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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4일 09시 08분 등록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생각정원, 2013.


1. 저자에 대하여


■ 구 본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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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생

1954.1.15. 충남 공주

 

•활동분야

변화경영사상가. 변화경영연구소장. 강연, 칼럼, 저술 활동

 

•발 자 취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 경영학 공부

 

 

1980년~2000년 한국 IBM 근무(경영혁신 기획과 실무 총괄)

 

 

1991년~1996년 IBM 본사의 말콤 볼드리지(Malcolm Baldrige) 국제 심사관

 

 

2000. 1인 기업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 설립

 

 

2005.~ 연구원 제도 운영

 

 

EBS 라디오 <고전읽기> 진행

 

•저    서

1998. 익숙한 것과의 결별

 

 

1999. 낯선 곳에서의 아침

 

 

2000.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 / 떠남과 만남

具本亨 Bon-Hyung Goo

 

 

2001.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사진출처:yes24.com, 예스인터뷰>

 

 

2002. 사자 같이 젊은 놈들(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

삶을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변화경영사상가

……

 

 

2003. 내가 직업이다

 

 

2004.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일상의 황홀

 

 

2005. 코리아니티 경영

 

 

2006. 공익을 경영하라

 

 

2007.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 / 사람에게서 구하라

 

 

2008. 세월이 젊음에게

 

 

2009. 더 보스 : 쿨한 동행

 

 

2010. 구본형의 필살기

 

 

2011. 깊은 인생

 

 

2012. 신화읽는 시간

 

 

 

2013. 그리스인이야기          <이 외에도 많은 책들이 발간됨>


■ 명명(命名)


“그들의 이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라티노스라고도 하고 나우시토스와 나우시노오스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모르면 어떤가? 그들은 그 후 한번도 자신을 세상에 알릴만한 일을 하지 못했으니 그 이름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p314~315)“


 저자는 이와 같이 말한다.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단 『그리스인이야기』속 위 구절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생애를 인지하고 있음을 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하며 많은 이름을 얻게 된다. 그 속에 그들의 역할과, 행적과, 이상이 담겨 있다. '기억‘의 주체를 나로 볼 것인가, 타인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누군가에게 기억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결국 이 모두가 나의 ’알릴만한 일'에 따르는 귀결이다.

 자, 그럼 우리도 잠시 비판적이 되어 보자. 당신은 이 작가를 아는가? 당신은 그를 어떻게 부르는가? 왜 그렇게 부르는가? 그가 행한 어떤 알릴만한 일로 그를 기억하는가? 그를 부르는 명명에 따라 그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구본형


 그는 1954년에 태어나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이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좋은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를 꿈꾸었으나 1980년이라는 한국의 시대적 현실 속에서 파생된 몇 가지 이유로 그 꿈을 포기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그는 회사원으로서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살았다며 ‘가끔 내가 가보지 못하고 끝나버린 역사학자의 길을 한숨 쉬며 되돌아보곤 했다(그리스인이야기, p450)’고 술회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지나간 삶에 대해 한번쯤은 회한을 갖기 마련이고, 그가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기업의 간부를 지냈다는 점, IMF의 고비 속에서도 한 직장에서 20년을 근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평범함을 넘어선, 안정적인 성공적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인간이 겪게 되는 자연스런 삶의 고민들을 겪고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40대란, 이른바 중년의 사춘기이다. 또한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욕구 5단계를 설명하며 마지막 단계를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이야기하였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키워 자기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고픈 욕구라고 할 수 있는데, 욕구는 인간의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요인이 된다. 이와 같이 흔들리는 40대에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루어나가고 있으니, 실로 인간의 욕구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자, 또한 강한 행동력으로 변화를 이루어가는 평범치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40대에 그가 늘 다루던 직장의 ‘변화경영’의 개념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이루며 작가로서 내딛는다. 세 번째 책이 출판된 해, 마흔 여섯에 20년간 몸담았던 직장과 이별하며 1인 기업가로서 지금까지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매일 하루 두시간을 자기를 위해 쓰기를 강조하며 자신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꾸준한 글쓰기는 매년 한권씩의 책을 출간한 결과로 나타난다(혹여, ‘안 보는데 어찌 알리오?’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를 가보면 안다. 홈페이지 칼럼이나 댓글 등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글의 업로드 시간이 새벽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은 IBM에서 20년간 근무하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변화경영’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하는 것이었고 IBM 본사의 말콤 볼드리지(Malcolm Baldrige) 국제 심사관으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조직들의 경영혁신과 성과를 컨설팅했다. 그의 업무와 연관된 대표적인 저서가 『월드클래스를 향하여』(2000)이다. 이 책에서 그는 경영품질모델인 ‘말콤 볼드리지 모델’을 경영자와 직장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공익을 경영하라』,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를 통해 변화에 무관한 듯 보였던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의 변화와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업무 영역에서의 활동은 1992년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제1회 '경영혁신대상' 개인 공로자상이라는 영광을 주었다. 직장을 나와서는 방송에 소개되기도 하고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기업체 및 학교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강연을 통해 2005년에는 삼성 SDS E캠퍼스 강사 3,000명 중 최고의 강사, 기업 CEO들이 뽑은 최고 변화경영 이론가, 직장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강연자 1순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활동이, 기업에서 강연을 하고 직장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 그가 ‘변화경영’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그를 바탕으로 저서를 집필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저서를 직장인들의 업무 관련서로서의 실용서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은 그가 공부한 역사학과 경영학이 조화롭게 ‘변화’라는 주제와 만나 그만의 특징을 나타내며 인간의 근원적인 사색의 힘을 일깨우며 자아성찰과 함께 행동력을 일깨우고 있다. 아마도 책 속에 묻어 있는 치열한 자기 고민과 사색의 힘, 그가 겪은 경험들에서 우러나는 통찰력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처음 집필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부터 『낯선 곳에서의 아침』, 『사자같이 젊은 놈들』, 『깊은 인생』등 그의 저서들은 변화를 하게끔 해주는 매뉴얼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그 변화의 욕구를 관찰하고 자신의 내적인 동기를 탐험하게 하도록 해주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그가 말하는 변화의 개념을 보자. 그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에서 변화란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1년 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1년 동안 죽은 있었던 것이며,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난 24시간 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 있다. 매일 글을 쓰고 매년 책을 내고 있는 그는 어제와 같지 않고 1년 전과도 같지 않다.

 어쨌든 그는 ‘변화’라는 것을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자기 삶에서 쉽게 적용하지 못하고 어렵게 느끼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변화경영’이라는 개념으로서 인문학적인 성찰과 경영학적인 마인드로 개인의 자기 혁명을 이끌어내도록 하고 있는 오래도록 이 분야를 다루고 익혀온 ‘변화경영의 전문가’이다.


3) 부지깽이 - 사부님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다 보면 ‘부지깽이’라는 닉네임이 눈에 띈다. 부지깽이는 불을 지필 때 나무가 잘 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닉네임의 주인은 저자 본인이다.『더 보스:쿨한동행』(2009)에서 그는 이상적인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는 좋은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상사는 부지깽이, 부하는 땔감’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보다 앞서서 이미 스스로를 부지깽이라 칭하고 있다.


 “종종 나는 나를 ‘부지깽이’ 라고 부르곤 합니다. 어떤 감흥으로 그저 그렇게 불러 보았지요. 불이 꺼지려 하면 불씨를 뒤적여 불을 살려내고, 불이 너무 기세를 돋아 몽땅 태우려들면 누르고 벌려 불길을 가라앉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부지깽이지요. 그러다 종종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어 제 몸을 태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를 ‘부지깽이를 든 사람’이라고 부를까 생각 중입니다1)”.


 이와 같이 스스로를 부지깽이라고 부르려면 땔감이 있어야 한다. 그에게 땔감이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과 꿈벗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그는 ‘창조적 부적응자’라고 칭한다. 이들은 자기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공허함을 느끼며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길을 찾고자 하는 모색이 절망이 아니라 창조이기 때문이다2).

 그가 운영하고 있는 연구원 제도에서 연구원들은 매주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칼럼을 쓴다. 이러한 과정을 1년 동안 진행하여 50권의 독서와 50개의 칼럼을 쓰고 이후 자신이 쓰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그가 이끌어 주고 있다. 또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운영하며 이른바 꿈벗을 양성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진정한 자아와 소망을 찾아 위대한 삶의 전환을 모색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은 저자 자신이 날마다 새벽기상을 실천하며 꾸준한 글쓰기를 해 온 것과 같이 많은 이들에게 하루 2시간의 자기 혁명을 이루도록 새벽기상과 새벽활동을 습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는 많은 땔감을 모아두었고 이들 땔감은 부지깽이의 손놀림 아래 열심히 불을 피우고 있다. 그리하여 이처럼 많은 땔감들을 통해 그는 ‘사부님’ 또는 ‘스승님’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땔감과 함께 그 또한 성장한다. 연구원 제도를 진행하면서는 그 또한 함께 읽고 쓰는 과정을 하는 것이다. 또한 땔감의 습도와 종류에 맞추어 적절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가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반응하고 있는 모습은 역시 홈페이지의 무수한 댓글과 땔감에 대한 글들, 땔감들이 만들어낸 서문 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지깽이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직화된 학교라는 정형화된 틀 속에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이러한 연구소를 설립하여 땔감을 부지런히 만들어 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 그 자신의 끝없는 변화와 자기혁명의 자세를 볼 수 있다.


4) 변화경영사상가


 그는 스스로를 변화경영사상가라고 칭한다. 이는 ‘변화경영전문가’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변화경영전문가라는 그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그 자신에 대한 또다른 변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매년 발간되는 그의 저서 속의 저자 소개에서도 나타난다. 그동안 변화경영전문가로서 소개되던 책에서 어느 날부터 ‘변화경영사상가’라고 소개되고 있었다(2008년 출간된 『세월이 젊음에게』에서는 여전히 변화경영전문가로 소개되고 있는데 2009년 『더 보스:쿨한 동행』에서부터는 변화경영사상가로 소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환은 어떤 인식에서 이루어졌을까.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전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기술적인 컨설턴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이제 그것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공부하여 알게 된 것과 체득한 깨달음을 마음대로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을 다루고, 태도를 다루고, 가치를 다루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전환했다(깊은 인생, p98).”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자신에 대한 명명에 주저함이 없는 그의 면면이 드러난다. 실제 그의 저서는 동서양의 철학이 넘나들고 특히 그가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화’에서 ‘변화’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미 그는 모든 저서에서 사상가로 스스로를 명명하기 위한 생각들을 실천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화를 전면에 내세운 『신화읽는 시간』,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책이 발간된다.


5) 변화경영시인


 그는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스스로를 명명하면서 언젠가는 ‘변화경영시인‘이라 부르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것이 작가 인생 후반기의 진화 여정이라고 얘기한다. 그에 따르면 아마도 곧 그는 스스로를 ’변화경영시인‘이라 부를 것이다.

