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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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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0일 00시 4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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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가 만들어내는 분변토다. 지렁이는 묵묵함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생명체다.
 

그대의 12월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요? 나의 12월은 퇴비 만들기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온 몸에 돼지 똥 냄새 흠씬 풍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퇴비 공부를 위해 경남 김해에 있는 지렁이 농장을 견학했습니다. 농부는 1천 평 규모의 비닐 하우스에 지렁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숲을 공부하면서 지렁이의 생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론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렁이가 그들의 삶을 통해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기여하는 놀라운 모습을 명확한 증거와 함께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농부는 지렁이가 여과섭식동물(filter-feeders)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버려지는 음식물 등 온갖 유기물 쓰레기를 받아서 지렁이의 먹이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지렁이들은 인간들이 처리하기 힘들어하는 그 쓰레기를 먹고 토양을 배설물로 살찌우는데, 그 지렁이의 배설물을 분변토라고 부릅니다. 분변토는 양분이 풍부하고 그 결과 미생물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농사에 유용함은 당연합니다. 이렇듯 처치곤란의 쓰레기를 먹어 식물과 미생물에게 유익한 흙을 만들어내는 지렁이는 그야말로 신이 창조한 지하 최대의 물질 전환자일 것입니다.

 

지렁이는 또한 농부에게 제법 큰 수익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지렁이는 낚시 가게에도 팔려가지만, 주로 화장품 회사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렁이가 립스틱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원료가 된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 성인 남녀 모두가 지렁이를 먹어 왔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지렁이는 또한 무동력 경운기 역할을 수행합니다. 햇빛을 싫어하는 그들은 주로 땅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물론 밤이나 호우 뒤에는 가끔 지상으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는 짝짓기를 위해서거나 먹이를 취하기 위한 활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사냥 혹은 사랑이 끝나면 다시 땅을 헤집고 들어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렁이는 자연스럽게 토양을 경운해줍니다. 천이백 평 정도의 땅에서 한 해 동안 지렁이가 활동하여 섞어놓는 흙의 양이 무려 20톤에서 30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때 이들이 만드는 공간은 수분과 공기, 다른 작은 생물들의 이동 통로가 되며 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가는 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자웅 동체인 지렁이는 발도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습니다. 오로지 피부의 감각으로 묵묵히 대지와 소통하면서도 대략 5년 정도의 삶을 산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내내 오직 묵묵하게 땅을 헤집고 다니는 것으로 지렁이들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며, 또한 인간과 식물 등 수많은 생명체의 삶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렁이는 묵묵함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명임에 틀림 없습니다.

 

묵묵함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지렁이가 토양에 매우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한 과학자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윈이 바로 그입니다. 다윈 이전에 지렁이가 유익한 동물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묵묵함은 지독했습니다. 1842년 풀 밭의 한 공간에 분필가루를 골고루 뿌려놓은 다윈은 무려 29년이 지난 뒤인 1871년에 다시 그 자리를 파서 뿌려놓은 분필가루가 얼마나 깊이 흙 속으로 들어갔는지, 또한 지렁이들이 만든 분변토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했습니다. 이렇게 다윈은 40년 동안이나 지렁이를 관찰하고 실험하며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 한 해 전인 1881년에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유기토양의 형성, 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이라는 마지막 책을 완성했습니다. 묵묵함의 위대함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돼지 똥 냄새에 젖는 노동이 기꺼운 것은 나의 밭에서 더 많은 지렁이를 보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와 가족, 이웃에게 먹일 맛있고 건강한 농작물을 생산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3년 퇴비를 만들어 밭에 부으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날을 만나기까지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묵묵함의 위대함일 것입니다.

IP *.229.22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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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09.12.10 01:09:50 *.223.85.195

요즘 도토리 발아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 묵묵한 기다림이 참 좋습니다.

연말을 묵묵한 기다림 속에서 잘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_DSC0374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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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2009.12.10 17:48:05 *.178.119.124
햇빛처럼나무처럼님 올리신 사진 크기를 줄여주세요.
글읽기가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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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09.12.10 19:32:09 *.190.122.223
지적 감사드려요. 연말 잘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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