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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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 돌아가셨다.”
이른 시간에 걸려온 전화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네요.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셨던 외삼촌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탓인지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슬픔을 견딜만하다는 사실이 슬펐다고나 할까요?
차를 달려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번듯하게 서있는 장례식장 건물이 어쩐지 서늘합니다. 서둘러 빈소로 올라가 상주인 사촌동생과 마주하고 보니 그제서야 덜컥 실감이 납니다. 벌겋게 충혈된 눈과 부은 얼굴에 슬픔과 피곤이 고스란히 묻어있습니다. 별다른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한 채 한참을 손만 꼭 마주잡고 있다가 뒤돌아 나왔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많은 친척들이 모여있었습니다. 8남매의 장남인 외삼촌이기에 일가친척들만으로도 널찍한 장례식장이 반절은 차 보입니다. 멀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장례는 또한 잔치이기도 하지요. 이별의 밤은 조금 과장된 부산함 속에 깊어갔습니다.
아침 일찍 발인제(發靷祭)를 올리고 장지를 향해 나섰습니다. 관을 따라 길게 늘어선 가족들의 곡소리가 가슴을 긁어 내렸습니다. 곡(哭)은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인에게 이제 편히 가시라고 죽음을 일깨우는 소리라 합니다. 살아남은 아내와 자식 그리고 형제들이 죽은 이에게 죽음을 일깨우는 소리이니, 어찌 이보다 슬플까요?
생전에 사시던 집에 들러 노제(路祭)도 올렸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그리도 오고 싶어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그리움이 조금이나마 풀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집 앞 작은 공터에 상을 차리고, 영정을 세우고, 절을 올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나지막이 들리는 흐느낌이 차갑도록 푸른 하늘과 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다시 출발했습니다.
지난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순간순간 졸음이 밀려들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와도 같은 꿈과 현실의 사이를 오가며 한참을 달린 끝에 공원 묘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지친 표정의 인부들이 무덤덤하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깊게 파인 땅 속으로 관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순간, 눈물과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흙을 덮고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발로 밟아 흙을 다진 후, 옆에 세워둔 천막으로 자리를 옮겨 평토제(平土祭)를 올렸습니다.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사람의 모습이 다 그렇겠지만, 해맑게 웃으며 무덤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엄마에게 잡혀 절을 올리는 어린 조카의 하늘로 솟구친 엉덩이가 유난히 슬픕니다.
이제 정말 이별입니다. 흙을 다져놓은 무덤 주변을 세 바퀴 돌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고했습니다. 다 돌고 난 후에는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야 한다니, 이별이 정말 선뜩합니다. 세 바퀴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무너지듯 쓰러진 가족들의 오열에 저도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습니다. 차가운 땅에 아버지를 묻고 떠나는 아들의 그리움이 제 가슴에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힘든 이별을 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은 비를 뿌리던 구름을 걷어내고 화창하게 개었는데, 제 마음은 여전히 저 멀리 무덤가를 서성입니다. 후련히 떠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조금은 힘겨운 월요일입니다. 이 공간을 빌어 외삼촌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냅니다.
외삼촌,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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