 그는 삶을 시처럼 살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가 말하는 시처럼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시처럼 살고 싶다. 나고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삶이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고, 그 바람길 위의 새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내면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깊은 기쁨, 그것으로 충만한 자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울지. 어느 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문득 의미를 발견하여 말할 수 없는 헌신으로 열중하고, 평범한 한 여인이 문득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내면의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는 느닷없는 전환은 아름답다. 그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깊은 인생, p11)”


“나는 삶을 시처럼 살다 가고 싶다. 책을 보고 싶으면 책을 즐기고, 비가 내리면 비를 즐기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걷고,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그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내 세계 하나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사람들과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살아 있음의 흥분과 떨림이 중요하다. 나에게 있는 특별한 장점은 이렇게 감흥이 도도하게 일어나는 삶의 체험들을 책 속의 지식들과 뒤섞어 그 속에서 무엇인가 진득한 수프를 끓여내는 것이다(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p451)”


 삶을 시처럼 살고 싶은 열망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나온 것인 줄 알았는데 2002년 『사자같이 젊은 놈들』 속에 ‘시처럼 살고 싶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미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그가 살아가고픈 인생을 그리며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던 듯하다. 시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저자가 이야기하듯 깊은 인생을 진득한 수프로 끓여내는 일이라면 그는 막 또 하나의 스프를 끓여 내었다. 바로 『그리스인이야기』다. 여기에서 그는 신화 속 영웅들의 삶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면서 또한 시로서 풀어내고 있다. 그가 신화 속 이들의 삶을 들려주며 종국에는 그들의 삶을 서사시처럼 읊어 내는 것처럼 그의 삶도 누군가에게, 또 그 자신에게 시로서 읊어 지리라. 그보다 먼저 이렇게 누군가의 ‘변화’의 삶을 시로서 읊었으니 지금 그는 ‘변화경영시인’이지 않을까.


참고 자료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http://www.bhgoo.com)

•‘태몽 혹은 인디언식 이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마음을 나누는 편지」 중, 2008.2.15일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어떻게 발견할까-『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구본형, 채널예스인터뷰. 2012.9.25.

•각 저서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프롤로그 - 고대 그리스인처럼 모험하라

p13 그렇다. 이 시대는 신사적이고, 관대하고, 절제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술고래에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배신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비겁하고 소심하며 나약한 인간이 나쁜 사람이었다. 최고의 미덕은 용맹이고 무자비한 지능이며 남자다움이었던 것이다. 초기 그리스인들에게 해적질은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니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인 이 미숙한 야만의 시대에 이미 니체주의자들이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조직화된 해적들끼리의 약탈과 전쟁과 세력 다툼이었다. 여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신들까지 편을 갈라 두 패로 나뉘어 쌈박질을 했다. 이렇게 인류의 문명은 야만과 원시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모든 문명은 원시를 품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이 있다. 그럼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원시는 야만을 품고 있지만 두려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원시란 의식되고 강요된 야만이다. 그렇기에 경외가 아니라 분노로 대꾸하게 된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 누구에게 결정적인가.


p15 이런 비웃음은 철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이다. 철학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무엇을 하는지, 자기가 인간인지 다른 존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철학자는 노예들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웃음을 살 것이다. 웅덩이뿐만 아니라 온갖 어려움에 빠질 정도로 서툰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자란 인간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 플라톤이 탈레스를 두둔하며. 때로 철학자가 되고 싶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그게 밥 먹여주니? 아! 밥!!!…꼬르륵.


p16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당신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가장 쉬운가?”

    “조언하는 것.”

    “신은 무엇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

    “가장 가치 있고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 비난당한 삶을 스스로 살지 않는 것.”

 ⇒ 탈레스의 말들. 가장 쉬운 것조차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입’이 하는 것이 내 행동을 구속하게 될 때. 타인에게 번진 말이 내게 구속력을 발휘할 때마다 생각하지. 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내가 할 수 없기에 좀 더 쉬웠던 것일까. 그래놓고 성심을 다해 좋은 조언을 해 주었는데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똑같은 조언을 나에게 한다. 너는 그렇게, 되더냐?


p16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소. 사실 난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더군요. 나는 그게 지겨웠소.

 ⇒ 그렇지, 그런 게 있지. 정의로운 사람에게 문득 느껴지는 거북함. 그것이 나에게로 향할 때라면 더더욱.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아리스티데스의 이야기. 자신을 추방하고 싶은 사내에게 그 이유를 묻자 저렇게 대답했다지. 그랬더니 아리스티데스는 글을 모르는 그 사내에게 제 이름을 적어 주었다지.


p17 그리스인의 이야기는 위대한 비극 작가들에 의해 훌륭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리스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속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멋진 텍스트와 모델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리스인의 신화를 읽으면서 내가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인류의 한 사람임을 절감했다. 진정한 글로벌인간인 셈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든 우리 안에는 인류의 원시와 고대 그리고 중세가 이 시대와 함께 공존한다. 오늘 그리스인의 이야기에서 그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이끌어내 스스로의 삶을 영웅의 행적으로 끌어올릴 용기와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올리는 힘, 즉 ‘엑셀시어Excelisor의 정신‘은 우리를 도약하게 한다.

⇒ 그리스인 이야기의 부제는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다. 부제에서는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이른바 교훈을 얻어야지라는 다부진 마음을 품어보다가 그리스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속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모델이라는 얘기에서 나의 경직성을 푼다. 그냥 마음이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읽고 그들의 삶을 바라보자.


p18 나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 하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자주적 삶의 방식도 없고 정신적 독립성도 없는 대중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작은 왕국 하나를 건설해가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는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 中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이미 한 세계에 갇힌 자가 또 다른 세계를 추구할 때, 파괴는 보다 폭발적이고 강렬하다. 이미 굳어진 세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자의 저항에 따른 파괴 또한 강렬하다. 창조와 고수의 파괴. 나는 어디쯤에 있는가. 

 

1부  신화가 된 인간


p23 그리스의 희극 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이 창조의 순간을 어둠 속에서 돌연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묘사했다.

 ⇒ 어둠 속에서 돌연 터져 나오는 웃음이라.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 구절도 떠올려 본다. 그 웃음들을 상상해본다.


1장. 미케네 - 모험의 시작


프로메테우스: 최고신 제우스에 맞서다

p28 천상의 신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지나친 인간 편애에 분노했다.

 ⇒ 누구에게나 애착이 가는 것이 있는 법. 제우스도 지나친 인간편애를 가지고 있지. 그 이름은 여성이라.

    프로메테우스. 제가 만든 것에 그리고 무언가 미진한 것에 대한 돌아봄.


p29 아비를 쫓아낸 제우스가 언젠가 다시 그 자손에게 쫓겨나리라는 것은 영원한 무의식의 강박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세대는 언젠가 반드시 지나가고 자식의 시대가 오며, 그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상징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이 시간의 비극이며 또한 축복이다.

 ⇒ 그리스 신화는 ‘자식을 잡아먹는 아버지’라는 끔찍한 상징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적이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아버지는 과거를, 아들은 현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가 자신을 막아 현재일 수 없게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간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아버지의 세대는 사라지고 아들의 세대가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되고 아들에게 죽임을 당해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 신화읽는 시간 中, 구본형


p30 제우스는 한 사람 안에 너무도 많은 대립적 요소들을 넣어두면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갈등해서 하루도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모순, 갈등, 패러독스, 딜레마가 태초의 인간의 조건이 되었다.

 ⇒ 고통과 번민 때문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삶은 또 재미가 없다. 모순, 갈등, 패러독스, 딜레마- 태초의 인간의 조건이 끊임없이 인간의 성장 요소가 되고 있다.


아르고스의 페르세우스: 그리스 최고의 모험을 시작하다

p33 작곡가든 미술가든 조각가든 무용수든 칭하여 예술가라 불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무사이 여신들이 문득 천둥처럼 찾아와 가슴을 뒤흔들고 내 속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심혼을 흔드는 불멸의 대작을 만들어내기를 염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렇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느 한 부분은 여전히 한 인류로서 중세인이며, 고대인이며, 그리스인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인류의 모든 과거가 살아 숨 쉬고 있다가 어떤 야생의 순간에 원시의 순수한 힘으로 우주적 교감을 이루게 될 때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신적 시선은 의식의 혁명을 겪게 된다.

 ⇒ 원시의 순수함 힘. 원시란 말엔 그려보고픈 끌림이 있다. 예술적 영감, 창조의 순간은 왜 그렇게 원시로 묘사되는 경향이 많을까. 원시는 아득하다. 고요 속에서 이뤄지는 불멸의 대작이란 어떤 것일까. 탄생은 늘 신비롭고 축복된다. 예술가에게 있어 탄생이란 떨림이니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필시 대작을 탄생하고픈 예술가들의 욕구는 원시와 닿아 있다. 

    폴 고갱의 그림이 떠오른다. 서머셋 몸의 <달과 육펜스>가 생각난다. 

    “남자와 여자같은 모든 인간 형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인 동시에, 장엄하면서도 무정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잔인한 대자연에 대한 찬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그림을 보니 무한대의 공간과 무한정의 시간에 대한 외경감에 사로잡히게 되더군요. 그가 그린 나무들은 우리가 매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식물들이 그 후부터 내 눈에 다르게 보이는 거예요. 마치 그 속에는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열심히 내 손길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어떤 신비한 영혼이 들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색채마저도 그렇습니다. 예전부터 친근한 색깔들인데도 이젠 왠지 달라 보입니다. 모든 색깔이 각기 자기 특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은 더욱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흙에서 창조되었듯이 흙냄새를 물씬 풍기면서도 동시에 어떤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원시적인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겠죠.”


p35 그러나 지루한 일상의 평화만 있었다면 영웅도 평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으리라.

 ⇒ 지루한 일상의 평화란 개인에겐 축복이 아닐지라도 세상에겐 축복이지 않을까.


p35 왕의 형제라면 존귀한 신분이며 부유한 생활이 가능할 텐데 왜 어부가 되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신화 속에는 유난히 이런 설정이 많다. 왕의 친형제이면서 어부나 농부나 목동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왕이 되지 못한 형제는 권력의 가능성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특히 그 왕이 포악하거나 불안정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렇다.

 ⇒ 누구는 신화를 좀 안 읽나부다. 퇴직하거들랑 그때만이라도 딴짓말고 신화 책을 몽땅 사 읽으면 좋으련만. 특히! 그 ‘왕이 포악하거나 불안정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더욱 읽어야 할 것이다. 형님도 좀 읽으시지요!


메두사: 적을 패퇴시키는 전사의 얼굴

p43 신화 속의 메두사는 두 개의 대극적 가치를 모두 붙들어 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여인이다. 죽음이면서 또한 부활이다. 희생된 자이면서 죽인 자와 결코 다르지 않은 동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이야기 속에 여러 모습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테나는 메두사의 목에서 흘러나온 두 종류의 피를 받아두었다가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선물했다. 왼쪽 혈관에서 나온 피는 죽은 것을 되살려내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이 피를 이용하여 죽은 영웅들을 살려내기도 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그가 필멸의 인간 세상에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판단하여 벼락을 내리쳐 죽게 했다. 같은 몸에서 나온 피가 하나는 독약이고 또 하나는 신령한 생명의 피다. 의술의 힘으로 죽은 자를 살려냈으나 그것이 자신의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업보가 되고 말았다.

