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에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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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에톤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동기 애정결핍을 상쇄하려는 인정욕구’라 풀이할 수 있는 심리학적 개념이라는데 사람들은 파에톤 이야기를 끌어와 심리학적 전문성에 잇대어 놓은 모양이다. 가만히 노려 본다. 애정 결핍이라… 애정이 완성되어진 인간은 과연 존재할까. 애정결핍 아닌 인간이 어디 있는가, 결핍 없는 인간이 있느냐 말이다. 더 이상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인간은 사람이 아닐 것인데 결핍, 미완성, 유한, 단명, 부자유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특징을 부정하는 것같아 거북하다. 전문성에 들어찬 허울좋은 말들 속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분이 없다. 또, 세상 사람들은 파에톤의 이야기를 두고 말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신을 알현하게 되었을 때, 즉 정신적으로 신을 대할 만큼의 성숙이 없는 상태에서 신을 만나게 된 사람의 대가는 치명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내지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 보지 마라’, ‘역량을 길러 도전해라’, ‘신중함이 실패를 줄인다’, ‘경험을 다져야 한다’, ‘상황을 알고 처신해라’ 등의 듣기 언짢은 해라체를 써가며 제 자신도 실천하지 않는 좋은 말을 죄다 끌어 붙여 교훈으로 삼는다. 사람들아, 그것이 바로 결핍이다. 서두가 길다. 그럼 이제 파에톤이라는 자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전해지는 알아보자. 이야기가 궁금하신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요약한다.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와 오케아니스인 클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자신과 연배와 나이가 비슷한 제우스의 아들 에파포스(제우스와 이오의 아들임) 에게 지기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도 신의 아들이라는 자랑을 하게 되는데 ‘니 까짓게 무슨 신의 아들’이냐는 조롱을 듣고는 깊은 실의 빠진다. 파에톤은 곧 바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사실확인을 요구했고 어머니는 진실을 위해 아버지인 태양신을 찾아 갈 것을 권유한다. 파에톤은 우여곡절 끝에 태양신 궁전에 다다르게 된다. 아들을 만난 태양신 헬리오스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면서 그 증거로 파에톤의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스틱스 강에 맹세했다. 파에톤은 자신의 소원 즉, 태양신이 모는 태양 수레를 끌어보겠다는 소원을 들어 줌으로써 자신의 아버지임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태양신은 그 소원만은 거두어 달라고 회유하지만 스튁스 강의 맹세는 번복할 수 없었고 결국 그 소원을 들어 주게 된다.
파에톤은 가슴이 벅찼다. 그 수레에 딸린 네 마리 천마들은 숨쉴 때마다 불길을 토해냈고 눈부신 근육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고삐를 건네 받고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환희에 가득 찼고 이내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아올라 구름 장막을 찢으며 달렸다. 곧이어 천마들은 익히 알던 궤도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었고 파에톤이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높게 하늘을 날면 대지는 몹시 추워 떨었다. 또한 너무 낮게 몰아 대지는 불에 탈 지경이었다. 이때부터 아프리카는 사막이 되었고 이디오피아 사람들의 피부는 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강물과 바다마저 말라버릴 지경이었다. 대지는 파멸을 맞았고 불바다가 되었다. 결국 유피테르(제우스)가 사태 수습에 나서 벼락 하나를 집어 태양 수레 마부석을 향해 날렸다. 파에톤은 불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고 대지의 불길은 다시 잡혔다. 이후 ‘저녁의 나라’ 요정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돈,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신기한 것은 이날 하루 태양이 사라졌기 때문에 대지의 타오르던 불길들이 세상을 비추었다고 한다.
파에톤의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젠체하며 들려 주는 교훈은 나에게 매력 없다. 시시하다. 위의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다. 사람들의 생각과 조금 다르지만 나는 다음의 이유로 이 신화가 좋다.
