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2918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산은 나와 함께 사는 개다. 얼마 전 일곱 마리 강아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버리지 못할 것 같은 욕망들을 버려 어른이 되었다. 나는 요즘 그에게서 삶을 배운다.
산은 개입니다. 그는 약 1년 전에 이 산방으로 바다와 함께 들어와 나의 식구(食口)가 되었습니다. 자라면서 산은 바다를 제압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바다에 비해 다소 무식한 느낌마저 주는 개였습니다. 먹을 것 앞에서는 무엇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바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는 법이 결코 없는 개였습니다. 바다는 항상 산이 배부르게 먹을 때까지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바다는 뼈다귀나 생선 대가리라도 생기면, 산이 눈 앞의 그것에 혼을 빼앗긴 사이 잽싸게 물어다가 이곳 저곳에 숨겨두고 산 몰래 먹기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산에게 들키면 그의 저축은 수포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산방에 올 때 산은 바다의 오빠였으나, 내가 출타한 어느 날 아빠의 지위를 얻는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바다가 그의 아이 여덟을 나았고 현재 일곱 마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바다의 배가 불러오고 출산일이 가까워짐을 느꼈을 때, 나는 바다가 새끼들을 낳아 기를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형님을 대목장으로 모시고 내가 조수가 되어 만든 원목 한옥구조의 집입니다. 역시 내가 부재중인 어느 날 바다는 자신의 최대 젖꼭지 수만큼 그곳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때부터 산이 달라졌습니다. 산은 바다가 밥을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2주 간 미역국을 끓여 바다에게 주었는데, 산은 단 한 차례도 자신의 밥그릇에 먼저 입을 댄 적이 없습니다. 먹는 것 만이 아닙니다. 산은 수시로 바다의 몸에 붙은 해충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바다의 발이 닿지 않는 부위를 이빨로 촘촘히 물어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줍니다. 경계심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밤늦도록 산방에 이르는 길과 집 주변의 숲을 감시하고 수상하면 우렁차게 짖어 미지의 적을 위협합니다. 새끼들이 집 밖으로 나와 호기심을 채우기 시작한 요즘 산은 새끼들을 지키느라 안절부절입니다. 찾아오는 손님의 차가 올라오면 바다는 반갑다고 반기느라 뛰어내려가지만, 산은 차에 다치지 않을까 새끼들을 물어 집 근처로 옮기고 있습니다. 낮이면 새끼들을 놀려 사냥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밤이 되면 턱이 높은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턱이 낮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새끼들을 위해 추위를 마다 않고 밖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장작을 지펴놓은 아궁이 앞에 밥그릇을 놓아두고 그곳에서 자라고 권하고 있지만, 산은 새끼와 주인을 살필 수 있는 마루에서 찬바람을 견디며 잠들고 있습니다.
나는 산의 변화한 모습에 날마다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애틋한 부성을 보고 사랑의 본질을 느끼며 나아가 인간 사회 리더의 조건을 보고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 솔선과 수범으로 가득한 자식 교육은 나의 그것을 넘어선다는 느낌마저 갖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버리지 못할 것 같은 이기의 욕망을 버려 진정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요즘 개에게서 어른으로서의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대는 무엇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는지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16 | 아하!신이 강림할 때 | 문요한 | 2008.01.29 | 2926 |
1815 | 작가는 인간에게 저항하는 동시에 그들과 함께한다 [2] | 구본형 | 2008.03.21 | 2926 |
1814 | 경험하면 지나간다 [1] | 문요한 | 2011.01.26 | 2926 |
1813 | 인생 1막 [2] | 해언 | 2013.12.07 | 2927 |
1812 | 여자의 서른 살을 위하여 [1] | 한명석 | 2007.08.30 | 2929 |
1811 | 스며들기 [18] | 김용규 | 2010.02.18 | 2930 |
1810 | 우리가 단풍에게 저지른 일 [2] | 김용규 | 2009.10.29 | 2933 |
1809 | 인도에서 띄우는 편지 [6] | 신종윤 | 2010.07.27 | 2935 |
1808 |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길 | 승완 | 2014.01.28 | 2937 |
1807 | 좋은 직업의 딜레마 [1] | 신종윤 | 2009.09.07 | 2938 |
1806 | 아름다운 미물 | 문요한 | 2013.10.02 | 2938 |
1805 | 여섯 빼기 하나는 다섯 | 연지원 | 2014.07.21 | 2938 |
1804 |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 김용규 | 2014.11.06 | 2938 |
1803 | 강연을 준비할 때 늘 곁에 두는 책 | 승완 | 2009.10.06 | 2939 |
1802 | 내일도 오늘만큼 할 수 있는가? [3] | 신종윤 | 2009.06.15 | 2940 |
1801 | 왜 한 빛깔이어야겠는가? [1] | 김용규 | 2011.03.17 | 2941 |
1800 | 더하기 1초 [4] | 문요한 | 2009.11.25 | 2942 |
1799 | 성공과 행복은 하나일까? [3] | 신종윤 | 2010.03.01 | 2942 |
1798 | 왜 부탁하지 않았는가 [2] | 문요한 | 2010.04.07 | 2942 |
1797 | 상하이 속의 우리 [1] | 구본형 | 2007.04.06 | 29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