  ⇒ 살아가는 일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대극적 가치를 어떻게 실연(實演)해 나가느냐는 싸움이 아닐런지. 


p46 가장 무서운 괴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가장 훌륭한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전환하려는 주술적 기원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아이기스를 찾게 한다.

 ⇒ 적은 내 손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내게 없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내 것으로 채우려는 것. 그것을 이루려는 방법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하고 그저 허영이 되기도 한다.


p47 하나는 괴롭히고 하나는 당하지만 둘 다 같은 사람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가운데 침묵하는 다수가 “그러지마”라고 외쳐야 해결되지.

 ⇒ 오늘날처럼 거침없는 언어가 발화될 수 있는 공간이 또 어디 있을까. 더불어 자행되는 무자비한 침묵. 제 언어의 참 주인이 된다면 침묵 또한 침묵하리라.


카시오페이아와 안드로메다: 어머니의 오만은 딸의 재앙이 되고

p55 무엇을 가지지 못하면 불편하고

    사람을 얻지 못하면 삶 자체가 허무.

 ⇒ 무엇이든 내게 ‘없다’는 것은,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끊임없는 허기를 야기한다.


티린스의 페르세우스: 신탁은 이루어지고 영웅은 별이 되다

p59 페르세우스는 모든 모험을 마치고 아름다운 안드로메다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다가 별이 되었다.

 ⇒ 고된 일을 마치고, 고된 여정을 마치고 나도 얼른 내 잠자리에서 푸욱 잠을 자고 싶다.


p61 거칠고 야망이 큰 고대의 영웅들은 안드로메다와 같이 아름답고 조신한 아내를 얻는 것과 더불어 페가소스 같은 씩씩한 야생의 말을 타보는 것이 평생의 로망이었다. 페가소스의 사각형은 바로 그런 고대 남자들의 로망을 결합시켜둔 별자리가 아니었을까?

  ⇒ 난 안드로메다와 같은 아름답고 조신한 아내는 필요없고, 페가소스를 타고 거친 광야를 달려보고 싶다. 결국 내 가슴 속에 품은 로망도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내 가슴에 별이 된다.


Tip 신화 속의 기괴한 괴물들

p69 히드라의 자취가 남아 있는 영어 관용구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더 악화되는 문제나 조건’을 ‘hydra-headed'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또 네소스의 셔츠’라는 관용구가 한 사람의 명예나 미래를 파멸시키는 ‘치명적 선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 또한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2장. 크레타 - 탐욕의 끝


크레타인: 그리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다

p75 크레타인들은 황소를 적이 아니라 동지로 여겼기 때문에 황소를 죽이지 않고도 승리를 거두었다. 만일 황소가 없었다면 크레타인들은 그토록 튼튼하고 매혹적인 육체와 용맹한 정신력을 얻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위험한 놀이를 견뎌내려면 잠도 못 자는 굉장한 훈련을 하며 담력까지 쌓아야 하지만, 경기의 비법을 체득하면 동작 하나하나가 단순해지고, 확실해지고, 우아해진다. 희망이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황소와 심연을 마주하는 이 영웅적이고 장난스러운 크레타인들의 눈을 그(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의 시선’이라고 불렀다.

 ⇒ 나의 시선은 어떠한 이름으로 불려질 것인가. 나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p79~80 프레스코 벽화들은 화려했다. 에게 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크레타는 부의 황금시대를 누렸고 멋진 환락의 생활을 즐겼다. 그것은 퇴폐에 가까운 호사였다. 에번스는 그리스 문명보다 두 배나 오래된 문명이 자신에 의해 부활하는 것을 지켜보며 눈을 감았다.

 ⇒ 아, 떨림의 순간. 창조의 순간. 내가 죽어도 사는.


미노스 왕: 탐욕이 재앙으로 이어지다

p87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 오른쪽 하단에 미노스와 미다스의 얼굴을 결합한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두었다. 미다스 왕은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했던 ‘황금의 손’, 그 사람이다. 교황바오로 3세의 추기경이었던 비아지오 다 체세나는 당시 가장 독선적이고 탐욕스러웠던 인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역겹고 이교적인 음란함”으로 가득 찬 그림이라고 힐난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모습을 성당 벽화에 그려 넣어 통쾌한 복수를 했다. 들리는 말로는 체세나가 교황에게 엎드려 자기 얼굴을 이 벽화에서 지워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 때 바오로 3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아들아, 주님은 나에게 하늘과 땅을 다스릴 열쇠만 주었다. 지옥에서 나오고 싶다면 미켈란젤로에게 가서 말해라.”

     그리하여 체세나는 아직도 지옥의 뱀에게 생식기를 물린 채 벌을 받고 있다.

  ⇒ 2010년 10월 31일 대학강사 박 모씨는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될 뻔했다. 검찰의 영장 신청 이유는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이기 때문이며 혐의는 재물손괴다. 통상적으로 재물손괴는 구속수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강한 구속 수사 의지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법원에 의해 영장은 기각되어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박씨는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여러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 넣은 것인데 그는 G와 쥐의 발음의 유사성에서 연상하여 쥐를 그렸으며 그래피티 형태의 예술적 표현이라 강조했다. 인터넷을 떠도는 사진으로 보기에는 광포한 낙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디어와 표현이 괜찮네, 충분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속과 공판 등 이 사건(?)이 진행되어가는 상황을 보면서는 실소도 들어가 버렸다. 다른 경로를 통해 그림이 표출된 것이 아니라 공공물을 가지고 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잘못이라 한다고 해도 그 잘못을 지적하는 데 대한 과도한 억압이 나를 분노하게 하고 슬퍼지게 만들었다. 진정, 무엇이 겁이 나는 것인지. 지금 이 곳에서는 그 어떤 표현도 자유로울 수 없구나. 하다못해 예술가라는 이의 행위라면 더더욱. 이러한 환경에서는 내면적인 가치와 다양하고 활발한 상상력을 표출해 내고픈 욕구보다는 억압에 대한 반발이 더욱 강하게 차오른다. 그리하여 모든 창의와 창조는 억압을 풀려는 데 집중된다. 실로 미켈란젤로의 조롱에 발끈하는 체세나에게 저렇듯 대꾸하는 교황도 없는 이 시대에서, 이토록 많은 체세나를 나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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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ohmynews.com,

‘"G20 기간엔 하면 안 됩니다"정리하니 19가지...국격 높아졌나요?“, 10.11.12자>


아리아드네: 모든 젊음은 미망의 미로에서 이 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니

p97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미로를 밝혀준 여인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미궁 속에 길이 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삶이라는 슬픈 미궁을 미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다. 운명이 주어지면 그것을 따른다. 그것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그녀는 인생이라는 미로를 사랑했기에, 그 속에 길이 있기에 그 길이 고통스러워도 버리고 파괴하지 않는다.

 ⇒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아니, 길은 이어지기도 하지만 끊어지기도 한다. 이어진 길에서 멈추기도 하고 끊어진 길에서 다시 길을 만들기도 한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운명을 박차고 싶다. 무엇, 눈 앞에 닥친 운명이 무엇이냐에 의해서!


p98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결코 잊지 마라.

    희미한 소명의 길은 미궁과 같으나

    어두운 내면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없으니

    두려우리라 생각한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죽으리라 생각한 곳에서 살게 되리라.

 ⇒ 나를 발견하기 위해선 극한의 나를 경험해야 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끝없는 극한으로 나를 몰고 가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인지하는 것이다.


다이달로스: ‘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에만 몰두한 장인

p102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든 자기 작품의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주로 주문을 받는다. 헤파이스토스 역시 그랬다. 자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장차 물건의 주인이 될 사람의 주문에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기술자들은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라는 질문에만 몰두한다. 주문받아 제작된 물건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건 그 물건의 주인이 알아서 할 뿐이다. 장인은 오직 어떻게 만드는가에 신경을 쓸 뿐이다.

  ⇒ 작가는 자기 작품의 주인이다. 작가로서의 장인은 그의 작품과 그의 창조적 캐릭터들이 왜 필요한지 생각한다. 작가는 제게서 나온 작품들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가 닿는지 생각한다. 


p102 오래전부터 기술자들은 기술이 윤리적으로 중성이라고 생각했다. 인류 스스로를 파멸시킬 물건들 역시 만든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사용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최초로 핵을 이용한 대량 살상 무기가 만들어질 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매력적인 기술이 눈에 띄면 우리는 일단 거기에 달려들어 일을 벌인다. 그 기술이 성공한 다음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따져본다. 원자폭탄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 기술주의 사회가 중시될수록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p102~103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그 역시 시장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 마치 판도라가 금단의 상자를 열어 모든 죄악을 이 세상에 뿌리듯이 그도 스마트폰을 만들어 세상에 뿌림으로써 ‘생각없음’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사람들은 이것과 함께 일어나고 이것과 함께 잠이 든다.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차지했다. 생각이 사라지고 정보가 주가 되면서 오락과 채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람들과의 연결은 혁명적으로 증진되었으나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을 버려두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서로를 모독한다. 사람들은 몰입을 잊어버렸다. 또한 사람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작은 기계에 물어본다.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찾을 수 없고 노래 가사를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시를 잊었다. 결국 메모리를 잊어버렸다.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죄’가 전염병처럼 범람하게 되었다.

  ⇒ 동물팡의 동물이 끼익끼익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울고 싶어진다.


Tip 신화 속의 기억해야 할 동물들

p106 허물을 벗고 새로워지는 뱀은 죽지 않는 동물로 신성시되었다. 크레타에서는 뱀을 부리는 뱀의 여신을 섬겼고, 아테네 역시 신성한 뱀을 섬겼다.

p107 헤르메스의 신물 중 하나는 케리케이온이라는 지팡이다. 이 지팡이에는 마주 보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겨 있으며 날개가 달려 있다. 두 마리의 뱀은 죽음과 부활, 생과 사,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등 대극적 가치를 나타내며, 두 마리의 뱀이 엉켜서 마주 보는 것은 그 조화를 의미한다. 뱀은 운명 그 자체로 재앙처럼 느닷없이 나타나고, 복수보다 생각이 깊고, 운명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의 상징이다. 발도 날개도 없이 스미듯 침투하는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 뱀, 그 상징의 다양함이여. 원죄를 품고 있는, 유혹하는, 두려운, 현명한…. 새로운 뱀의 이미지를 창조하자. 나만의 뱀의 이미지를.


Tip 디오니소스

p115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제우스는 세멜레의 자궁에 들어 있던 태아를 끄집어내 자신의 허벅지를 가르고 그 안에 집어넣어 키웠다. 그리하여 디오니소스는 ‘두 개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가 되어 여성적 생명과 남성적 생명을 함께 갖춘 신으로 형성되었다. 달이 차서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나자 헤르메스는 황금 보자기에 아이를 싸서 아름다운 니사 산의 요정들에게 키우게 했다.

