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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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봐.”
“응?”
“생일이니까...”
“내 생일? 언젠데요?”
“세 밤만 자면.”
“정말?”
“응. 뭐 갖고 싶어?”
“꽃!”
“꽃?”
“응.”
“다른 건?”
“계란 과자!”
“계란 과자? 그게 다야?”
“음...... 응!”
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을 떠올리며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막상 지하철역에 내리고 보니 약에 쓸 개똥마냥 꽃집 하나가 없네요. 꽃집도 없는 동네에 사나 싶은 서글픔을 달래며 이리저리 골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담배 사러 나온 듯한 아저씨에게도 묻고, 통을 들고 달려나가는 야식집 배달원에게도 물었지만 모두들 못 봤답니다.
포기하고 집으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장난감 자동차도 아니고 꽃을 사달라는 아이의 엉뚱함이 고마워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딸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아주머니에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는듯하던 아주머니는 조금 복잡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구세주가 따로 없더군요. 발걸음에 힘이 붙었습니다.
며칠 전, 가족들과 나들이 갔던 공원에서 ‘소원 나무’를 보았습니다. 제법 키 큰 나무에 아이들이 서툰 솜씨로 소원을 적어놓은 쪽지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이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엄마, 아빠의 돈타령 덕분인지 ‘로또 대박!’이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마음을 끄는 것들이 있었는데요. ‘아토피를 낫게 해주세요.’라는 안타까운 것도 있었고요. ‘동생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기특한 것도 있었네요. ‘엄마가 집에 일찍 들어오게 해주세요.’라는 마음 짠한 것도 있었고, ‘공부 대신해주는 로봇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애교 넘치는 것도 있었습니다. ‘공주’나 ‘왕자’가 되게 해달라는 아이다운 것도 있었지만 가족들의 건강을 비는 어른스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생일 선물로 ‘꽃’을 사달라는 제 아이의 그것만큼이나 노랗고 선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꽃집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자 꽃 같은 할머니 한 분께서 반기셨습니다. 장미 한 송이를 부탁 드렸더니 안개꽃으로 감싸고 금가루까지 살짝 뿌려서 예쁘게 꾸며주셨습니다. 한 손에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계란 과자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기분이 마치 백 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처럼 설렙니다. 집으로 들어서는 저를 반기러 뛰어나온 아들녀석이 꽃을 보고는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 삼천 원을 주고 산 장미 한 송이 덕분에 이렇게 짜릿할 수도 있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소원은 크고 복잡해져만 갑니다. 그래도 이 날만큼은 아이의 미소 덕분에 시끄러운 생각들이 몽땅 날아가버렸습니다. 거창한 제 소원이라고 해봐야 이 아이의 꽃만한 것이 없네요. 아이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주원아~ 이 아빠에게는, 네가 꽃이다.’
봄을 알리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이 봄, 가슴 속에서 움터 오르는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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