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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4일 07시 48분 등록

<9기 레이스 칼럼 1주차>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글: 서 은 경

 

 

 

탄생의 비밀

 

은갱이는 고추밭에 터 팔고 나왔는데 너그들은 뭐 한 게 있노?

와 자꾸 알라를 괴롭히노...!” 할머니가 나를 괴롭히는 언니들을 꾸짖으신다.

 

 

나에게 멋진(?) 태몽은 없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지만, 특별한 답이 없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도 물어보았지만, “마아... 낳았다하며 얼버무리셨다. ‘태몽자기 탄생 신화. 그 사람을 존재하게 한 이유이자 그 사람의 삶을 죽 끌고 가는 보이지 않은 힘이다. 그런데 나는 태몽이 없다. 실망한 나는, 곧장 조르르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 내가 태어날 때 태몽 꾸셨어요? 어머니는 꿈 안 꾸셨대요...”

아이고, 우리 은경이는 고추밭에 터를 팔았지. 그리고 국회의원 사주다, 국회의원. 나중에 우리 집에서 제일 크게 될겨....”

 

경북 영주 출신의 내 할머니는 손주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할머니 날 기르시니...’ 우리 남매들에게 어머니는 자식 생산자이고, 할머니는 독점(?) 양육자였다.

 

나는 딸딸딸딸 아들 딸, 51남 중 4째 딸이다.

위쪽의 딸딸딸은 간격 있게 생산된 딸들이 아니라, 연년생으로 내리 달아서 쭉 뽑아낸 딸들이다. 나의 엄마의 직업은 의사이다. 그것도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고학력의 인텔리였던 어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하늘같은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조선시대 여인네로 평생을 사셨던 우리 할머니는 아들 낳기특명을 내리셨다.

 

어머니는 특명 수행을 위해, 매년 배가 부른 채로 남의 아기도 받아내야 했다. 몸소 직업적 전공을 빡세게 실천한 분이다.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치러내야 했던 어머니는 넷째인 나를 낳고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우리 할머니가 씨받이를 들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는 이를 악 물고 이혼을 결심했고, 넷째인 나는 그날로부터 우리 집 최고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몇 번의 전화위복의 기회가 온다.

 

우리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다시 한 번 명예회복을 할 기회가 왔다. 어머니는 다시 몸을 가다듬어서 내 밑에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드디어 생산한 것이다. 남동생 생산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지 모른다. 인디언들이 비 올 때까지 기우제 지내는 방식과 똑같이, 아들을 생산할 때까지 자식을 계속 낳은 것이다. 의지의 여성, 어머니 덕에 우리 할머니는 아들을 얻었고 나의 천덕꾸러기에서 한 가지의 보호막을 얻게 되었다.

 

나는 고추밭에 터를 판 여자.

 

보통 터를 팔았다는 말은, 무당들이 많이 쓰는 말이라고 한다. ‘팔아라부처님 전에 이름 올리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라는 뜻이다. ‘는 누구나 파종할 수 있는 생명의 텃밭이다. 그 텃밭에, 내가 남동생이 생기도록 마음을 올린 것이다. 지극정성 기도 마음을 판 것이다. 이보다 경쟁력(?) 있는 탄생의 비밀이 또 어디 있을까?

 

남동생이 태어난 후, 집안의 대들보인 첫째 딸과 장손인 남동생의 뒤를 잇는 집안 손자손녀 서열 3를 기록했다. 할머니의 귀여움을 듬뿍 받았고 할머니는 늘 나를 괴롭히는 나쁜(?) 언니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 되었다.

 

 

 

변신을 위한 이름 붙이다

 

24,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세상의 질서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세상은 왜! ! 이렇게 부조리한가? 이율배반적인가? 동등하게 교육 받았는데, 왜 여자는 더 양보해야하고 높고 높은 큰 판에는 끼워주질 않는가? 그리고 늘 성적 대상으로 건드림을 당해야 하는가. 나는 좌충우돌 혼란을 겪으며 내 인생의 조각을 겨우 겨우 맞춰가며 살고 있었다.

집안 울타리 안에서 늘 보호받던 나는 온실 속의 화초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와 세상과의 간극에 고통을 느꼈다. 내가 한번 잘 살아보려는데,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부조리 가득한 바위 덩어리가 내 어깨 위로 쿵 떨어져 나를 바닥이 주저앉혔다.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에 왕왕 대며 외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별 다른 변화 없이 늘 그러하게 흘러갔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서 내 뻗치는 기를 주체하지 못해 내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학하기도 했다. 극도의 혼란감과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본다. 이따미 주조의 담뽀뽀(tampopo)’라는 일본 영화다. 블랙 코미디인데, 옴니버스 형식으로 일본 라면 이야기 등 몇 가지 이야기를 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 장면, 그 장면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담뽀뽀란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밥상을 차려 준다. 가족들은 밥을 먹는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바닥에 푹 쓰러진다. 가족들은 놀라 여자를 일으킨다. 다시 일어난 여자는 또 흔들거리며 쓰러진다. 그리고는 죽는다. 이 순간, 남편과 아이들은 엉엉 울면서 그냥 밥을 먹는다. 열심히 먹는다.......

 

'뭘 어쩌자는 말인가?'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죽어가는 여자를 부둥켜안고 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가족들은 밥을 더욱 더 열심히 먹는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먹는다. 왜냐하면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지어낸 마지막 밥상이었으므로.

