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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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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31일 00시 53분 등록

개념 혹은 사상 창조자


셈해 보니 나는 18년 간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제도화된 교육과정에 참여하여 공부한 시간이 그렇게나 긴 시간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공부해 놓고도 삶이 무언지 몰라 쩔쩔맨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아픈 날 많았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사소한 것인지 몰라 귀한 것을 놓치고 사소한 것에 빠져 허우적거린 날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천성이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책에 빠져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세월만큼 읽은 책도 제법이고, 두세 권 내 이름을 달고 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갑갑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 읍내에서 한 분야를 30년 간 공부하셨다는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역시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 말씀이 자신이 조선말기에 있었던 농민운동과 그 사상을 그토록 오랫동안 공부하셨다는데 강의는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사상의 위대함은 알겠는데, 그 사상이 이 시대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연대기적 사실과 배경, 흐름을 그간의 사료와 당신이 발로 뛰어 직접 발굴해 낸 자료를 중심으로 탁월하고도 객관적으로 풀어낸 강의지만, 나는 그 운동이 품고 있는 사상에 대한 설명에서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답답한 감정은 코끼리의 다리는 선명하게 만지고 있는데 코끼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지는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아와 아랫목에 누워서 긴 시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 2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공부를 하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다가 마는 걸까? 백이삼십 년 전에 그 농민운동의 사상적 뼈대를 구축하고 많은 민중들의 가슴을 그 사상으로 물들여 놓은 분들은 농민과 민중에게 이것이 참된 삶이고 진실이요 저것이 허위고 거짓이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후학은 그 사상의 조각들을 어루만지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의 위대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우리 각자가 행하는 제 분야의 공부가 그렇게 선대의 사유를 쫓아가기에 급급합니다. 모으고 흩고, 다시 모으면서 새롭게 창조해 내는 힘이 확실히 빈약합니다. 한 시대의 문제, 아니 작게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의 본질을 꿰고 그 답을 내놓을 창조적 개념과 위대한 사상이 이 땅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한 개념과 사상의 창조자가 보이지 않은지 너무 오래입니다. 왜 그럴까요? 공부 제도나 방법의 한계일까요? 사유의 한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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