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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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꽃 피어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중략)
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 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품종을 바꾸시오 보리밭 갈아놓고 못논을 만들어두소
들 농사 하는 틈에 채소 농사 아니할까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고 담 근처에 동과 심어 막대 세워 올려보세
무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 바자 둘러막아 닭 개를 막아주면 자연히 잘 자라리
오이 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시골집 여름 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뽕 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었구나 어와 부녀들아 누에 치기에 온 힘 쏟으시오
잠실을 깨끗이 하고 모든 도구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 하소 (후략)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삼월령(三月令)>의 한 자락입니다. 《농가월령가》는 문자 그대로 농가에서 달마다 해야 할 일을 가사 형태로 엮어놓은 책입니다. 당연 음력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서에서 제목만 얼핏 본 기억을 가졌던 이 책을 우연히 접하였는데, 각각의 월령(月令)을 읽으며 깊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달 찾아오는 중요한 자연의 변화를 24절기와 함께 언급하면서 농가에서 할 일과 주의할 일, 그 달의 자연을 소재로 삼아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지혜 등을 담고 있더군요. 길지 않은 전체 내용을 훑어 보면서 농부들에게 이보다 요긴한 책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장차 달마다 이 책을 참고하여 농사를 지으려 합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광해군 때 고상안(高尙顔)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근래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합니다. 누가 지은 책인지 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책을 쓴 저자의 정신입니다. 이 책은 분명 책상머리에 앉아서만 쓴 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입신양명에 몰두하거나 현학의 즐거움을 채우는 것보다 민중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책을 구상하고 쓰기 위해 직접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민중의 삶을 깊이 살폈을 것이며 자연의 흐름을 오랫동안 주시하고 통찰했을 것입니다. 농가의 소박한 행복도 살폈을 것이고 그들 삶에 담긴 애환도 읽어냈을 것입니다. 깊이 깨달은 뒤 저자는 달마다 실천하고 살펴야 할 일을 노래(歌)로 담아냈습니다. 노동을 노래로 승화한 것이지요.
내 삶을 떠받치는 기둥 하나도 역시 농부입니다. 글을 쓰며 사는 삶 역시 내 삶을 떠받칠 또 하나의 기둥입니다. 농사짓고 글 쓰며 사는 것이 정말 아름답기 위해서는 이런 책을 쓸 수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책에서 책을 쓰며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신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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