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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8일 11시 50분 등록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 2

 

 

뒷북 치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 남의 다리 긁기, 각주구검은 나의 취미이자 특기다. 타이밍이 인연이랬는데 한 박자씩 걸음과 박자가 느리다. 너무 자조적인가? 그럼 취소 취소. 지난 주에 칼럼을 제출하고 난 뒤에 마음의 동굴을 향해 손나팔질을 계속 했다. 신화와 얽힌 다른 메아리에 귀기울인다.    

 

마흔앓이, 첫사랑 주변을 배회하다 만난 신화와꿈연구회

 

 

서른여덟 초여름은 우울했었다. 직업과 개인적인 영역 모두에서. 특수교사의 길은 막혔고, 의학적으로 장애아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서른다섯살을 훌쩍 넘겨버린 짝찾기 프로젝트는 시들시들했고 여기저기에 치이고 있었다. 진퇴양난, 암중모색의 시기에 우연히 모닝페이지가 나를 찾아왔다그건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창조성 회복 전략이다. 매일 일어나자 마자 3쪽을 쓰고 1주일에 2시간 자기 자신만을 데리고 데이트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동행자가 있어서 첫 단추를 잘 꿴 덕분에 지금까지 새벽의 첫 손님으로 계속 만나고 있다. 일어나자 마자 쓰다 보니 간밤의 꿈을 적게 되었다. 그게 1, 1년씩 쌓이니 의미가 궁금해졌다. 신기했다. 해몽사이트를 뒤적거렸다.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하다 보니 그룹꿈투사작업을 하게 되었다. 신화와꿈연구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삼청동 한옥집에서 주 1회 저녁에 열 명 정도 되는 이들이 모여서 한 학기 동안 했다. 둘러앉아서 일주일간 꾼 꿈을 나눴다. 나만 관심이 많은 줄 알았더니 다종다양한 직업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왔다. 모닝페이지 하다 꿈을 적게된 나, 50대 후반의 출판사 남자 사장님 한 분, NGO단체에서 일하다 결혼으로 쉬고 계신 분, 목사님, 상담사, 대학원생, 집 주인, 전업주부 두 분이었다. 그리고 그룹의 인도자 고혜경박사는 신화학 전공이었다그녀는 세계적인 꿈작업 전문가인 제레미 테일러의 책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를 번역하고 다른 꿈작업 책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 <살아있는 미로>를 감수했다. 로버트 A. 존슨의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WE (Understanding the Psychology of Romantic Love)>을 번역했다. 한국의 동화를 여성성과 남성성 관점에서 분석한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와 제주도의 여신에 대한 책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를 썼다. 나는 신화와꿈연구회가 주관하는 겨울과 여름 워크샵에 다녀왔다. 피정센터에서 수녀님들이 해주는 정갈한 음식을 끼니마다 과식하면서 34일간 오전, 오후, 밤을 내리 일삼아 꿈작업만 하는 웍샾이었다. 그 중 하나는 제레미 테일러 박사를 모셔서 하는 거였다. 그 이후로는 모닝페이지에서 꿈모음장을 분리해서 쓰고 있다

 

흥미롭다. 신화와 꿈이 무슨 관련이 있길래 신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꿈작업을 한단 말인가? ‘꿈은 개인의 신화이며 신화는 전체의 꿈이라는 조셉 캠벨의 말은 또 뭔가? 나는 신화적인 요소, 인류적 차원이 드러나는 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은 넘어서는 것을 드러내는 내 꿈을 만난다. 융도 자서전에서 그가 어릴 때 꿈에서 본 남근상에 대해 말했다

 

 

여자 꼭두쇠의 꽹가리 소리를 따라 바위산을 오르는 꿈

 

-나는 꼭두쇠라는 말을 책에서고 어디에서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꼭두쇠꽹가리.jpg

 

 

우주의 배꼽, 옴파로스일지도 모르는 돌 덩어리

 

뉴스에 나오는 둥근 돌이 왜 내 꿈 속에 온 걸까? 뭔지 몰라 갸우뚱거리는데 사부님은 이걸 '우주의 배꼽' 그러셨다. 

 

 

물대포 오줌 누는 여자의 오줌발에 적시다. 

 

문희는 삼국유사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제주의 설문대 할망도 오줌 누고 똥 누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줌발.jpg  

 

죽음과 재생

- 나를 절벽에서 밀어 죽이고 자살한 나를 위에서 내려다 들여다본다.

- 빨간 벼슬을 한 닭장식이 달린 꽃상여를 탄다.

- 꽃을 한 다발 들고 문상하는 나와 영정 속의 사진이 같은 사람이다 

- 그린색 잔디가 싱그럽고 상그러운 내 무덤에서 활활 타오르는 정결한 불꽃을 본다.

