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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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죽인다."
꼬마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도 일곱 살짜리 꼬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중에 최고로 기쁘다는 말이었을 겁니다. 꼬마는 폴짝폴짝 이리저리 뛰며 소리를 지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햇살 속에 유난히 반짝이던 제 동생은 냉큼 자전거에 올라 타서 저만치 달려 나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그리고, 죄송해요."
다른 꼬마는 또 그렁그렁 눈물 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속을 알았는지 머리통을 꼭 감싸 안고는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쉽사리 울먹임이 잦아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조금 편해졌습니다. 열 살짜리 꼬마였던 저는, 손에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뿌옇게 멀어지는 동생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이십 하고도 칠 년 전,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제가 좀 이렇습니다. 똑같이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도 미친 놈 마냥 뛰어다니는 동생과는 달리 어려운 형편에 무리하셨을 부모님 생각한답시고 눈물부터 떨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을 보고 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펄쩍 거리고 뛰어다니는 동생에게 눈치도 주고 구박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저희 형제가 그렇게, 서로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렸을 적 못된 버릇이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그 덕에 책 출간을 축하해주겠다며 연구원 동료들이 마련해준 자리를 향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약속된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쑥스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저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들과 마주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동료들의 축하가 쏟아지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가슴이 프라이팬 위의 버터마냥 사르르 녹아 내렸습니다. 거기에 더해 ‘수고했다.’는 선생님의 축하까지 더해지자 비로소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형식적인 축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늘 말하곤 했는데, 이제 보니 제가 틀렸네요.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이처럼 빛나는 몇 개의 장면으로 인생을 기억하게 될 텐데, 저는 왜 주어진 기회조차 살리지 못했을까요?
‘책을 냈으니 축하도 하지?’라고 생각하셨죠? 아니면 ‘난 그만큼 축하할 일이 없는데……’라고 생각하셨나요? 하지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축하해야 할 일 천지입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가 우리 곁에 온지 1000일,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500일, 그것도 아니라면 부부 싸움 없이 잘 버틴 100일도 좋겠네요. 의미를 부여하고 축하하는 순간 평범한 하루가 빛나는 추억으로 탈바꿈합니다.
축하, 이거 한번 받아보니 은근히 중독되네요. 저는 아내와 만난 지 3511일째 되는 오늘을 위해서 퇴근길에 작은 케이크를 사가렵니다. 여러분의 오늘도 작은 축하와 감사로 활짝 빛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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