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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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사람들이 묻습니다. 겨울에 산중에서 오두막 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살림이 무엇인지? 눈 속에 갇힐 수 있으니 양식도 있어야 하고, 가끔 씻기도 해야 하니 물이 얼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함께 사는 개들의 양식도 바닥나지 않게 챙겨야 하고 좋아하는 담배도 넉넉하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겨울에는 무엇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 듯합니다. 불을 때지 않은 방의 찬 바닥을 견디며 잠들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렇게 답하면 또 묻습니다. 불편하지 않은지? 무섭지는 않은지? 왜 불편함이 없을까요! 대자연이 드리우는 시간적∙계절적 변화상 앞에 어찌 두려움이 없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산중에서 자연과 함께 살자면 계절과 상관없이 챙겨야 하는 살림의 정수가 있습니다. ‘마음 살림’이 그것입니다.
불편함은 이런 마음 앞에 지워집니다. ‘일찍이 서양은 지난 200년간, 우리나라는 지난 50여 년간 이룩한 발전보다 놀라운 발전을 이룬 적이 없다. 분명 지금 나는 나폴레옹이나 세종대왕이 누린 것보다 더 큰 편리를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또한 두려움은 알아가고 느끼는 것 앞에 지워집니다. 처음엔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멧돼지의 분노한 소리로 착각해서 두려웠고, 부엉이의 노래 소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고, 다만 ‘전설의 고향’에 출연하는 귀신을 위한 배경 효과음으로 대비하여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산이 윙윙 울어대는 소리는 바람이 길을 바꿀 때 내는 소리인 것을 몰라서 두려웠습니다. 모든 것이 나 아닌 것들과 단절된 마음에서 연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주 듣는 질문 중에 외롭지 않느냐? 가 있습니다. 왜 이따금 외롭다 느껴지는 시간이 없을까요! 이 또한 사람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함을 알게 되고, 또한 무수한 생명과 사물 속에 내가 스며들지 못하는 데서 찾아오는 것임을 알게 되자, 곁에 두고 잘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좁고 찌든 마음을 열어 천천히 내 밖의 세계인 자연과 연결하는 마음을 살려내면 웬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춥다지만 내일이면 우수(雨水)입니다. 대동강 물도 녹을 테고, 뒷산 생강나무도 곧 꽃을 피우겠지요. 그 사이 나도 산 속 오두막에서 두 번째 겨울을 떠나 보낼 것입니다. 그간 자연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천지 속에 스며들지 못하여 내가 자연을 밀어내는 것이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차 더 많이 스며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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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주말 강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에서 ‘에코 CEO’라는 과정으로 2학기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
‘숲과 자연’을 주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나 아닌 것과의 단절됨으로 오는 두려움이라는 말이 가슴을 확 밀쳐냅니다.
두려움이 밀려 왔을 때 두려움에만 귀를 기울이고, 왜, 어떻게 왔는지를 물어보지를 못했네요.
만약 이 질문을 던졌다면 두려움이 두려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기회되면 같이 가요 형! 사실 한 번은 10년동안 수확한 것이 고작 몇 개의 사과라고 어디서 이야기를 했는데,
전후 맥락을 잘 설명하지 못했는지 많은 분들이 웃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왜 그리 섭섭한지. ^^)
그것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농약과 비료 없이 농사를 짓느라 소출은 부실했고 생계는 점점 막막해졌다고 하지.
농삿일이 없는 겨울철에 도시에 나가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야쿠자들에게 얻어맞아 잃게 된 이빨의 빈 자리를 그는 이제 살만해졌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살고 있다 했어.
자신이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신념의 상징으로 그 빠진 자국을 달고 살아간다는 그의 이야기에 참으로 가슴 뭉클했어.
나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어볼 기회를 주어 고맙다. 건재.
새 학기 치열하게 보내고 항상 건강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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