  ⇒ 아버지와 어머니라. 제우스는 스스로 자궁을 만들어 아이를 품는다. 제 몸 안에 자궁을 심어놓고 아이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자궁에서 아이가 떠난 순간 커다란 자궁의 아이는 품지 않는다. 태어난 아이의 보살핌은 역시, 아버지가 맡지 않는구나.


3장. 아테네 - 문명이 꽃피다


테세우스: 아테네가 가장 사랑한 사나이

p123 아직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

     고정관념이라는 철제 침대에 맞춰 살고 있는 우리,

     그대로 되먹여 치기를 당하듯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그대로 세상도 우리에게 보답하나니

     자기 혁명은 현실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 이루어지는 것.

  ⇒ 어쩌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많은 논리를 쌓아가는 것이 내 안의 고정관념을 더욱 더 견고히 하려는 이유가 아닐런지.


p127 한 번 사랑한 것은 먼저 미워할 수 없으니 네 운명을 사랑하라.

  ⇒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네 운명에 귀기울여라. 그대로 흘러가게 두지 마라.


메데이아: 자식을 죽여서 남편에게 복수하다

p141 나는 메데이아가 아이들을 죽이는 순간,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철저히 파괴되는 순간 괴테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승리의 기쁨에 충만한 순간 외치는 “멈추어라 시간아, 너 참 아름답구나”는 여기서도 등장한다. 바로 이때 악마는 우리의 영혼을 넘겨받게 되어 있다. 악마에게 영혼이 넘어가는 순간 신은 영혼을 악마의 손에서 구원한다. 그레첸 역시 그랬다. 파우스트에게 버림받고 미쳐서 제 손으로 제 자식을 죽이고는 가장 비참한 나락에 떨어졌을 때 신은 그녀를 구원해주었다. 신은 인간의 바닥에 존재한다.

  ⇒ 내 바닥에는 아직 신이 없다.


p141~143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달콤한 죄악 “오 펠릭스 쿨파O felix culpa”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철저하게 하나의 동물적 존재가 죽고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의 시선으로 보면 옛 아담이 새 아담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원죄다. 인간은 영원한 기쁨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이 없었다면 구세주도 없었을 것이다. 이때 이 승화는 그냥 낙원에 머물 때의 의식보다 더 높은 의식의 수준에 도달하게 한다. 그 타락이 없었다면 더 높은 영혼으로의 승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죄악이 얼마나 달콤한 타락인가! 죄악, 바로 육체의 죽음 없이는 정신적 존재로의 재생도 없다. 선불교의 스승 육조 혜능은 그리하여 기가 막힌 명언 하나를 남겨두었다.

     “우리의 순수한 정신은 타락한 정신 속에 있다.”

  ⇒ 타락한 정신으로만 머무는 것이 문제이지. 그 속에서 헤쳐나와 순수한 정신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타락은 타락이다. 타락이 더 높은 정신으로의 전환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아스클레피오스: 필멸의 인간을 되살리고 대신 죽다

p149 아,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삶을 갈구하지 마라. 그 대신 너에게 주어진 운명에 지치도록 탐닉하라. 어찌하여 불가능한 일을 탐하는가? 발 앞에 일을 직시하라. 발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 죽어야 할 우리의 조건을 잊지 마라.

       - 시인 핀다로스, 아스클레피오스를 애도하며

  ⇒ 불멸의 삶을 갈구하지 말라. 불멸의 영혼을 갈구하라. 네 작품으로 불멸의 삶을 꿈꾸어라. 그것 지금 네가 있는 이 자리에서 시작하라.


p151~152 결코 불행을 전하는 전령이 되지 말지니

         사랑할수록 미움도 크고

         복수가 지나칠수록 후회도 크니

         언젠가 분노 속에서 저지를 일을 뉘우칠 때

         그 일을 전한 자를 가장 미워하리라.

   ⇒ 후회는 분노를 왜 그토록 따라다니는가. 분노보다 먼저 찾아와 주면 좋으련만.


p154 현실을 아는 자들은 신이 그에게 허락한 것을 즐길 줄 알고,

     그 천직의 즐거움이 삶임을 믿는다.

p155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그만두고,

     평생 가야 할 길로 들어선 자는

     황금의 시기를 맞이하리니

     그들에게 퇴직은 없다.

     죽음이 바로 퇴직이므로.

 ⇒ 함박웃음으로 일을 맞이할 날이 오리니. 그로써 행복하고 그로써 성장하고 그로써 살아가진다.


Tip 아테나

p164 철학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철학은 세계의 사상인 이성(절대정신)이 그 형성과 과정을 끝내고 난 뒤에 비로소 철학의 시간 속에 나타난다……. 철학이 회색에 다시 회색을 덧칠할 때 삶은 이미 늙어버린 모습이 되어 있다. 잿빛에 잿빛을 덧칠하면 그 삶의 모습은 젊음을 다시 찾지 못하고 단지 인식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서야 그 첫 날개를 편다.

  ⇒ 헤겔, 법철학 서문 中.

     헤겔이 인식한 철학은 더딘 구름같은 것. 


p165 ‘갈리아의 수탉’은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맞불 개념인데, 수탉은 아침에 울어 세상을 깨운다. 철학은 새벽의 학문인 것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에 앞서 그것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현실이 다 지나간 다음에야 따라오는 늙은이의 지혜가 아니라 실천과 행동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P166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만 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또 정신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그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의 날은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

  ⇒ 문학비평가로만 만났던 가리타니 고진이 <세계사의 구조>란 책을 통해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금 이어 가고 있다니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마르크스의 저작물은 이해 전에 그 책 자체에 손을 대는 것에서부터 혁명적인 느낌이 든다.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에 마르크스니 혁명이니 노동이니 자본이니 하는 말은 늘 금단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칼 포퍼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에 빠지지 않는 자는 바보다. 그러나 늙어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고 했지만 마르크스의 저작물을 읽을 땐 늘 나의 모자람 때문에 철저하게 빠지는 것이 안되었다. 이래 저래 바보가 되어 버렸네. 아무튼 많은 철학자들의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들을 짚어가는 것은 흥미롭다.


4장. 테베 -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


이오카스테: 운명의 실타래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p175 나의 잘못이 너무 크기에 인간들 중에서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오직 나를 빼고는.

  ⇒ 격랑의 무게만큼이나 일상의 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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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철 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마침내 운명과 화해하고 스스로 구원받다

p178 쓰라린 고통으로 다져진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거두어 준 나라는 승리와 함께 대지의 번영을 약속받게 되리라는 신탁이었다. 이제 그의 더럽혀진 육체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신성한 성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운명 때문에 겪었던 삶의 고통을 통해 끝내 신들에게서 구원받았고 스스로도 구원자가 되었다.


p179 오이디푸스는 미약한 존재로서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우주가 전하는 부름을 받고 가장 불운한 삶의 길을 견뎌갔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이 불행에 협력하여,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고국에서 추방당함으로써 그 불행을 정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불행의 절대적 의미를 완성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게 되자 그를 몰아세웠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그 너머로 들어선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는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를 수호하는 성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한 인간이 기나긴 고난을 지나온 후 자신의 지독한 운명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

  ⇒ 어떤 이가 그랬다. 바닥에 닿았노라고. 이제 끝난 줄 알았다고. 그런데 지하가 있더라고. 이제야말로 끝이 났다고. 그런데 지하 1층이 있더라고. 다시 보니 2층, 3층…. 한이 없더라고.

     오이디푸스는 대표적 비극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오이디푸스는 왜 처음부터 그렇게 저주받은 운명으로 태어났는가. 오이디푸스가 일으키는 사건들은 우연인 듯 보이지만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운명을 미리 알고 피하기 위해 애를 썼음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운명대로 따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강력한 의지는 알 수 없는 신들의 놀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이디푸스의 오만함이 그의 비극을 초래하는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지만, 그의 그러한 성격을 부여한 것은, 또한 신. 인간은 그 어떤 의지를 가지고서도 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인가. 그럼에도 인간은 불확실한 운명 탓에 어떤 삶에든 강렬한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의지는 순응하는 혹은 거부하는 어느 쪽으로 향할 때 강하게 나타날까. 내가 운명을 사랑하는 방식이 패배가 되지 않도록...


안티고네: 비극과 함께한 불멸의 여인

 ⇒ 이번에 만나게 된 그리스인 중에서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안티고네에게 끌린다. 소포클레스에 의하면 결국 안티고네도 대표적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리스인이야기를 읽으면서 여주인공에 목말랐던 차에 딱, 마주쳤기에 안티고네의 인상은 더없이 강렬하다. 신화 속의 많은 여인들이 영웅으로서의 남성이야기에 부수적인 존재로 위치한다면 안티고네는 확고한 신념과 강인한 행동력으로 무장하고서 다가온다. 안티고네의 사고체계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규율과 법칙에서 우린 무엇보다도 우선시 지녀야 할 가치를 가지게 되며 그러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또 다른 가치와의 이념적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p182 제대로 장례를 치루지 못한 사람들은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영혼이 떠돌기 때문에 나그네라도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것이 인간의 신성한 의무였다. 폴리네이케스는 정당하고 신성한 신의 법에 보호받을 수 없도록 앙갚음을 당하고 만 셈이다.

   

p183~184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법을 내리신 이는 신이 아니며, 확고한 하늘의 법을 왕의 법이 넘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내가 신들 앞에서도 인간의 법을 어긴 죄인일 수는 없어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도 치러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나는 죽을 몸, 두렵지 않아요.”

     안티고네는 외삼촌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변호했다. ‘글자로 쓰이지 않았으나 영원한 법, 양심을 지배하는 법, 편협한 왕이 제멋대로 정한 법보다 더 높고 고귀한 신의 법’에 복종했노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논쟁은 이어진다.

     “하나는 나라를 망치려는 놈이었고 하나는 나라를 위해 싸웠다. 악인과 선인이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느냐?”

     “저승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원수는 죽어서도 친구일 수 없다.”