 

 크기변환_단풍147.jpg

 

 

그건 그렇고 첫사랑 주변을 배회한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이미 나왔다. 첫사랑은 담장 너머 총각이 아니라 국어교육과를 중학교 고등학교 6년간 장래희망란에 쓰던, 읽고 쓰기에 대한 나의 끌림이다. 모닝페이지는 그런 게 반영된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사기칠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합니다.

 

여자가 살아가는 본을 신화에서 찾다

 

별다른 사고나 천재지변이 없으면 우리집 여자들의 평균 사망 나이인 86세까지 살 것 같다.  아직 정오전이네. 지금은 휘슬을 내 맘대로 불고 깜짝 휴식 타임, 재정비기간이다. 여자의 인생을 처녀-어머니-할머니로 본다면 나는 마흔까지도 미혼이었으니 처녀의 단계를 오래 보냈다. 인생 전반전에서 신화에 대한 나의 관심의 핵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깊고 쉬운 이야기가 재미가 있었다. 두번째는 거기서 살아가는 본을 얻기를 바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힌트들을 줄 것 같았다. 진 시노다 볼린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시리즈 책에서 정신과의사로서 그리스신화를 번역해서 의미를 말해주었다. 현경은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되살아나는 여신 신앙을 전공한 신학자 입장에서 여자가 살아갈 길을 말해주었다. 이건 전통적으로 성인식에서 또는 다양한 통과의례에서 입문자들에게 집단의 사제, 또는 지혜로운 연장자가 하던 역할이었다거기에 주관성이 개입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런 것이 절실했다. 

 

이건 나의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양육 과정 동안 준 남성으로 길러졌다. 엄마와는 관심과 취향이 달라 분리된 채 자라고 아버지의 딸로 살아왔다. 그나마 우리 부모님은 새마을운동의 뽐뿌질에 부응하여 가난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일을 오래 해야 했다. 부모가 부재한 동안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거나 TV 시터가 봤다. 그러다 학교에 입학을 해서는 정해진 표준  스케쥴대로 내리 살아가게 된다. 인생 전반전에 여자아이에게 부족의 신화를 말해주는 할머니 같은 역할을 늘 소망해왔다. 왜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정리된 그런 게 없나? 공식적인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빠뜨리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내가 창작, 발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그런 걸 모아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관심이 계속 된다.  연구원에 와서 4월에 신화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5월에는 나의 신화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을 통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나의 관심이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까리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요 아래에 뭔가 있다는, 여기를 계속 파야한다/싶다는 직관적인 감 같은 거다.

 

한 밤 자고 생각해보니 살아가는 본은 껄쩍지근한 데가 있다. 덩어리여서다. 장자에 나오는 백정 도인은 칼을 가지고 부위별로 고기를 잘라낼 때 그 틈새가 활짝 넓었다고 했다. 저 덩어리에서 어디가 대둔살, 살치살, 등심, 차돌백이인지를 면밀히 구분을 해야할 것 같다. 내가 필요로 했던 건 가정의례준칙 같은 실용서인지, 십계명이나 오계 같은 건지, 여성영웅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교육인적자원부가 도덕과 사회교과서에 포함시켜서 이미 다루고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한 나만 모르고 있는 영역인가?

 

이렇게 헤깔릴 때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오디언스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라고 했다. 김학원 슨상님, 아버님과 둘째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했(지만 구본형선배님때문에 연구원 수업에 동원되느라 못가야 했)던 생활인으로서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벽 속에 숨겨두었던 근두운을 꺼내 타고 합정동 살롱9로 오시더니 공중부양한 채 이야기를 하던 무림 고수. 나는 8, 2살인 두 명의 여자조카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그 여자아이들의 엄마인 올케가 딸들을 위해서 사준다고 상상한다. 열아홉살부터 돈을 벌었던 올케는 이 딸들을 기르며 육아휴직 안식년을 보내며 나처럼 마흔앓이를 하고 있다. 그 소녀들도 나처럼 본이 필요할까? 그 올케도 인생 전반전 휴식 시간에 자기답게 살아가는 진로를 고민할 때 자기 안의 신화가 궁금할까?

