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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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옷이 없어 고민하는 살찐 아들이 안쓰러우셨던지 어머니께서 바지를 한 벌 사다주셨습니다. 상설할인매장에서 사셨다는데, 가격도 적당하고 만듦새도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이즈가 넉넉해서 편안했습니다. ‘어떠냐?’고 물으시는 어머니께 ‘괜찮다’라고 답한 것이 큼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답하는 순간에는 몰랐습니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하는 저를 반긴 것은 ‘열한 벌’의 바지였습니다. 거실 쇼파 위에 거대한 산처럼 쌓여있는 바지들을 보는 순간 저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괜찮다’는 제 대답은 ‘더 사주시면 좋겠다’는 말로 자연스럽게 번역되어 어머니께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퍼줘도 아깝지 않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인가봅니다. 그래도 열한 벌의 바지는 좀 많지요?
어머니는 우선 한 벌을 세탁소에 맡겨 길이를 줄여다 주셨습니다. 기존에 제가 입던 바지 중에 하나를 들고 가서 그 길이에 맞춰 줄여달라고 하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원래 입던 바지에 맞춰서 길이를 줄였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잘 맞았습니다. 여기서 끝냈어야 하는데, 특유의 고약한 버릇이 다시 발동했습니다.
이리저리 보다보니 길이가 조금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지를 입은 채로 가족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답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조금 짧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묻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품은 의문이 쉽게 가라앉을 리 만무합니다. 결국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전문가는 다름 아닌 세탁소 아저씨입니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바지 11벌이 걸린 일이니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 밖에요.
주섬주섬 챙겨서 세탁소로 나섰습니다. 어쩐지 조금은 창피한 마음을 누르며 세탁소에 들어서서 오그라드는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이 바지 길이 괜찮은가요? 제게 잘 맞는 건가요? 짧거나 길지 않아요?”
아저씨는 잠시 멈칫 하더니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입는 사람 마음이지요. 바지 길이에 정답이 있겠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매번 내가 모르는 정답과 비법이 있지 않을까 마음이 바쁘고, 분주합니다. 남이 찍어주는 모범 답안을 놓칠 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혼이 빠질 지경입니다. 결국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시도 때도 없이 흐트러지는 마음을 오늘도 추슬러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봅니다.
“내 삶의 정답은 내가 정한다.”라고......
당분간 바지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더불어 열한 벌의 바지를 골고루 잘 입으려면 잠시 살 뺄 생각도 접어둬야겠습니다. 늘어만 가는 뱃살에 교묘한 핑계를 하나 붙여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여러분의 월요일도 제 것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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