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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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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01시 14분 등록

올해 3월의 어느 월요일, 사부님과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2시간가량 산을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복잡한 마음에 사부님께 만남을 청했지만 나는 엉킨 실뭉치 같은 마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은 저를 3~4명이 쉴만한 너른 바위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에 앉자 서울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부님은 작은 와인 두 병과 과자 두 봉지를 꺼내셨고, 나는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나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게 빠지는 늪에 있는 듯 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들, 그렇게 확실한 꿈, 10년 동안 갈고 닦아 만든 강점에서 어느새 멀어져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참 아프고 슬펐습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사부님은 담담히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답하는 대신 주변 풍광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뒤로 보이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짚어주시고, 앞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산을 하나하나 이름과 함께 설명해주셨습니다. 북악산,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주변과 아래 있는 것들이 더 잘 보인다. 한눈에 보이지. 아래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더 어두워지고 헤매게 된다. 그런 시기도 필요해. 그 시기를 피하면 언젠가 다시 더 짙은 막막함으로 되돌아오니까. 더 험악하게 오지. 하지만 너무 오래 머무르는 건 좋지 않아.”

사부님이 제게 해답을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산과 사부님, 그리고 주변의 풍광이 함께 공명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복잡하고 어둡던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문득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산천과 사람, 스승과 제자의 원융(圓融). 이것이 바로 삶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시기를 피하지 말자. 수용하자. 의미가 있을 것이고, 배울 게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이 빛을 드러내는 것처럼 지금은 마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새벽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이런 깨우침은 사부님과 북한산이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북한산을 ‘문무(文武)와 강유(剛柔)를 겸비한 산’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머리의 조화’라고 말했습니다.

“따뜻한 가슴(warm heart)과 냉철한 이성(cool head)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과 ‘이성’(理性)의 인간학이고 사회학입니다.”

곧 북한산에 다시 오를 생각입니다. 사부님과 함께 했던 그 바위에 다시 앉고 싶습니다. 그 풍광을 보며, 그 장면 속에서 술 한 잔하며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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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소개한 책 : 신영복 저,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 1996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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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6.15 06:49:35 *.160.33.180

대답을 얻지 못하고 얼른 묻어둔 질문은 다시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와 뒷머리를 가격하게 된다.   한 번의 대답으로 어림없다.   일흔 일곱 번을 바꾸고, 또 다시 한 번을 더하면,  너에게 잘 맞는 삶을 얻을 것이다.      니체의 글을 내 칼럼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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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0.06.15 15:55:09 *.122.208.191
사부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융의 말처럼 자기실현의 길은 평생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 길에는 어둠이 있고, 밝은 시절도 있으며, 이 둘이 혼융된 새벽의 시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효율성과 편안함을 반겼고 지금도 불편함과 가난과 겨울을 즐길 자신은 없지만,
그것들을 받아 들이고 하나하나 체험하고 성찰하겠다는 자세만은 몸에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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