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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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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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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4일 00시 16분 등록

IMG_0048 - 복사본.jpg
산방 처마의 말벌들은 10월이면 대부분 그 사회를 해체할 것이다.
자연에서 가을은 준엄한 계절이다.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억새가 은색의 고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억새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이제 분명한 가을입니다. 나는 가을의 증거로 늘 천변의 억새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혹여 그대도 도심을 벗어날 일이 있거든 꼭 한 번 옆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대 곁에도 가을을 증거하는 생명의 작용들로 무수할 것입니다.

 

뻐꾸기 소리 어둠 속에서 다시 청아해지기 시작한 것. 여름 풀들이 어느새 다투어 씨앗을 날리기 시작한 것. 작은 새들이 말라가는 열매를 시식하느라 떼로 날기 시작하는 것. 신갈나무 도토리 속을 파고 알을 낳아 떨어뜨리던 도토리밤바구미의 활동이 끝나가는 것. 밤송이가 스스로 벌어져 알밤을 떨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잎새에서 더는 생장의 위세를 볼 수 없는 것. 이런 증거를 앞세우고 숲은 곧 가을 빛 물을 들이고 낙엽으로 겨울 이불을 만들 것입니다.

 

숲에 있어보면 가을이 참으로 준엄한 계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을이면 숲에서는 한 해 동안 이룬 성장의 흔적들이 나신처럼 드러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상록수를 제외한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그러고 나면 한 해 동안 살아낸 그들 모두의 삶이 보입니다. 어떤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또 어떤 나무가 얼마나 한눈을 팔았는지. 또 다른 어떤 나무가 어디에 상처를 입고 버거워했는지, 또 누가 하루하루에 밀려 그 모양의 균형을 잃었는지……

 

숲의 가을은 그래서 성찰의 시간입니다. 모든 식물들이 제 삶의 균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절이 아마 가을일 것입니다. 균형을 잃은 가지는 하늘의 빈 공간을 새롭게 찾아내는 시간이 될 것이고, 뜻하지 않은 상처를 입은 가지는 스스로 치유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균형 잡힌 모양을 향해 내년 봄 새롭게 뻗을 가지의 방향도 보이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바로 이 계절 가을입니다.

 

억새가 은색의 고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가을. 그 가을이 오면 나 역시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하루하루에 급급해 삶이 철학을 지우게 한 것은 아닐까? 내가 내 길을 잃어 지향을 닫은 날이 많지는 않았는가? 나의 지향을 되찾기 위해 나는 무엇을 새로이 해야 할까? 숲의 나무들처럼 그렇게 나를 점검하게 됩니다.

 

이 가을 나는 이렇게 써둡니다. 삶이 철학을 지우게 하지 말자. 나의 지향이 내 삶이 되도록 하자.

IP *.229.13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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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9.24 00:48:58 *.190.122.223
늘 형님의 글은 반갑습니다.

이 이른 새벽 늦은 밤에 들러 또 님의 글을 읽습니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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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9.25 22:46:45 *.46.22.6
나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 ~처럼이 대세인가 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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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처럼
2009.09.24 07:50:59 *.168.105.30
철학이 삶을 지배할때는 배고픔을 이겨내는 자기만의 방식은 있어야 겠죠. 그것이 뭘까? 항상 고민합니다.

햇빛처럼님의 뒤를 잇는 그늘처럼입니다.

부지런하신 햇빛처럼님입니다.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습니다.

게으른 그늘처럼도 가끔 댓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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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9.25 08:09:12 *.64.107.166
^_^

반갑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에서 어두운 그늘이 아니라 한 여름의 햇빛이 너무 강할 때 사람들을 쉬게 만드는
느티나무 그늘을 연상하게 만드시는 분이군요..

칭찬의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늘님의 댓글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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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9.25 22:50:33 *.46.22.6
철학이 삶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저는 다만 삶이 철학을 지우게 하지 않도록 애쓰려 합니다.^^
댓글은 지금 '~처럼' 열풍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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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9.24 08:10:05 *.108.48.236
햐! 이 구절이 기가 막히네요!^^

"균형을 잃은 가지는 하늘의 빈 공간을 새롭게 찾아내는 시간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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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9.25 22:53:26 *.46.22.6
부끄럽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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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처럼
2009.09.25 15:36:07 *.59.199.151
제 삶의 균형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님이 계신 산방이 자꾸 더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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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9.25 22:55:59 *.46.22.6
저는 언제나 어디서나 가을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아까움의 절정, 만추가 되면 산방 뒷 숲의 단풍을 담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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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9.09.28 10:34:00 *.43.130.57

 이제야 알았습니다. 용규님의 마음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됨인지
그리고  삶을 지배하는 그 힘이 어디로 부터 찾아온 것인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안았습니다.
돗자리를 펴놓고 책도 읽고 점심도 먹고 그리고 글도 조금 써 보았습니다.
그곳은 제자리인양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옛날 예적 마을같았어요.
4살꼬맹이와  그의 언니 3학년 짜리와  나눈 대화도 유쾌했어요.
아직도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며
우리는 필살기 프로잭트의 (사부님 프로잭트명) 큰 그림이 완성되어감에
서로가 행복했습니다.

괴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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