는 것 [1] | 문요한 | 2013.01.23 | 4355 |
1573 |
책 읽는 인생 예찬 ![]() | 승완 | 2013.01.22 | 3965 |
» | 사람들 [4] | 최우성 | 2013.01.21 | 3733 |
1571 | 생명을 키우는 것은 성실함이란다 [1] | 부지깽이 | 2013.01.18 | 5936 |
1570 | 인간 폭력성에 대한 성찰 | 김용규 | 2013.01.17 | 4655 |
1569 | 프리에이전트의 DNA | 문요한 | 2013.01.16 | 3753 |
1568 |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주는 교훈 ![]() | 승완 | 2013.01.15 | 5625 |
1567 | 행복한 질문 | 최우성 | 2013.01.14 | 4818 |
1566 |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에 대하여 [1] | 부지깽이 | 2013.01.11 | 8008 |
1565 | 경험에 머물지 마라, 체험이 되게 하라! | 김용규 | 2013.01.10 | 5293 |
1564 | 소유에서 존재로 | 문요한 | 2013.01.09 | 6168 |
1563 |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 ![]() | 승완 | 2013.01.08 | 4281 |
1562 |
나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 ![]() | 최우성 | 2013.01.07 | 4307 |
1561 | 공부란 무엇인가? [1] | 부지깽이 | 2013.01.04 | 9709 |
1560 | 이만하면 족하다 [1] | 김용규 | 2013.01.03 | 5025 |
1559 |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문요한 | 2013.01.02 | 3715 |
1558 |
하나 됨 ![]() | 승완 | 2013.01.01 | 40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