 

상식을 깨는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블랙 코미디처럼 아이러니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담뽀뽀 그 여자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나는 세상 속 그녀들을 구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죽지는 않도록...

 

담뽀뽀(tampopo)민들레란 뜻이다. 꽃말이 일편단심 민들레. 또한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의 꽃이다. 나는 그때부터 인터넷 통신 아이디를 담뽀뽀로 붙였다.

 

그런데 그때는 잘 몰랐다. 그 이름붙임이 무슨 의미인지를. 그리고 나 자신도 모르게 어느 길을 가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방송구성작가 일을 하면서 15년 간,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채록하여 증언집 내는 일에 참여하였다. 또 중국 흑룡강성, 호북성 등 시골마을을 다니며 그곳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해온 일들이 담뽀뽀라는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고추밭에 지극정성으로 기도해야 보호막을 따 낼 수 있었던 존재의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았고 또 세상의 향한 여자로서의 억울함(?)과도 연결돼 있었다.

 

나는 이름붙임으로 내 인생의 성장의 동력을 얻었고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변화와 변신을 할 수 있었다. 30대 초반, 30대 후반... 이후에도 나의 이름붙이기는 계속 되었다. 그리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지금 나는 여자라서 행복하다.

나는 내 삶의 여정을 위 아래로 파도타기 하면서 나만의 영웅(?) 신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저기 푸른 바닷가,

내게 웃음 지어 보이며

넘실넘실 파도를 타는 유쾌한 돌고래 한 마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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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8.97.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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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16:46:55 *.62.164.78
짧게 짧게 친 문장이 마치 단검으로 무장한 로마 병정처럼 힘이 좋습니다. 작가님의 필체를 옆에서 배워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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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17:53:59 *.91.142.58

정말 처음부터 한 숨에 쭈~욱 읽기는 멋진 문장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들이네요.

 

울 외할머니도 내리 딸  다섯에 아들 딸 아들 이렇게 5녀 2남을 두셨는데,

넷째번째 딸이 바로 밑에 아들 동생을 보았다고 그렇게 이쁨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사이트에서 은경님 아니디 보면서 담뽀뽀가 대체 모지? 토마토도 아니구?? 하며 궁금했었는데

이따미 주조의 '담뽀뽀'라는 영화가 기원이었군요. 기회될 때 꼭 한번 봐야겠어요!

 

두번째 칼럼도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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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20:12:15 *.177.81.59

학창시절 형제조사를 하면, 저는 늘 기타였어요.

제 또래들은 거의가 두명정도였죠. 세 명도 제법되긴 했고.

4명째에 한두명있었던 거 같구요. 그 다음에 선생님은 말씀하시죠.

아직 손 안든 사람? 그럼 일제히 반애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저요!"라고 손 든 사람, 바로 저요. 저도 밑에 남동생을 둔 넷째랍니다.

할머님 얘기며 어린시절 딸이라고 특별 대접(?)받던 거 생생하네요.

무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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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20:58:31 *.58.97.136

형선^^ 

목요아카데미에서 뵈었던 분이시네요..  짧게 짧게는 치는데 깊게 깊게는 찌르지 못하네요...ㅋㅋ

 그것은 형선님께 배워보겠습니당~!

 

라비나비^^

별명이 이뻐서 기억했었는데 얼굴도 이쁘시네요... 두번째 칼럼은 ㅋㅋ 어떻게 써야할까요?  어렵네요...

 법을 어긴 경험, 주차위반 딱지 뗀 걸 쓰나...-.-

 

에움길^^

에움길님도 넷째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는 어디가나 강하게 생존하는 끼어있는 중간층, 허리죠...

저도 무지 반갑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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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00:07:46 *.124.98.251

담뽀뽀란 영화, 보고 싶네요. 충격적인 결말이에요. 담뽀뽀님 어머님도 담뽀뽀님도 참 대단하신 분들이시네요. 벌써 작가시라니.. 제가 젤 부러워하는 분들이 작가, 그리고 화가 라서 ... 작가라고 하시면 껌뻑 죽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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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00:06:30 *.58.97.136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궁~ 지금은 방송작가 아니예요. 공룡님과 더불어 다시 제대로 작가 되고 싶습니당...^^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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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21:17:46 *.68.48.63

반갑습니다. tampopo님.

 

답글 먼저 다느라 그 의미를 제가 찾아봤네요^---^

15년간 길위에서 자료 수집하시고 인터뷰하시고 다큐멘터리 찍으시고...

경험위에서 삶을 체득하셨네요.

옆에 바짝 붙어서 배워야 겠습니다.

 

저는 민들레가 많이 자라는 것을 해마다 보아 왔습니다.

민들레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홀씨가 봄바람에 여기 저리 날아다니며 씨를 퍼뜨리지요.

전파력이 일파 만파로 퍼진답니다.

그 이름대로 자신만의 신화를 써나가고 계시네요.

 

손잡고 함께 홧팅~~~~~~입니다. ^___^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름을 짓는 순간, 그 이름을 닮아간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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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00:08:36 *.58.97.136

홧팅~ 감사합니다. 힘이 나네요...^^

열심히 해서  꼭 오프라이에서 얼굴 뵙고 싶습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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