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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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그것
아는 분이 닭 한 마리를 싣고 왔습니다. 지난 늦가을 초등학생 그 집 아이가 학교 앞에서 사 들고 온 세 마리의 병아리들 중 여태 아파트 거실에서 살아온 단 한 마리라고 했습니다. 몸집이 커지고 활동성도 높아져서 아파트 거실에서는 더 이상 키우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우유 빛깔 흰색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은 한 눈에도 순해 보입니다. 종이 상자로 된 녀석의 집 문패에는 ‘홍삼녹용대보진액’, ‘던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습니다.
토종 닭 몇 마리 키워보려고 짓던 닭장은 손이 모자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날이 풀릴 때 까지는 녀석을 저 상자 속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루 위에 자리를 잡아 녀석의 집을 내려놓자 함께 사는 개 ‘산’과 ‘바다’가 난리를 칩니다. 그들의 아들 ‘마루’까지도 킁킁대고 컹컹댑니다. ‘산’이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삐약이를 넘봅니다. 석쇠로 뚜껑을 만들어 덮어주는 것으로 안전 격리를 꾀해 놓았습니다.
상자 속에서만 있는 것이 답답할 듯 하여 불을 지피는 동안 잠시 외출을 시켜주었습니다. 땅 바닥에 내려놓자 마자, 세 마리의 개들이 단숨에 물어버릴 기세로 덤빕니다. 역시 ‘산’이가 가장 맹렬합니다. 빗자루를 들어 녀석들을 진정시키고 가르쳐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식구다. 잘 참고 지켜주어라!’ 삐약이는 개들의 위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양, 연신 땅을 쪼아 처음 맛보는 야생을 흠씬 취합니다. 개들의 흥분이 좀체 가라앉지 않습니다. ‘산’이가 빗자루 몇 대 맞고서야 겨우 분한 듯 웅크리고 앉습니다. ‘산’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불을 지핀 아궁이 앞으로 삐약이를 옮겨주었더니 따뜻해서인지 이내 눈을 감고 졸음에 취합니다. ‘산’은 아궁이 앞 땅바닥에 엎드린 채 녀석의 냄새를 맡으며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장차 이들의 불안한 관계가 심히 염려가 되면서도 궁금합니다. 저들이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삐약이를 다시 임시 거처인 ‘홍삼녹용대보진액’ 상자에 넣어주고 모이를 주었습니다. 오늘 그의 외출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거실에 앉아 ‘산’이가 다시 석쇠 위를 넘보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녀석의 집 한 가운데 나있는 작은 구멍이 눈에 들어옵니다. 살펴보니 녀석이 안에서 밖으로 쪼아 만든 창입니다.
그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있어 자유에 대한 그리움이란 저토록 강렬한 것이구나. 아, 막힌 상자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바깥 세상이 얼마나 궁금했으면 저 녀석은 저 곳에 창을 만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리움 그것!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움, 그것이야말로 저다운 곳으로 향하게 하는 가장 고결한 힘입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사온 세 마리의 병아리 중에 저 녀석만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스스로 묻게 됩니다. 내 가슴에도 지울 수 없는 그리움 하나, 품고 있는가? 내 그리움이 만든 작은 창 하나 튼튼하게 잘 있는가?

오늘따라 김용규 님의 글이 참으로 짠~하게 가슴에 와 닿으면서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우선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님의 시각에 감탄했구요,
'아~! 그렇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 자유에 대한 그리움은 진정으로 강렬한 것이다.'
크게 공감을 하게 됩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쪼아대어 만든 창들~
그 창들을 통해 난 진정 세상을 제대로 보았던 것일까? 세상을 제대로 느꼈던 것일까?
지금도 그 창을 나는 만들고 있는가? 만들어 가고 있는가!
완성과 끝은 아직 묘연하지만, 끊이지 않고 쉼없음에 ~ 오늘도 하루 또 알뜰살뜰히 살아볼만하다 ~~ 하면서
좋은 하루로 시작합니다.
용규님 글이 점점 마음으로 더 느껴져 옵니다. 진심이 담겨져 있어서겠지요 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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