     “나는 증오를 나누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그러면 저승으로 가서 그놈들을 사랑하려무나.”


p184~185 안티고네는 비유컨대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뻗은 길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녀의 판단이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충절이 대단하다. 이 충절을 굽히게 되면 그녀의 세상은 단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녀에게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말로만 하는 사랑을 증오한다. 안티고네는 오직 하나의 사랑, 여기서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에게 모든 것을 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전부를 바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동생 이스메네에게도 함께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인생에서 빠지기를 바랐다. 친구가 아니면 곧 적이다.


p185 안티고네에게는 하나의 패밖에 없다. 그녀는 유일한 패에 전부를 건다. 안티고네는 그런 면에서 자신에 대한 광신자다. 자신의 믿음에 절대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비타협과 불관용이 필수적이고 또한 효과적이다. 물러서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귀함은 배타적이다. 안티고네의 고귀함은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동굴에 갇힌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제 자살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목을 매면서 그녀의 삶은 끝났다. 안티고네라는 영웅은 한계에 다다르고 벽에 부딪쳐 추락한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핵심이다.


p185~186 비극이란 주인공의 극적인 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 지닌 힘을 확장하여 한계의 벽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과 모험을 담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레이서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탄환처럼 달린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파멸한다. 그 벽 너머에는 인간 세상이 아닌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신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와 믿음으로 스스로를 넘어섬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저 멀리 밀어낸 사람들의 추락과 파멸을 다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평은 바로 이런 영웅들의 부딪힘에 의해 알려진다. 어느 영웅이 넓혀놓은 경계는 다른 영웅이 나타남으로써 다시 조금 더 확장된다. 모든 영웅의 공통점은 그때까지 알려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척후병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변방을 넓혀왔다. 끝까지 간 사람들, 그들이 영웅들이다. 그들은 원래 평범했으나 삶을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쓰일 수밖에 없다.


p186 안티고네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 잊히는 그런 죽음이 아니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은 두 개의 법이 부딪히고 두 개의 가치가 부딪히고 두 개의 문화가 부딪히고 두 개의 종교가 부딪힐 때마다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투쟁의 이야기다. 고대의 이야기 하나가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흥과 사라지지 않는 숨결로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유는 그것이 먼지 낀 과거로 죽어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극은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극은 끝나는 법이 없다. 비극이 태어나게 된 조건들이 존재하는 한 비극은 오늘을 사는 인간들에게도 여전히 열려 있다. 열려 있는 그 문은 인간의 미래를 향한다.

  ⇒ 안티고네의 죽음이 한 개인의 죽음으로 인식되지 않고 문화간 충돌로서 확장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문명의 충돌로 인해 나타난 비극적인 결과들이 고대에도 현대에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물며 한나라 안에서도 한 지역에서도, 한 가정과 한 가정간의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크레온: 백성 위에 군림하는 법의 집행인

p188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쳐다보는 똑같은 기질의 동일인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를 쓴, 매우 특별한 경력의 문학가인 앙드레 보나르는 이 두 사람을 “닮은꼴 성격, 상반된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기질과 성격은 판박이지만 지향점은 서로 반대라는 것이다. 굽힐 줄 모르고, 강인하고, 잔인할 만큼 지독하고,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타협할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자신에 충성하는 광신자들이다.

  ⇒ 나와 의견이 맞지 않거나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를 두고서 ‘너랑 닮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의 그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p190~191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어 죽게 생기자 크레온의 아들이며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그 역시 굽히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 그들은 다시 정면으로 맞선다.

     하이몬 : 바르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크레온 : 내가 이 나라를 내 판단이 아닌 남의 판단으로 다스리라는 말이냐?

     하이몬 : 한 사람의 소유물이라면 그건 나라가 아닙니다.

     크레온 : 국가가 통치자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하이몬 :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막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크레온 : 괘씸한 놈, 이렇게 터놓고 아비를 적대하다니.

     하이몬 :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정의를 어기고 게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크레온 : 나의 왕권을 존중하는 것도 잘못이냐?

     하이몬 : 신의 명예를 짓밟으시면 왕권을 존중하는 것이 못됩니다.

     크레온 : 다 그 계집을 위해서 하는 말이구나. 살아서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다.

     하이몬 : 그러시면 그 여자는 죽는 것이지요. 죽음으로써 또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크레온 : 너,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

     하이몬 : 잘못 생각하신 것을 말씀드리는 것도 위협입니까?

  ⇒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비극은 결국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이다. 소설 다빈치코드가 발간되고 영화가 개봉되던 때 기독교인들이 반발하면서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하자, 교인인 친구에게 말했다.

     “기독교 윤리가 사랑이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어. 그냥 영화로써 보면 안돼? 꼭 저래야 하니?”

     친구는 말했다.

     “이건 신념의 문제야.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고 믿어왔던 믿음이 통째로 부정되고 있다는 것, 그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해봐”

     “어차피 영화하나로 흔들릴 믿음이라면 흔들릴대로 흔들리게 놔둬. 결국 믿음이 부족해서 흔들리는 거지. 흔들릴 요소가 있다는 거 아냐?”

     “저걸 통해서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잖아”

     “교인은 성경을 더 열심히 읽으시어 믿음을 키우시옵고, 비교인들이 교리로서, 종교로서가 아니라 영화로서 흥미있게 보고 한번쯤 예수와 마리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다고 한들 그게 저런 대응을 할 이유는 안되지” …

     아, 그날의 결론이 기억이 안난다. 확실한 건 나는 주구장창 다빈치코드가 흥미진진하다고 떠들어댔다는 것 뿐이다.

 

 

2부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


p197 화려하고도 거친 삶의 우리를 뒤흔든다.

 ⇒ 그래서 때때로 희극보다는 비극에 이끌린다.


5장. 아테네->트로이 - 출항


헬레네: 모든 것을 침묵시키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니

p209~210 세 여신은 각자 파리스가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약속했다. 아테나는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와 영광을 주겠다고 했고, 헤라는 유럽과 아시아의 군주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고,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사랑을 선택했다. 

 ⇒ 대체로 주장되기를 여성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성은 명예와 권력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파리스의 선택을 놓고 보자면 돌연변이도 존재한다.


아가멤논: 딸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

p213 여신은 왜 화가 났을까? 그리스 병사 하나가 아르테미스가 가장 아끼는 토끼 한 마리를 그 새끼와 함께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신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었다. 처녀신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순결한 피로 화를 풀 것이라는 부조리한 신탁이 내려졌다.

p215 결국 그는 예언자 칼가스가 전하는 부조리한 신탁 자체에 대항하지 못하고 의무를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에 지고 말았다. 부조리한 신탁을 거부해야 할 곳에서 이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딸을 지키기 위해 당당해야 할 곳에서 사령관의 명예와 의무 속으로 숨어버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난폭하고 비정한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부조리에 복종해버렸다.

  ⇒ 지금 나는 인간으로서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를 하는 것이겠다. 토끼와 인간이란 두 생명체에서 인간의 생명에 더 우위를 두는 것 말이다. 그러므로 아르테미스의 처사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생각해보면 가진 자들은 늘 쉽다. 그들의 화도 그들의 용서라는 것도. 사냥꾼 악테온도 니오베도 아르테미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저주받았다.

     진 시노다 볼린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1992)』이란 책에서 아르테미스를 경쟁심이 가득한 우리들의 큰언니라 표현하고 있다. 이 여신은 한번도 괴로워 본 적이 없으며 그 대신 자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이들을 해쳤으며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이들을 위협했다. 헤라와 아르테미스가 둘 다 분노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헤라가 다른 여성에 대한 분노를 일삼았다면 아르테미스는 다른 남성이나 남성들에 분노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얕보거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존중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이러한 잔인함이 나타나는 아르테미스형 여성들은 동정심과 애정을 개발시켜야 하며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성숙으로 이르는 변화는 관계 안에서 생기며 사랑하는 남성을 낳거나 아이를 낳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관계맺음에 대한 진의 결론이 맘에 들지 않는다.


Tip 신화 속의 예언자들

p223 미래는 인간에게 늘 불안하며 궁금한 영역이었다. 알 수 없다는 것,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 알 수 없음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미래란 한때 운명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운명’이 무엇인지 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 때가 되면 그것은 가능성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계몽주의를 거쳐 혁명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미래는 인간의 무한함에 대한 슬로건으로 바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예측이 가능한 기술적 진보에 의해 설계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아직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원시적 그늘에 머물고 있다. 생각해보라. 의사결정을 해야 할 갈림길에 선 마음의 움직임을.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순간 순간의 선택에 대해 많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종국에는 진리인 듯 점집엘 간다.


6장. 트로이 - 격돌

p241 부디 불화는 신들 사이에서도, 인간들 사이에서도 사라지기를! 그리고 노여움도! 그것은 현명한 사람도 거칠게 하고, 그것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요. 사람의 마음속에서 연기처럼 커져갑니다.

 ⇒ 이것을 생각해 보면 모든 신 중의 으뜸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이 왜소행성 134340이란 이름을 부여받았다. 저승세게 지배자인 하데스의 영문명인 플루토란 위엄을 갖추고 있다가 플루토보다 더 큰 행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행성의 발견자는 태양계의 열 번째 행성이라 주장했다는데 결국 국제천문연맹은 이 행성 역시 왜소행성이라 결론지었고 명왕성의 행성지위도 박탈했다. 2005년 발견된 이 행성, 왜소행성의 이름 역시 에리스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최고의 훈남과 사랑스러운 여인

p256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전쟁에 관여한 어느 여신들보다 고귀했다. 시종일관 저속하고 야비하게 등장하는 헤라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보다 더 훌륭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말을 삼가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으며 앞에 나서서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험담을 듣는 것을 싫어했고 부질없는 잡답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더욱이 남편에게 권유할 때와 양보할 때를 잘 분별하는 여인이었다.

  ⇒ 안드로마케가 여신이라면 과연 어떤 것을 주관하는 신이었을까?


p261 네오프톨레모스는 이제 절친한 친구가 된 헥토르의 형제 헬레노스에게 자신의 왕국을 넘겨주며 안드로마케를 아내로 맞으라고 유언했다. 헬레노스는 원래 예언자였다. 그는 네오프톨레모스가 트로이에서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할 때 바닷길 대신 육로를 택하라고 권고했다. 그 덕분에 오디세우스처럼 바닷길을 택한 그리스군이 풍랑과 폭우로 수없는 고난을 당할 때 네오프톨레모스는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승자와 패자, 주인과 종으로 만났고 혈육을 죽인 원수지간이었으나 젊은 그들은 적대감 속에서도 우정을 만들어갔다. 원수이자 남편인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은 후 안드로마케는 헬레노스와 함께 그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렸다. ‘희망’조차 없어 보였던 그녀의 만년은 평화로웠던 것 같다.

  ⇒ 여성의 운명이란, 참!! 신화속의 신들의 이야기를 떠나 신화속에 나오는 많은 이들 중에서 여성에게 영웅이라 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영웅들은 늘 남성이었고 여성의 가치는 그러한 영웅들 이야기 속에 붙어서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그들을 사랑한 삶이 전부다. 그렇지 않으면 남성의 삶을 괴롭히는 괴물같은 악녀. 태초부터, 그것이 종교에서 발현되었다고 한다면,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 하나에서 탄생하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 남성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원죄를 짓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여성은 외면받는 것인가.


3부. 혹독한 귀환


p273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들은 또한 그 승리의 희생자들이기도 했다. 너무도 긴 싸움 속에서 몸은 피폐해지고 정신은 소진되었다. 모든 그리스군은 트로이에서 그리스로 귀환하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다. 그들은 승리에 도취해 신들에게 감사하다는 것을 잊었고, 신전에서조차 무자비한 야만을 자행했다.

  ⇒ 전쟁 속에서 승리자와 희생자를 어찌 구분할 수 있으랴. 원인을 준 자가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꼭 생색내기 바쁘지.


7장. 아테네 - 운명의 굴레


클리타임네스트라: 수많은 저주를 술잔에 채우다

p280~281 하고 싶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자,

     운명에 쉽게 굴복하면서

     그 두려움에 대한 항복을 용기라 부르는 자,

     비겁한 자는 자신의 왕이 되지 못하는 법.

