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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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고독한 인간은 늘 배고프다. 공허가 그의 식량이기에.”
- 레온 드 빈터의 <호프만의 허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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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거나, 뭔가 먹을 것을 꼭 먹어야 마음이 놓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느끼는 허기를 자세히 보면 사실 신체적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지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정신적 허기와 신체적 허기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학자 로저 굴드는 뱃속에는 보이는 위장 말고, 보이지 않는 ‘유령위장’이 있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 유령위장은 음식물이 비어있을 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롭거나,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절망스러울 때와 같이 정서적으로 흔들릴 때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반대로 누군가와 아주 가깝게 느껴지거나, 마음을 열고 화해했거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진다면 정신적 허기는 물론 신체적인 허기까지도 잘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은 오장육부가 아니라 놀부처럼 오장칠부인 셈입니다.
아이가 가장 행복해보일 때가 언제일까요? 그렇습니다. 배불리 엄마 젖을 먹고 잠 들었을 때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이에게 포만감과 따뜻한 보살핌은 하나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아이가 생애최초로 경험하는 절망은 젖을 떼이는 것입니다. 그 상처가 너무 깊다면 박탈당한 젖을 되찾으려는 투쟁이 삶의 전기간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신체적 포만감과 정신적 보살핌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성인이 된 우리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흔히 음식을 먹음으로써 달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음식으로 채운 포만감이 정신적 허기를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이며, 애초 허기진 이유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외면해버리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히딩크의 말처럼 배고픔은 하나의 은유입니다. 배고픔은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 욕구, 필요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배고픔이 무엇에서 기인한지를 들여다보고 필요한 것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무작정 음식을 채워넣을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면 친밀감을, 존재의 결핍이라면 자기를 채워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체적 허기가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해주듯이, 정신적 허기도 우리가 잘 알아차린다면 삶을 더욱 맛나게 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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