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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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에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머위도 수줍은 꽃을 피웠습니다. 현호색과 투구꽃, 회잎나무처럼 작은 키의 풀과 나무들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내내 특별히 지랄맞은 날씨지만 봄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대 어떠신지요? 좋은 봄날 맞고 계신지요?
나는 요새 과수원을 만드는 중입니다. 산방 주변의 밭에 감나무와 매실과 대추나무를 심기 위해서입니다. 감은 곶감으로 만들어 그대에게 선을 뵈고 싶습니다. 매실은 매화 꽃 필 무렵 그대를 불러 봄나물을 캐고 숲을 걷는 프로그램을 갖자고 꼬실 때 좋을 것 같아 심습니다. 초록 열매 달리면 그대 집으로 한 아름 보내줄 때도 좋겠다 싶기도 하구요. 대추는 오로지 차를 만들어 먹고 나누는 데 쓸 생각입니다. 과수원 주변으로는 제법 많은 벌통을 둘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벌들이 숲과 밭의 건강한 꽃을 날아다니게 하고 넉넉한 가을엔 나도 그들의 수고를 빌어 맛있는 꿀을 수확하려는 욕심입니다. 그 꿀 역시 벌과 꽃들의 노고를 아는 그대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두는 내가 참 좋아하는 나무요 생명이기 때문에 농사로 연결해보려 합니다.
과수원 만드는 일을 하면서 품게 된 고민이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일의 진척이 더딘 것도 고민이지만, 더 큰 고민은 처음 나무를 심을 때 거름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입니다. 농사 역시 효율의 경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투입비용 대비 단위 수확량이 높을 때 많이 남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축이건 나무건 그들 생명의 복지는 무시되는 처지입니다.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작은 공간에서 최대의 결실을 낼 수만 있다면 가축이건 나무건 그들이 받을 스트레스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요즘 과수원 역시 그렇습니다. 묘목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밀식하여 많이 심습니다. 자라면서 여러 나무에서 최대한 많이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나무의 몸집이 커지면서 옆 나무의 결실에 방해를 주는 시점이 오면 적당한 간격으로 나무를 솎아서 베어냅니다. 효율적인 공간 이용으로 그 공간에서 최대의 수확을 거두는 경제학이 적용되는 것이지요. 솎아져 나가는 나무가 생명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심을 때 퇴비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퇴비를 주면 초기 생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스스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기회는 미뤄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잘 차려진 밥상을 받은 나무는 잘 차려진 밥상을 계속 요구하도록 길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찍 결실을 거두는데 도움이 되지만, 느리더라도 척박함을 이기고 스스로 땅과 화해하여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결실을 맛보기는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나는 고민을 풀었습니다. 저 과수원에 심겨질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을 그냥 믿기로 했습니다. 저들이 비록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스스로를 노래할 날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좌중이 요구하는 분위기를 어쩌지 못하고 억지로 부르는 노래를 불러보았기 때문입니다. 숲을 거닐며 홀로 흥얼대는 노래 역시 불러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아주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비록 음치여도 노래 중에 가장 맛 있는 노래는 스스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니, 나는 다만 넓게 넓게 나무를 심으며 그에게 이렇게 속삭일 작정입니다. ‘노래하자 나무야, 네 스스로를 노래하자’

- 말썽쟁이라고 힘들어했던 그 녀석들이 나의 스승이 듯, 시들어가는 화분 하나가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함을 일깨워줍니다. 경기도 산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름 한낮, 꿈같은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동네를 몇 바퀴 돌았던 괴산 그 마을은 믈리적 거리 때문에 제2안을 선택했지요. 몇 일 전에는 이 지역에서 생태적 농법을 연구하는 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었습니다. 그 분들이 진실로 나의 스승이며 석사, 박사 위에 농사라는 지인을 말에 열 번 공감했습니다. 근무처가 먼 관계로 새벽을 열고 출근합니다다만 걷는 시간이, 기차안이 나의 생각터임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은 더 많이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리운 사람과 동동주 한잔(두 병) 하고픔이 벌써 2주가 다되어가는군요.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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