     속으로는 떨면서 부러질 듯

     단호한 자는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자의 집착만한 재앙은 없다.

  ⇒ 속으로는 떨면서 부러질 듯 단호한 자, 진정한 용기는 속과 겉 모든 것이 단단한 것.


엘렉트라: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여인

p287 마음을 어둡게 가지면

     싸움이 싸움을 낳고,

     당하지 않아도 될 불행을 당하는 법.

    -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중 코러스가 부른 노랫말

  ⇒ 많은 콜플렉스 중 공감가지 않았던 <엘렉트라 콤플렉스>. 이것은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것이다.


오레스테스: 무죄를 선언했으나, 양심은 위로받지 못하고

p288 운명이 이끄는 비극적 인생을 살다간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많다. 그러나 스스로 죄임을 알면서도 그 죄를 의무로 짊어지고 그 끔찍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도록 기계 장치에 걸려든 사람은 많지 않다.

  

p292 어미란 자식의 혈친이 아니라 태내에 새로 깃든 씨를 기르는 데 불과하다. 자식의 본질은 아비이며 어미는 오직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듯 그 어린 싹을 보육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어미가 없어도 아비는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그 아름다운 사례가 이 아테나 여신이다. 여신은 일찍이 어두운 태내에서 양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신도 이처럼 아름다운 신을 키우지 못했다.

     - 오레스테스에 대한 아폴론의 변론

     *아폴론의 변론은 아이스킬로스가 <오레스테이아>3부작을 쓰던 기원전 5세기 그리스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 아테나 여신의 탄생은 나를 흥미롭게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 중 아테나에 끌렸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 무장하고 나온 지혜의 여신. 안타깝게도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지혜를 가진 여신이기에 아테나 여신이 고작 헤라와 아르테미스 사이에서 미를 가리는 일 따위에 끼어서 종종거릴 때, 그럴 순 없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부르짖었었다. 그런데 이젠, 모성, 양육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이 필요없음의 대표적 사례가 되다니!


이피게네이아: 마침내 저주를 축복으로

p298 비극이 시작된 곳으로 달려가라.

     아비가 딸을 죽이자 원한에 찬 어미가 아비를 죽이고

     다시 아들이 어미를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으니

     첫 원한의 매듭을 풀어라.

     보복은 끝이 없고, 결국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죽이게 되나니, 바로 나.

  ⇒ 事必歸正, 結者解之…. 더 생각안난다.....


8장. 트로이->이타카 - 승리한 자의 고난


트로이의 오디세우스: 가장 그리스적인 그리스인

p305 아카이아인들은 생각이 깊지 못한 대신 행동은 늘 활기차고 신속했다. 이 시대는 너무도 젊고 강인해서 예절이나 철학에 연연하지 않았다. 아마도 격렬한 위기나 혼란스러운 전쟁의 후유증이 아니었을까 한다.

  ⇒ 예절이나 철학에 연연하지 않는 건 늘 젊은 세대들인 듯한데. 이집트 비석조각에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없어”라고 적혀 있다고 하지 않던가.


p310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아.

     오직 마음에서 잊힐 때 죽게 되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랑을 품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이니 10년 20년 동안, 어쩌면 더 오래.

  ⇒ 그래서 사람은 기억되고자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내가 죽어서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 이것도 로망.


칼립소: 사랑은 방랑자의 족쇄가 되어

p314~315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사이에도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이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라티노스라고도 하고 나우시토스와 나우시노오스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모르면 어떤가? 그들은 그 후 한 번도 자신을 세상에 알릴만한 일을 하지 못했으니 그 이름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 어릴 적부터 이름에 민감했던 난, 누군가로부터 아예 안 불려지더라도 불려진다면 정확하게 내 이름이 불려지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지금에도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나 따위의 이름에 관심같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폴리페모스: ‘아무도 아닌’ 자에게 하나밖에 없는 눈알을 빼앗기다

p321 그들은 키콘족이 다스리는 이스마로스라는 섬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도시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죽인 자의 아내들과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누구도 정당한 제 몫을 받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정의였다.

  ⇒ 공평과 공정 중 어느 것이 정의에 가까운가.


p325 한쪽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신이 있고

     또 한쪽도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신이 있으니

     신이 없어 평화가 없는 것은 아니야.

     다른 우주적인 것들을 죽여서 먹어야

     겨우 삶이 지탱되는 슬픈 운명의 인간들.

  ⇒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잡신론자라고. 토템,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등의 모든 신들이 가끔 내게 불려온다.


키르케: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여신 같은 마녀

p327 이 섬에서 썩 꺼지시오. 살아 있는 자들 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람이여! 내게는 신들로부터 미움받은 인간을 보살펴줄 권한이 없소. 어서 썩 사라져보시오! 그대가 이리로 다시 되돌아온 것은 신들이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이오.

  ⇒ 아이올로스처럼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과 행동으로 대하게 될 지를 생각해 본다.


p331 오디세우스는 그 험하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운명에 낙담하고 울었다. 하지만 그는 실컷 울고 난 다음 키르케에게 하데스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가야 할 길이라면 두렵지만 가야하고 고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거부하지 않으리라.

  ⇒ 실컷 눈물을 쏟고 보면 때론 오기가 생긴다.


그리스의 영웅들: 저승에서 다시 만나다

p335 세상을 떠나 죽은 자들의 통치자가 되느니 차라리 이승에서 재산도 없고 가난한 머슴이 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을 받은 아킬레우스.

  ⇒ 개똥밭에 굴러도 정녕 이승이 좋은 것일까. 알지 못하는 세계는 공포와 환의의 두 얼굴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는 숟가락이라고 했다. 천당이나 지옥이나 모든 것은 똑같다. 심지어 팔보다 기~인 숟가락을 가지고 음식을 먹는 것도. 천당에 있는 자들은 긴 숟가락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무식하게 긴 숟가락을 가지고 제 입에 음식을 떠넣겠다고 아우성치다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라고. 그렇담 천당과 지옥의 차이는 사람이겠네.


p339 그(시시포스)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날마다 굴려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이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도 아직도 영원히 바위를 밀어올리고 있다.

      호메로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했지만 신들이 보기에는 입이 싸고 교활하며 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심히 마뜩잖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은 것이다. ‘무익하고 희망없는 일의 반복’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신들의 생각은 일리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 나는 늘 시시포스 형벌을 받고 있는 듯했다. ‘무익하고 희망없는 일의 반복’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는 말, 격하게 공감한다.

     그리고 시시포스의 신화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비교하며 그들의 행동과 그 대가인 벌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헬리오스의 오디세우스: 부하를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다

p341~342 몸은 새이고 얼굴은 여인인 이들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공들을 유혹하여 암초가 즐비한 해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좌초하게 하여 그들을 잡아먹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귀를 단단히 막으라고 시켰다. 그러나 그는 사이렌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고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사이렌들의 노래에 혹해 풀어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 저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란.


페넬로페이아: 마침내 그녀에게 돌아갔지만

p352 오디세우스는 시인의 목숨을 살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일을 잘 기억하여 잊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게. 선행이 악행보다 얼마나 더 나은 것인지를. 노래거리가 많은 그대는 살육을 피해 안마당에 나가 앉아 있도록 하게.”

  ⇒ 그 어떤 혼난 속에서도 시인의 목숨은 살아남았다. 시인이란,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기록의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


Tip 헤르메스

p362 전령의 상징이 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지팡이는 우주의 축을 의미하며 헤르메스는 이 축을 타고 하늘과 땅을 왕래한다. 손잡이 부분에 날개가 달려 있는 이 지팡이를 서로 마주 보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다. 두 마리의 뱀은 궁극적으로 통합되는 이원적 대립물을 상징한다. 뱀 한 마리는 독을 뜻하고 또 한 마리는 치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두 마리의 뱀은 질병과 건강을 상징한다. 이것은 유사 요법, 즉 ‘자연은 자연으로 물리친다’는 고대의 사유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우주에 작용하여 대립하는 두 가지 힘의 상호 보완적 성격을 보여준다. 두 마리의 뱀은 결합과 해체, 선과 악, 불과 물, 상승과 하강, 남성과 여성 등 대립적 요소를 상징한다. 그러니 헤르메스는 공간을 넘나들 뿐 아니라 대극적 가치의 쌍방을 넘나들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이기도 한 셈이다.


9장. 트로이-> 로마 - 위대한 로마의 탄생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 위대한 제국의 시조

p368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들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과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들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들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 그들이 세운 제국 로마가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번영을 누리고 오늘날까지 그 위대함이 바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 트로이 멸망 후 아이네이아스는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 제국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전해진다.

      꼭 뛰어난 자만이 살아남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특출한 한가지 재주만을 가지고 그것만 믿고 있으면 재주가 독이 되는 때도 있다. 


헤카베와 폴릭세네: 불굴의 트로이 여인들

p374 그녀는 평온을 잃지 않았다.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가슴이 남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옷깃을 여몄다. 그녀는 모욕을 당하고 죽어야 하는 패배의 순간에도 인간은 명예를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패배의 순간에도 패배를 인정할 수 있고, 모욕을 당하는 순간에도 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것.


p376 헤카베의 아들들은 예언자 헬레노스만을 남기고 다 죽었다. 트로이의 비극 역시 모든 전쟁터의 비극처럼 끝났다. 전쟁의 이름은 모두 다르나 하나같이 모두 참혹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트로이의 유민들: 패배한 자들은 새 땅을 찾아 나서고

p389 파도가 어찌나 높게 솟아오르던지 하늘의 별들을 핥을 정도였고 파도 사이의 소용돌이 아래로는 바다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였다. 이 치명적인 폭풍의 배후에는 늘 그렇듯이 헤라 여신의 증오가 서려 있었다. 헤라는 당연히 모든 트로이인들을 미워했다. 그녀는 결코 파리스의 심판을 잊을 수 없었다.

  ⇒ 어쩌면 타인에 대한 증오와 미움의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p390 인간은 이 운명에서 저 운명으로 부름을 받는 것,

     부름이 끝나 한 곳에 머무는 순간

     삶은 저녁처럼 저문다.

     그러니 풍랑과 폭우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떨림의 기쁨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니.


     풍랑이 던져놓은 새로운 운명의 해변에서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다시 푸르게 살게 하나니.

     모든 죽음은 영원한 평화, 그러니

     살면서 아무 일 없는 무풍의 권태를 참지 마라.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니.

  ⇒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다.

     … 살면서 아무 일 없는 무풍의 권태를 참지 마라.

     참지마라.


여왕 디도: “배신자여, 그대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떠나는가?”

p391 방해하는 신이 악을 쓰고 막으니 지척도 먼 곳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여신 하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 신도 인간의 운명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가혹한 신이 있으면 온정으로 도와주려는 신도 있는 법. 그렇게 아이네이아스는 파도의 마루 위로 처올려져 배가 깨지고 시신을 바다에 뿌릴 뻔했으나 늠름하게 다시 살아나 카르타고의 궁정을 걷게 되었다.