 

올케가 금지옥엽 딸들에게 이 책을 준다면 14살 전후였으면 좋겠다. 초경을 하는 나이가 빨라져서 초등학교 때 하기도 하지만 밤에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외출하면 부모의 죄책감을 유발시키는 나이를 지난 나이,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갈 나이의 소녀를 생각한다. 그 나이가 관례의 나이이기 때문이다. 관례는 어른으로 인정되는 의식이었단다. 관례를 마친 남자는 상투를 틀고,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른으로 취급되었다. 부족의 아이를 눈을 가린 채 사나흘 길의 모르는 숲으로 데리고 간 뒤 두려움을 직면하며 스스로 마을로 찾아오게 하는 아프리카 부족의 성인식 나이도 그 즈음이다. 성인식을 통과하면 부족의 용사로 대접받는다고 하였다. 타이?인지 태국?에서는 14살이 되면 남자아이들은 2년 정도의 종교교육을 받기 위해 절에 출가했다던가? 여자아이들은 어떤 성인의례을 하냐니까 그냥 귀만 뚫고 만다고 했다. 여자에게 특별한 성인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초경으로 몸에 명징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빠지기만 하면 다행인데 성인의례랍시고 포경수술에 해당하는 남성할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잔혹생위인 여자아이의 클리토리스를 잘라내는 여성할례가 있었지. 이런 성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예 없어졌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성인식에서만 여자아이들이 빠진 게 아니라, 그러고 보면 내가 읽은 신화에서 영웅은 대부분 남자였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에서 아킬레우스, 헥토르가 여신과 남신의 외호를 받으며 나라를 구하고 있을 때 여자들은 어머니, 아내, 정부로 존재한다. 융은 아니무스, 아니마 개념으로 여성 안에 있는 남성과 남성 안에 있는 여성을 말했다. 그러므로 고전 속 영웅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성의 것이 아니다.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남신들>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부분은 여성/남성의 삶에 두 가지 힘, 원형과 가부장제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기답게,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였다. 이게 바로 영웅의 여정이 아니던가? 희생자가 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선택하기, 언제 아이를 낳을 지를 선택하기, 파괴의 힘에 저항하기, 진퇴양난의 절벽을 만나거든 가만히 멈추어 서서 자아를 유지하며 선험적 기능에 의지하기 같은 전략을 일러준다. 그런데 이 책은 성인 여자가 읽기에 적합하다. 나도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여러 번 듣고 난 30대에 알게 되었다. 그런 오리엔테이션이 없었으면 이런 책에 손이 닿지를 못했을 거다. 현경의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이모가 18살 조카 리나씨에게 쓰는 편지의 형태로 서술되었다. 18살은 성인 여자의 삶을 시작하는 나이다. 내가 책을 쓴다면 14, 아직 성인은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닌 나이, 그러나 서서히 자율성을 갖도록 부모가 존중해주기 시작하는 나이의 소녀를 대상으로 써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관례=성인식에 집단의 연장자가 암송해주는 신화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해줄 수 있으며 좋겠다. 캠벨이 오늘날 신화를 예술가들이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 지 가물가물하다. 그 때 책을 대충 읽어서리.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는 중학교만 들어가면 대학입시를 향해 출발한다. 대학입시 시험과목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 나는 입시에는 안 나오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하니까, 논술대비용 고전 다이제스트를 엄마가 억지로 딸에게 읽히려는 식이 아니라 이거 쉽고 재미난데 좋더라. 읽으면서 머리 식히거라방식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내용일까? 인류의 집단무의식이 비스무리하다니 크게 걱정은 안한다. 내가 생물학적 생모든 사회적인 양모로든 기르게 될 아이들은 세계시민의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살아가야 할 거다.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고, 가장 한국적일 때 가장 세계적일 것이므로 내가 태어난 나라와 민족의 신화를 기반으로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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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8 17:58:32 *.229.250.5

글을 쓰는 사람은 떠오른 장면을 단어로서 시각화한다고 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란 의미인데, 누님은 그림까지 그려서

읽는 사람과의 공감을 쉽게 끌어내 주시니 재주가 남다르세요.

 

그림이 갈수록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림을 꼭 모아두세요.

나중에 작품 전시회라도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꿈과 신화를 그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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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9 09:47:33 *.154.223.199

한젤리타 고맙습니다.^^

꿈일기를 더 자주 내세우게 된 건 한젤리타의 조언 덕분입니다.

'꿈과 신화를 그리는 여자' 우와 멋진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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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8 18:57:19 *.9.168.103

그러게 나도 갈수록 콩두 그림이 범상치가 않다.

정신분석이나 수퍼비전을 받아봐도 좋을 듯 하다.

꿈과 신화를 그리는 여자에 한표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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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9 09:48:56 *.154.223.199

샐리언니 고맙습니다.^^

저 그림들은 올해 그린 게 아니라 모두 2~3년 전에 그린 거에요.

그것들이 더 좋아보인다니,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던 걸까? 그때처럼 살고 싶어집니다.

언니의 응원에 힘입어 '꿈과 신화를 그리는 여자'를 밀고 나갈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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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00:09:53 *.180.75.178

콩두님 책 출간되면 울 북카페에서

 북콘서트랑 그림전시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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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13:53:51 *.114.49.161

그라까요? 여수 갈까요? 네 콜!!!!

(이래 말한 게 씨앗이 되어서 정말 출간이 되었으면 좋겄습니다. 이헌님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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