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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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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4일 07시 39분 등록

삶이 웅덩이에 빠져 갇혔을 때

 

나의 오두막으로 오르는 길에는 제법 깊은 웅덩이가 하나 있습니다. 오두막 남쪽 숲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이 달천을 만나 한강에 이르려면 꼭 이 웅덩이를 거쳐야 합니다. 더러 차와 농기계들이 지나다니면서 만드는 땅의 변형과, 두 갈래 물이 합쳐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모래톱으로 인해 이 웅덩이에는 더 높은 둑이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숲에서 발원한 물은 왕왕 이 웅덩이에 머물러 흐름을 멈추고 있는 날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니, 각처에서 발원한 물들은 모두 저만의 경사를 타고 흘러 바다에 이르기 까지 이 숲의 물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웅덩이를 만날 것입니다. 웅덩이를 만난 물은 흐르려는 의지보다 강한 웅덩이의 깊이에 의해 길을 멈추고 갇히게 됩니다. 물은 늘 흐르려 합니다. 그것이 물의 길이요 본질일 테지만 물도 어떤 장애를 만나 갇혀 지내야 하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 삶 역시 이렇게 갇히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 나갈 수 없는,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것과 같은 시간이 우리 삶의 일부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아직 그런 때를 만난 적이 없는 이라면 그이는 다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한 두 번 모든 희망을 거두어 폐기해야 할 만큼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절망의 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 속에는 뜻하지 않은 어떤 강렬한 힘에 의해 그 삶이 포박당하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그대 삶도 그렇게 웅덩이에 빠져 갇힌 적이 있는지요? 그대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질곡에 빠져 보신 적이 있는지요? 혹시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는지요?  분노를 품고 독을 키워 그 시간을 견디셨는지요? 혹은 절망하여 한숨과 눈물로 나날을 보내셨는지요? 아니면 그 상황을 누군가에게 전가해보거나 원망하거나 부정하면서 지내셨는지요? 짧은 시간 살았으면서도 나는 두어 차례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 역시 분노하고 절망하고 통곡했습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했고, 부정도 했으며 빠져나가려 발버둥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몸은 지쳤고 마음은 시퍼렇게 멍들어 지독한 외로움에 갇혔습니다.

 

두어 차례 경험하고 자연과 삶을 성찰하면서 나는 삶이 웅덩이에 빠져 갇혔을 때를 벗어나는 방법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경험이요 터득이니 보편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편지에 담습니다.

웅덩이에 갇힌 시간도 내 삶의 귀중한 일부임을 인정할 것. 그 처한 곳에서도 삶을 누릴 것. 포박된 삶의 고통과 갑갑함을 기꺼이 껴안고 삶을 지속할 것. 즉 내가 처한 그 웅덩이 안에서도 내 삶이 진행되게 할 것. 당장 진전이 없을지라도 돌이켜 그 시간이 내게 어떤 귀한 경험이 되었던 때였음을 회상할 수 있게 처신할 것. 하루하루가 아픈 나날일지라도 때를 기다려 오늘을 열고 닫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힘차게 여행을 떠날 것. 마치 웅덩이에 고였다가 새로운 물이 밀고 들어올 때 힘차게 바다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물처럼. 그 자리에서 썩어 주변과 함께 악취를 만들지 말 것.

 

차나 농기계가 지나면서 만든 언덕은 다시 다른 것에 의해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빗물이 만든 모래톱 역시 다시 더 큰 빗물에 의해 허물어지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얼어붙은 물일지라도 녹아 내리는 날이 반드시 도래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것을 알면 갇힌 삶의 시간 역시 다 지나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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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10.06.24 09:52:45 *.50.21.23
차면 넘친다..차야 넘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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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10.06.25 23:24:23 *.46.87.78
"剝之 无咎"
주역에서 웅덩이에 빠졌을 때 헤어나는 법을 가르친 구문입니다.
"너에게 어려움울 준 사람이나 사물을 오히려 도탑게하라"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겨 사면초과의 일을 당하면 화를 내거나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처세로는 더욱 더 어려움을 당하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지혜를 준 가르침입니다.

白烏!
그 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자네의 글을 보니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으이... ㅎㅎ
뒷날 성공하여 편해지면 날 잃어버리지 마시게,,,
함박눈이 오는날 자네 살고 있는 산에 동안거를 청하가든 귀퉁이 작은 방에 산중 막걸리 내어 놓고 허허탄탄해보지 않겠나. 삶이란 성공하면 고생하던 시절이 제일 좋타고들 한다네.
아마 여주 교산도 같이 마시며 흠벅 취하지 않을련지
우리가 만난지도 자네가 산으로 간지도 여러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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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2010.06.26 07:10:11 *.24.95.252
성찰의 글, 우리홈으로 살짝 옮겨 갑니다. 괜찮을까요? 
용규님 잘 지내시죠? 지난 11월, 앞산 봉우리에 운무 자욱했던  백오산장이 생각납니다. 
비 맞은 숲의 채도가 환상적이었던...... 청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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