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4332
- 댓글 수 7
- 추천 수 0
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면 매운 연기를 맡으며 계속 아궁이를 지켜야 한다. 연소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산중 오두막이 긴 시간 눈 속에 갇히고 나니 먹고 자는 일에 문제가 생깁니다. 쌀독의 쌀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좋아하는 담배도 마지막 갑을 피우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거실난방과 온수용으로 설치한 보일러에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간다는 것입니다. 쌀이야 마을에 내려가서 지게로 져 올리면 되지만 난방유 배달차는 눈이 완전히 녹아야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거실난방은 얼지 않을 만큼만 하고 거실과 열린 공간으로 닿아있는 침실용 구들방을 최대한 덥혀 집 전체의 온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땔감을 넉넉히 해둔 것이 다행입니다.
불지피기 중 신기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아주 쉽게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지만, 어떤 날은 정말 불이 잘 타오르지 않아 애를 먹는다는 겁니다. 몹시 춥고 세찬 바람까지 부는 요즘 같은 날에는 불이 잘 붙지 않으면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불을 붙여야 합니다. 요 며칠 이렇게 악조건 하에서 불을 지피다가 불지피는 일이 꼭 삶의 성장 법칙과 같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도 아궁이에 불지피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체계적인 원리를 체득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싶다면 이 자연의 오묘한 연소 원리도 한번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큰 나무 토막을 아궁이에 넣고 태우면 연소시간이 오래가기 때문에 긴 시간 따뜻한 구들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지피기의 최종 목표는 큰 통나무 토막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을 잘 붙이지 못하는 원인의 대부분이 바로 이 큰 나무 토막에 서둘러 불을 붙이려는 조급함 때문입니다. 충분한 불쏘시개 없이는 절대 큰 나무 토막을 태울 수 없습니다. 먼저 종이나 마른 풀 줄기, 낙엽 등을 태우고 그 열로 작은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작은 나뭇가지들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이제 패서 말려놓은 조금 더 굵은 장작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장작들이 활활 타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통나무 토막을 집어 넣어 탈 것 같지 않은 굵기의 통나무를 긴 시간 연소시킬 수 있습니다. 연소의 첫 번째 원리는 바로 작은 것을 태우는 데 성공해야 큰 것을 연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소에 실패하는 또 다른 원인은 공간에 있습니다. 아주 추우면 어떻게든 나무를 가득 넣어 연소를 시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장작과 통나무를 넣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십중팔구 잘 타던 불도 꺼지게 됩니다. 그 작은 아궁이에서조차 에너지는 대류의 원리를 따릅니다. 뜨거운 공기는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는 내려오는 것이지요. 이때 아래로부터 산소가 공급되어 땔감 사이사이를 파고 오르지 못하면 불은 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연소의 두 번째 원리는 공간입니다. 즉 아무리 급해도 소화할 수 있는 양을 감당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직접 체험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아주 미묘한 부분입니다. 전체가 활활 타오르려면 불이 사방에서 고르게 타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왼쪽 귀퉁이만 타올라서는 불씨를 잃기 쉽습니다. 결코 큰 나무토막을 태울 수 없습니다. 얼른 오른쪽도 함께 타오르게 해줘야 전체로 확~ 하고 번져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연소에는 시너지 혹은 확산의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옵션으로 치부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원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아궁이 옆에 ‘부지깽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연소되어 부피가 주는 나무들 때문에 장작의 배열이 틀어질 경우 아래로부터 산소가 공급될 공간을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잘 타던 불도 완전 연소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때 부지깽이로 아주 조금만 공간을 열어주면 불은 더욱 잘 타올라 투입한 모든 나무토막을 완전히 태울 수 있습니다. 장작불의 스승이 부지깽이인 것이지요. 좋은 스승이 있으면 타오르기에 훨씬 좋은 것이지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76 | 신년 계획을 세우는 법 [1] | 구본형 | 2007.01.05 | 4377 |
675 |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불타오르는 삶 [3] | 승완 | 2011.12.27 | 4377 |
674 | 마음으로 스며들 줄 아는 따뜻한 글쟁이 [5] | 부지깽이 | 2008.10.24 | 4378 |
673 | 평화를 위하여 | 구본형 | 2007.01.19 | 4380 |
672 | 이는 사라지고 혀는 남는다 [3] | 부지깽이 | 2011.05.20 | 4382 |
671 | 상상의 도서관 [2] | 김도윤 | 2008.09.25 | 4383 |
670 | 친구이자 스승인 사람들, 꿈벗 | 홍승완 | 2006.11.20 | 4384 |
669 | 최선의 것이 부패하면 최악이 된다 [3] [1] | 부지깽이 | 2011.04.01 | 4388 |
668 | ‘소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4] | 승완 | 2011.06.07 | 4388 |
667 | 냉정하고 땨뜻한 패러독스 [4] | 구본형 | 2008.12.12 | 4392 |
666 | [앵콜편지] 하루를 똑같이 다루는 것처럼 부당한 일은 없다 | 최우성 | 2013.07.26 | 4395 |
665 | 부정의 힘(Power of Negativity) | 문요한 | 2007.01.23 | 4400 |
664 | 두려움에 물들지 않는 삶 | 문요한 | 2013.07.17 | 4401 |
663 | 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2] | 승완 | 2012.12.25 | 4404 |
662 | 낙관주의와 현실주의를 함께 활용하라 | 승완 | 2011.05.31 | 4408 |
661 | 행복한 질문 | 최우성 | 2013.01.14 | 4409 |
660 | 노 젓는 손을 쉬지 마라 [2] | 부지깽이 | 2009.11.06 | 4414 |
659 | 당신은 이미 시계를 차고 있다 | 문요한 | 2011.11.02 | 4417 |
658 | 맹인들의 뜀박질 | 한명석 | 2007.01.11 | 4423 |
657 | [앵콜편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아있구나 | 최우성 | 2013.08.16 | 4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