  ⇒ 내 삶에 가혹하라. 또한 내 삶에 온정을 베풀라.


p393 디도는 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호한 여인이었다.


p399 운명과 신이 허락했던 달콤한 그의 유품들이여, 너희들이 나의 혼백을 받아주고, 이 고통에서 나를 풀어다오. 나는 내 인생을 살았고, 이제 운명이 정해준 모든 노정을 다 마쳤으니 이제 나의 위대한 혼백은 저승으로 내려갈 것이다. 나는 카르타고를 세웠고, 내 자신의 성벽을 보았고, 남편의 원수를 갚았고, 내 오라비를 응징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만일 그의 함선이 내 땅의 해안에 닿지만 않았던들.

 ⇒ 영어시간에 무수히 반복했던 If~가정법. 나 또한 살면서 무수한 가정법에다 내 삶을 대입했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가정법으로 대치하여 상상하여 글쓰기를 펼치더라도 앞으로는 내 삶을 가정법의 사례로 삼지 않을 것이다.


시빌라: 황금 가지를 들고 하데스의 나라로

p401 불행에게 머리를 숙이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더 꿋꿋해져야 해요.

  

p401 시빌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는 여사제들이다. 여러 명의 시빌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빌라가 바로 쿠마이의 시빌라다. 그녀는 동굴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급속하게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다. 종려나무에 시처럼 운문으로 신탁을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아폴론은 그녀를 사랑하여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쥐고 그만큼의 햇수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폴론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1000년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젊음을 함께 원하는 것을 잊었기에 해마다 그녀는 늙어갔고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나중에는 작은 새장 안에 들어가 살 만큼 작아졌다. 아이들이 “시빌라, 무엇을 원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녀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죽고 싶어”라고 대답하곤 했다.

 ⇒ 시빌라처럼 살아가지 않도록 하자. 허망한 것을 한 움큼 쥐고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짧은 순간 순간 강렬하고 담대하게.


p403 그녀(헤카테)는 왜 교차로의 여신이 되었을까? 후대에 오면서 그녀는 세 가지의 개념이 합쳐진 여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래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었다. 즉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 이전, 거인족이었던 티탄족의 달의 여신 셀레네였다.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지상의 숲 속에서 쏜살같이 달리는 모든 짐승들의 여신 아르테미스였다. 그리고 지하 세계에서는 달의 어둠, 즉 달이 나타나지 않는 어두운 밤의 여신 헤카테였다. 헤카테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 관련이 있었고, 사악한 마법이 이루어지는 모든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세 가지 모습이 모두 들어 있는 이 여신은 그래서 세 갈래 길이 교차하는 교차로에 산다. 그녀는 모든 강한 것을 파괴할 만큼 강하고, 그녀의 사냥개는 온 도시가 울리도록 짖어댄다. 선과 악 사이의 불분명한 지점, 그 교차로에 그녀는 웅크리고 있다.


p405 그리스 신화에는 에레보스라는 암흑의 공간이 있다. 이 암흑의 공간에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다섯 개의 강이 흐른다. 그 첫 번째 강이 아케론이다. 슬픔의 강이다. 여기서 뱃사공 카론은 뱃삯으로 동전 한 닢을 받는다. 부귀 귀천에 관계없이 오직 한 개의 동전을 받고 배를 태워준다. 두 번째 강은 코키토스다. 비탄과 통곡의 강이다. 첫 번째 강에서 슬픔을 버리고 두 번째 강에서 비탄과 통곡을 버린다. 그리고 세 번째 강에 이르게 되는데, 그 강의 이름이 플레게톤이라는 불길의 강이다. 죽은 자들이 불로 자신을 정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네 번째 강이 유명한 스틱스 강이다. 증오의 강이다. 스틱스는 원래 여신의 이름인데, 제우스를 대장으로 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족과 권력을 두고 전쟁을 할 때 제우스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신들이 맹세를 할 때는 이 스틱스 강물을 떠다가 그 앞에서 서약을 하게 했다. 다섯 번째 강이 바로 레테로서 망각의 강이다. 이 물을 마시면 전생의 모든 기억과 번뇌를 잊고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 다섯 개의 강을 다 건너면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은 엘리시온으로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타르타로스라 불리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이르러 암흑인 에레보스는 끝나게 된다.

  ⇒ 그리스의 신들은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한다. 제우스도 이 강에서 맹세한 것은 지키는데 세멜레는 이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스틱스 강을 걸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은 신은 일 년간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9년 동안 신들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다섯 개의 강 중 증오의 강에서의 맹세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아킬레우스가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도 스틱스 강에 담겨지고 나서이다.


p407 어떤 사람은 세상이 불로 끝장이 나리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나리라 말한다.

     내가 맛본 욕망에 비추어

     나는 불로 끝장이 나리라는 사람들 편에 서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나는 증오의 힘을 알기에

     얼음 또한 충분히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증오만으로도 충분하리라.

      -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불과 얼음>


라비니움의 아이네이아스: 로마의 기초를 세우다

p414 이 도시에는 전쟁을 시작할 때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그들이 섬기는 야누스 신전의 정문은 두 짝으로 되어 있는데, 왕이 이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비로소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만물에 영혼이 있으라. 야누스는 問의 신이라 한다. 로마신화의 신이라하니 로마인들이 ‘문’도 신성시한 모양이다. 우리가 흔히 ‘두 얼굴의 야누스’라고 얘기하는데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하고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왕이 문을 열어야 전쟁이 시작되고 평상시에는 문을 닫는다는 것인데, 잠시 오히려 전쟁 중에 문을 꼭꼭 닫아 거는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평화로운 상황에서는 문은 닫혀 있을 필요가 없고 전쟁과 같은 위험에서는 문을 닫아 두는 것. 나라의 초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에 있는 신전이니 성문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역시 왜 그렇게 의미를 두었는지는 좀더 찾아봐야겠다.


p420 승리자도 패배자도 똑같이 죽고 죽이며 쓰러졌고, 이 편도 저 편도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직 의미없는 분노와 복수와 광기의 여신들이 창백한 얼굴로 바람처럼 이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한쪽에서 아프로디테가, 그리고 한쪽에서는 헤라가 미쳐 날뛰는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p427 인간은 한때의 행운이 떠받쳐주면 절제할 줄 모른다.

  ⇒ 행운이란 다가온지도 모르게 늘 지나쳐가버리는 듯이 여겨졌다. 나의 무절제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레아 실비아: 그녀의 꿈에서 제국은 시작되었다.

p435 모든 시작은 초라하다. 그것은 하나의 꿈에서 시작한다. 꿈속의 씨앗 하나가 자라 하늘의 별에 닿을 때 새로운 제국 하나가 생겼다. 로마는 한 여인의 고단한 꿈에서 태어났다.

  ⇒ 모든 시작은 초라하다. 나의 꿈도 초라하다. 그러나 아직 시작일 뿐이다.


에필로그 - 키가 자라 머리가 별에 닿았네

p448 시인에게 말과 사물은 같은 것이다. 그는 <활과 리라>에서 ‘말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 사물도 똑같이 피를 흘린다’라고 했다. 시인은 사물에 대한 공감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유려한 시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옥타비오 파스)는 호메로스가 되고 싶어 했고, 그렇게 시인으로서의 운명은 어느 날 그에게 찾아왔다. 그는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p450 나는 오랫동안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살아왔다. 스스로를 변화경영전문가라 불렀다. 변화를 나의 삶에 적용하는 순간부터 자기 계발과 자아 경영과 연결되게 되었다. 자기 경영의 요체는 왜곡되고 강요된 껍데기의 삶을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모색이다. 나의 세계를 찾아내 그 주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기 혁명인 것이다.

  ⇒ 나는 오랫동안 나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무엇으로 여기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본다. 이른바 유사욕망으로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기만 한 것은 아닌지 좀더 진득하게 하나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바를 키워봐야겠다.


p450~451 신화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어느 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역할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자각하고는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법을 수련하여 드디어 평범한 사람은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업을 성취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힘을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는 이야기다. 신화란 그 이야기 속에 자기 혁명의 진수와 핵심을 뼈와 살로 품고 있는 비서임을 알게 된 것이다.

 ⇒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는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가 무엇인가. 어떤 때는 평범하기를 원하고 어떤 때는 또 비범하기를 원한다.


3. ‘내가 저자라면’


■ ‘그리스인이야기’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프롤로그 - 고대 그리스인처럼 모험하라

 

1부 신화가 된 인간

 

1장 미케네 - 모험의 시작

 

프로메테우스: 최고신 제우스에 맞서다

 아르고스의 페르세우스: 그리스 최고의 모험을 시작하다

 메두사: 적을 패퇴시키는 전사의 얼굴

 카시오페이아와 안드로메다: 어머니의 오만은 딸의 재앙이 되고

 티린스의 페르세우스: 신탁은 이루어지고 영웅은 별이 되다

  Tip 제우스

  Tip 신화 속의 기괴한 괴물들

 

2장 크레타- 탐욕의 끝

 

 크레타인: 그리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다

 미노스 왕: 탐욕이 재앙으로 이어지다

 아리아드네: 모든 젊음은 미망의 미로에서 이 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니

 다이달로스: ‘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에만 몰두한 장인

  Tip 신화 속의 기억해야 할 동물들

  Tip 3대 마녀들

  Tip 디오니소스

 

3장 아테네 - 문명이 꽃피다

 

 테세우스: 아테네가 가장 사랑한 사나이

 메데이아: 자식을 죽여서 남편에게 복수하다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사랑이 증오가 되어 죽음을 낳다

 아스클레피오스: 필멸의 인간을 되살리고 대신 죽다

  Tip 아폴론

  Tip 아테나

 

4장 테베 -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

 

 테베의 오이디푸스: 스핑크스를 죽인 현인

 이오카스테: 운명의 실타래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마침내 운명과 화해하고 스스로 구원받다

 안티고네: 비극과 함께한 불멸의 여인

 크레온: 백성 위에 군림하는 법의 집행인

 

2부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

 

5장 아테네->트로이 - 출항

 

 헬레네: 모든 것을 침묵시키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니

 아가멤논: 딸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

  Tip 헤라

  Tip 신화 속의 예언자들

 

6장 트로이 - 격돌

 

아킬레우스: 영웅이여, 분노하라

파리스: 그의 선택이 트로이를 멸망시키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최고의 훈남과 사랑스러운 여인

  Tip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

  Tip 헤파이스토스

 

3부 혹독한 귀환

 

7장 아테네- 운명의 굴레

 

클리타임네스트라: 수많은 저주를 술잔에 채우다

엘렉트라: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여인

오레스테스: 무죄를 선언했으나, 양심은 위로받지 못하고

이피게네이아: 마침내 저주를 축복으로

  Tip 아르테미스

 

8장 트로이->이타카 - 승리한 자의 고난

 

트로이의 오디세우스: 가장 그리스적인 그리스인

칼립소: 사랑은 방랑자의 족쇄가 되어

나우시카: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흰 팔의 공주여”

폴리페모스: ‘아무도 아닌’ 자에게 하나밖에 없는 눈알을 빼앗기다

키르케: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여신 같은 마녀

그리스의 영웅들: 저승에서 다시 만나다

헬리오스의 오디세우스: 부하를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다

페넬로페이아: 마침내 그녀에게 돌아갔지만

  Tip 포세이돈

  Tip 헤르메스

  Tip 하데스

 

9장 트로이-> 로마 - 위대한 로마의 탄생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 위대한 제국의 시조

헤카베와 폴릭세네: 불굴의 트로이 여인들

트로이의 유민들: 패배한 자들은 새 땅을 찾아 나서고

여왕 디도: “배신자여, 그대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떠나는가?”