첫째, 파에톤은 자신이 그리던 그 꿈의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다. 오기와 열등감에 사로 잡힌 인간, 그러나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신의 아들’이라는 본 모습이 숨겨져 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의 아들이 대지와 세계를 살려내는 태양을 주무르게 되었다. 단 하루면 어떤가. 끝이야 어찌되었든 그가 소망해마지않는 단 한 장면을 이루고야 만다. 스스로 꿈의 인화성을 일상에서 죽여 가며 자발적 복종의 노예가 되어 있는 현대 소시민과는 과연 유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항상 꿈을 꾼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 그리 되리라고 생각하는 강력한 상상의 절차는 매번 생략한다. 안된다는 생각과 말이 하루 중 팔할을 지배한다. 안된다는 말은 실은 힘이 들겠다는 말이겠고 힘이 든다는 것은 편한 일상에 침입해서는 안되는, 스스로 닫아 놓은 가치다. 환기해야 한다. 강력한 꿈의 상상이 없다면 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는 하지 말아야 할 백가지 이유에 매장된다. 하면된다식의 대중 호도와 국가의 가치에 개인을 편입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자는 취지는 아니다.
둘째, 신만이 가진 권리, 특권을 가진 자만이 눌릴 수 있는 것. 그 금기, 즉 우리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이 세상 모든 권위에 대한 통렬한 똥침이다. 아득하다고 생각되는 권위 위에 그 반대의 권위가 항상 있음을, 그리고 그 반대의 권위는 작은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래서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태양신의 그 자리는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은 꽤 의미가 있다. 마지막 말을 새겨 보자. ‘신기한 것은 이날 하루 태양이 사라졌기 때문에 대지의 타오르던 불길들이 세상을 비추었다고 한다.’ 파에톤의 실패에 초점을 맞춘 모든 인간은 번개 불에 녹아내린 파에톤의 육신이 안타깝기 그지 없겠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그의 피를 보며 ‘신의 일’을 수행한 한 인간의 그 찰나에 카타르시스적 쾌감을 느꼈을 게다.
그리고 실패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성공한 사랑과 성공한 혁명은 권위와 친밀해진다. 한 때 뜨거웠던 정념이 매력을 잃어버리고 시시해지는 지점이다. 실패한 사랑과 혁명만이 시와 문학의 재료가 되는 것과 같이 실패로 끝난 파에톤의 이야기는 우리 시심을 풍요롭게 한다. 파에톤의 성공을 가정해 보자. 그때부터 파에톤은 태양신 마차를 끌고 신의 영역에 들어간 사람이 된다. 공식주의가 지배하게 되고 권위를 가지게 된다. 파에톤은 제도 안에서 행복하되 ‘변신이야기’의 문학적 자리는 저 아래로 떨어진다. 재미없는 신화가 인구에 회자될 리 만무하다.
셋째, 제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화끈한 한판이다. 광란에 가까운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 서툰 아마추어적인 광기는 결코 때묻은 프로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태양이 없어진 하루에 세상을 비추게 한 불길을 만든 점은 이제껏 프로였던 태양신이 하지 못한 일이지 않았는가. 질기고 비루한 생을 사는 나와 같은 소시민의 삶은 자신을 몽땅 태우는 그 화끈한 한판에 뻑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화끈함의 마지막은 곧바로 죽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죽기 직전까지 그 화끈함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장할 기쁨이다. 우리의 과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자신의 기쁨을 위해 연소시키는 일이다.
이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에게는 태양마차를 몰아 본 기억이 있다. 산을 무척 좋아했으나 산에서 사고가 생겨 다리가 부러졌고 뼈가 여러 조각이 나서 걸어 다니는 것도 불가능 할지 모른다고 했었다. 그러나 잘 극복해서 걷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지구의 용마루에까지 오르게 됐다. 가기 전에 회사에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사표를 갖고 다니다가 곡절을 겪고 난 뒤 나의 뜻이 받아들여져서 네팔 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나의 해프닝이 파에톤과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주변을 기웃거리는 비주류의 삶과 자신에게 꿈은 있으나 현실의 벽을 가늠하고는 자괴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결국 이루어내고는 찰나지만 작은 꿈이 실현되는 맛을 느껴버린 소시민. 비록 어줍잖고 잘난 것 없지만 나는 나의 삶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쓴다.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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