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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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유형선
80년대 민주화와 혁명의 상징이었던 시인 박노해. 기나긴 수배생활 끝에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 되었지만,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7년 6개월의 감옥 생활 끝에 석방되었다. 새 생명을 얻은 시인은 결코 자신의 과거 속에 묻혀 살지 않으려 한다. 전쟁터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생명/평화/나눔’을 내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시인은 12년 만에 세상에 시뻘건 표지의 새 시집을 내놓는다. 여기서 시인은 일곱 살 때 서당 훈장선생님에게 배운 첫 가르침의 떨림을 선명히 기억하며 진심으로 실천하고 살았노라 당당하게 고백한다.
그럼 길이 뭔 줄 아느냐? / 길은 道, 보아라 / … 길 도는 머리 首를 베어 / 창 辶으로 꿰들고 열어가는 것이다. / 그러니 길은 무섭고도 잔인한 것이란다. / ... 내가 먼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없단다 / 길을 잃거든 네 빳빳한 목을 쳐라! / 그러면 평화다[1]
고대인들이 문자에 숨겨놓은 가르침은 수 천 년을 흘러 한 어린 아이의 가슴에서 내려 앉아 싹을 틔웠다. 그리고 혁명가의 삶으로 꽃을 피웠다. 이처럼 고대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위험천만한 선동임이 분명하다.
고대인들의 가르침은 ‘신화’의 형태를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전승된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영웅들이 선택한 길! 바로 신화의 가르침이다.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다이달로스의 미궁을 빠져 나온 테세우스. 아리아드네가 건내준 실 한타래와 보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 버린다. 배신당한 상실감으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지만 그녀는 결코 스스로를 분노와 복수의 정염에서 지켜낸다.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은 아리아드네의 사랑이야 말로 훗날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신화는 노래한다.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이야기할 때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20년 방황의 여정을 겪으며 이타카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저승까지 다녀온 오디세우스. 온전히 죽음을 무릅쓸 때에서야 비로소 나아갈 길이 열린다는 인생의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 운명 역시 미로를 헤매는 순례자일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해설서. 이것이 나에게 신화의 의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참을 수 없는 불안함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다.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졌고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미로 같은 삶의 여정을 순례해야만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의 숙명이다.
숲길을 걷다 소리 없이 불쑥 나타나 행인을 위협하는 뱀처럼, 운명은 늘 어느새 나타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그러나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할 때 비로소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삶을 뒤흔드는 운명에게 스스로를 주저 없이 내던져라! 그때 비로소 고향의 침실로 되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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