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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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영웅은 반드시 ‘통과제의(通過祭儀)’를 거칩니다. 신화적 영웅은 보통 세상에서 특별한 세상으로 떠나는 모험을 통해 과거의 나를 죽이고 진정한 자기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영웅의 여정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비교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地上的)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신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도약하는 인물은 이와 비슷한 통과의례를 거칩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경우, 젊은 날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이 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3세의 체는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떠나 9개월간 라틴 아메리카 이곳저곳을 여행했습니다. 이 여행은 두 젊은 몽상가의 즉흥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체는 평범했습니다.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의학도이자 스포츠를 좋아하고 천식에 시달리는 젊은이였습니다.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비범함의 씨앗은 아직 표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단한 영웅담이 아니며, 냉소주의자의 넋두리는 더욱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다. 그저 비슷한 꿈과 희망을 갖고 한 동안 같이 지낸 두 사람의 인생을 살짝 들여다보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여행은 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여행은 체가 의학도에서 혁명가로 변신하는 전환점, 즉 ‘통과제의’였습니다. 여행의 공간적 무대는 라틴아메리카이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을 향해 여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은 체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소감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
중요한 모든 통과제의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도약은 과거의 존재를 죽임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죽음과 거듭남을 통해 영웅은 내면에 숨겨져 있던 힘을 발견합니다. 체 게바라 역시 여행을 통해 ‘과거의 이름을 지닌 채 죽었다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부활’했습니다. 이 부활의 의미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마지막 문장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고, 전투준비를 하여, 내 몸속이 승리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야수와 같은 환호가 새로운 힘과 희망으로 울려 퍼질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되도록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다.”

* 오늘 소개한 책 : 체 게바라 저, 홍민표 역,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황매, 2004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IP *.237.95.125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地上的)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신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도약하는 인물은 이와 비슷한 통과의례를 거칩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경우, 젊은 날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이 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3세의 체는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떠나 9개월간 라틴 아메리카 이곳저곳을 여행했습니다. 이 여행은 두 젊은 몽상가의 즉흥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체는 평범했습니다.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의학도이자 스포츠를 좋아하고 천식에 시달리는 젊은이였습니다.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비범함의 씨앗은 아직 표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단한 영웅담이 아니며, 냉소주의자의 넋두리는 더욱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다. 그저 비슷한 꿈과 희망을 갖고 한 동안 같이 지낸 두 사람의 인생을 살짝 들여다보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여행은 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여행은 체가 의학도에서 혁명가로 변신하는 전환점, 즉 ‘통과제의’였습니다. 여행의 공간적 무대는 라틴아메리카이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을 향해 여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은 체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소감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
중요한 모든 통과제의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도약은 과거의 존재를 죽임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죽음과 거듭남을 통해 영웅은 내면에 숨겨져 있던 힘을 발견합니다. 체 게바라 역시 여행을 통해 ‘과거의 이름을 지닌 채 죽었다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부활’했습니다. 이 부활의 의미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마지막 문장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고, 전투준비를 하여, 내 몸속이 승리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야수와 같은 환호가 새로운 힘과 희망으로 울려 퍼질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되도록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다.”

* 오늘 소개한 책 : 체 게바라 저, 홍민표 역,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황매, 2004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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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처음에는 5년을 잡았는데, 채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제 경우는 10년 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주기에는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작년부터 내년까지 제 인생은 겨울입니다.
삶 전체를 놓고 살펴보니, 10년 주기와 10주기 내의 패턴이 보이는데,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내년까지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주어진 여건에 순종하고, 기회가 오면 신중하게 처신하고자 합니다.
이번 겨울을 잘 준비하면, 아마도 내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한 선생님, 건강하게 잘 계시죠?
종종 연구원들을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제 가슴에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환하게 뵈요.
사람에게는 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제 경우는 10년 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주기에는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작년부터 내년까지 제 인생은 겨울입니다.
삶 전체를 놓고 살펴보니, 10년 주기와 10주기 내의 패턴이 보이는데,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내년까지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주어진 여건에 순종하고, 기회가 오면 신중하게 처신하고자 합니다.
이번 겨울을 잘 준비하면, 아마도 내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한 선생님, 건강하게 잘 계시죠?
종종 연구원들을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제 가슴에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환하게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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