시빌라: 황금 가지를 들고 하데스의 나라로

라비니움의 아이네이아스: 로마의 기초를 세우다

레아 실비아: 그녀의 꿈에서 제국은 시작되었다.

  Tip 아프로디테

  Tip 아레스

  Tip 그리스와 로마 주요 신들의 대조표

 

에필로그-키가 자라 머리가 별에 닿았네

 이 책은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전체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신화 속의 인간’이란 제목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명의 시작과 전성기 문명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고 있고 2부는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이라는 제목으로 트로이 전쟁 전장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3부는 ‘혹독한 귀환’이란 제목으로 트로이 전쟁이 종결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귀환과 새로운 터전을 찾아가는 여정 속의 인물을 담고 있다.

 1부에서는 미케네, 크레타, 아테네, 테베의 각 1, 2, 3, 4장으로 나뉘어 각 문명 속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아테네에서 트로이로 출항하는 여정과 격돌의 현장인 트로이의 각 5, 6장으로 나누었다. 3부는 7장 ‘아테네-운명의 굴레에서’, 8장 트로이→이타카-승리한 자의 고난‘, 9장 ’트로이→로마-위대한 로마의 탄생‘의 각 3장으로 구성되고 있다.

 각 장에서는 특정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떤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거기에 얽힌 사람들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겪는 사건들과 그들의 인간관계, 그들의 고뇌와 방황 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부에서는 미케네의 페르세우스, 크레타의 미노스 왕, 아테네의 테세우스, 테베의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2부에서는 전쟁에서의 대결을 중심으로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파리스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3부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향하면서 겪게 되는 고된 여정 속의 인물들과 전쟁에서 패한 후 떠돌다 로마를 건국하게 되는 아이네이아스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중간 그 인물이 겪은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들의 명화를 삽입하거나 인물들의 조각상을 삽입하여 보다 생생한 느낌을 북돋우고 있다. 또한, 각 인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편의 시로서 읊고 있다. 이야기로서 인물의 삶을 들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긴 여운을 남기게 하며 각 인물의 삶을 읊조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물의 삶에 대해 보다 공감의 요소를 더하도록 작용하는 듯하다.

 저자는 그리스인의 모험과 변신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결코 신과의 관계를 떠나지 못한다. 그리스인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신화의 신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웅들의 모험담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표적인 신과 괴물들을 Tip으로 분류하여 각 장마다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과 괴물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인물들과 연계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나 내용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우선 앞서도 이야기하였듯이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시를 부여한 것은 이 책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각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이들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화를 다루는 저작물 속에서(물론 각자 나름의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사실 반복되는 패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시로 재창조해냄으로써 인물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부여한다. 이러한 작업은 인물들의 삶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저자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다. 또한, 각 인물들에서 섣부른 교훈이나 억지적인 감상을 설득조로 강요하지 않고 그가 이해한 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 마다마다에게 전해질 감상은 배가되고 확장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외 전체적인 책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1부의 4장이야기다. 4장의 제목은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이다. 나는 여기서 특히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사실, 비극이 가지는 그 무게감에도 끌림이 있으니 가장 무거운 운명을 지닌 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비극’이 정녕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비극에 대한 저자의 말을 빌어보자.

  비극이란 주인공의 극적인 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 지닌 힘을 확장하여 한계의 벽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과 모험을 담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레이서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탄환처럼 달린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파멸한다. 그 벽 너머에는 인간 세상이 아닌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신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와 믿음으로 스스로를 넘어섬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저 멀리 밀어낸 사람들의 추락과 파멸을 다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평은 바로 이런 영웅들의 부딪힘에 의해 알려진다. 어느 영웅이 넓혀놓은 경계는 다른 영웅이 나타남으로써 다시 조금 더 확장된다. 모든 영웅의 공통점은 그때까지 알려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척후병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변방을 넓혀왔다. 끝까지 간 사람들, 그들이 영웅들이다. 그들은 원래 평범했으나 삶을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쓰일 수밖에 없다(p185~186).


 이 책의 각 인물이야기는 저자가 이야기해주듯 말하고 있다. 간혹 나오는 대사라도 이것은 인물의 독백으로 그저 뱉어내어질 뿐이다. 4장에서만큼 인물들의 대화가 자세히 묘사된 장은 없다. 심지어 인간의 극한 대립이 치닫는 전장을 묘사하는 2부에서조차도 전쟁하는 그들의 맞선 상황에서도 대화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이 치닫는 이 장에서는 인물들 간의 극명한 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대화가 없이 그저 이들의 이야기가 묘사되었다면 이 내용의 느낌은 얼마나 반감될까.


안티고네: 비극과 함께한 불멸의 여인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법을 내리신 이는 신이 아니며, 확고한 하늘의 법을 왕의 법이 넘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내가 신들 앞에서도 인간의 법을 어긴 죄인일 수는 없어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도 치러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나는 죽을 몸, 두렵지 않아요.”

     안티고네는 외삼촌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변호했다. ‘글자로 쓰이지 않았으나 영원한 법, 양심을 지배하는 법, 편협한 왕이 제멋대로 정한 법보다 더 높고 고귀한 신의 법’에 복종했노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논쟁은 이어진다.

     “하나는 나라를 망치려는 놈이었고 하나는 나라를 위해 싸웠다. 악인과 선인이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느냐?”

     “저승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원수는 죽어서도 친구일 수 없다.”

     “나는 증오를 나누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그러면 저승으로 가서 그놈들을 사랑하려무나.” (p183~184)

크레온: 백성 위에 군림하는 법의 집행인

     하이몬 : 바르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크레온 : 내가 이 나라를 내 판단이 아닌 남의 판단으로 다스리라는 말이냐?

     하이몬 : 한 사람의 소유물이라면 그건 나라가 아닙니다.

     크레온 : 국가가 통치자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하이몬 :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막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크레온 : 괘씸한 놈, 이렇게 터놓고 아비를 적대하다니.

     하이몬 :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정의를 어기고 게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크레온 : 나의 왕권을 존중하는 것도 잘못이냐?

     하이몬 : 신의 명예를 짓밟으시면 왕권을 존중하는 것이 못됩니다.

     크레온 : 다 그 계집을 위해서 하는 말이구나. 살아서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다.

     하이몬 : 그러시면 그 여자는 죽는 것이지요. 죽음으로써 또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크레온 : 너,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

     하이몬 : 잘못 생각하신 것을 말씀드리는 것도 위협입니까? (p190~191)


 비극적 인물의 묘사, 인물들간의 대화 이것 외에 이 장이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또 다른 데 있다. 바로 여성 ‘안티고네’이다. 부제의 신화가 된 ‘영웅’이란 말을 곱씹으며 책을 읽어가다 문득, 아니 여성은 어디있어? 왜 없어? 여성은 영웅거리의 이야기가 없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 그리스시대에도 여성은 존재하지만 이야기들 속에 여성에 대한 인상이 너무 없었던 차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특히나, 옛날 옛적이라면 더더욱 강조하는 ‘여성이미지’를 벗고서 나타난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나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없는 신념과 곧은 정신의 소유자. 어찌 보면 신화속에 나오는 이들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풍랑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와 같은 사고를 갖기까지,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하기까지 얼마나 무수한 고뇌의 풍랑을 겪었을 것인가. 그리스인이야기 속의 영웅들, 특히 남성들은 외부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모험하고 방랑하고 영웅으로 성장하고 그들의 행동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반면 안티고네는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사고 속에서 영웅으로 성장한다.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발견한다.


■ 보완점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따라서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는 ‘신’이라 불리는 그들의 막강한 힘과 능력에 감탄하며 절대적인 그들의 위치에 경탄한다. 그러면서 절대적인 위치의 그들이 내보이는 저차원적인 분노와 질투에 흥분하고 그들의 놀음에 운명지어진 그리스인들의 슬프고 고된 운명을 보며 비탄해한다. 그렇게 신들은 우리에게 조롱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탄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들은 신이기에 알 수 없는 경외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리스인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신이 아니다. 바로 인간을 다루고 있다. 신들이 그려놓은 모습으로의 ‘인간’이 아니라 자아를 가지고 성장하고 역사가 되고 있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삶을 이뤄가는 그들의 삶에 신이 조연처럼 따른다. 그러므로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그들의 분노와 질투, 사랑이야기는 신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점이, 이 그리스인들을 동일한 시각으로, 좀 더 내 이웃의 이야기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왜 이들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놓고 다루는 인물들 중 왜 이들을 다루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익숙하게 ‘영웅’으로 알려진 이들이 각 장의 중심점으로 나오면서 독립적인 이야기를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또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맥락에서,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1부와 3부에 비해 2부에서 다루는 인물이 적게 나타난다. 2부에 중첩되는 인물들이 3부로 빠져 귀환의 여정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트로클로스, 아이아스, 메넬라오스 등 트로이 전쟁의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들의 삶은 영웅의 조력자로서 혹은 영웅을 괴롭히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영웅을 사랑하고 기다리다 배신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들에게 복수하는 삶이 주가 되고 있다. 각 장마다의 영웅 이야기 속에 스테레오타입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 안티고네와 같은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 찾아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각 장마다 신들의 이야기를 Tip으로 하여 인간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신들의 이야기가 각 장에서 신이 등장하면 그에 맞추어 배열이 되면 좋을듯하다. 12신의 이야기를 먼저 배치하고 이후 신화 속 기괴한 괴물들, 동물들, 3대 마녀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 신화 속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각 장마다 나누어 나타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한 각 장의 이야기 속에 다수의 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주요하게 다뤄지는 신이 있는 경우에 Tip에서 그 신의 이야기를 배열하였으면 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나타나므로 두 신을 다루고 헬레네 이야기 다음에 헤라와 아르테미스 신을 Tip으로 다루는 것이다.






1) ‘태몽 혹은 인디언식 이름’, 마음을 나누는 편지 중,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 2008.2.15.


2)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어떻게 발견할까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구본형, 채널예스인터뷰. 2012.9.25.

IP *.177.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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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21:19:11 *.57.123.22

저 지금 에움길 님 글보고 패닉 직전입니다요

제가 감히 이런분들 사이에 끼겠다고스리...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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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07:11:53 *.177.81.59

앗,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래저래 시간에 쫓겨 아둥바둥이었는데

담주도 역시 시간이랑 싸워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함께 하는 이가 있어

좀더 화이팅을 외쳐볼랍니다. 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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