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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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새벽, 뜨거운 비가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6월은 월드컵의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첫 원정 16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며 치른 4경기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했지만, 8강 진출을 놓고 벌인 우루과이와의 경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선수들은 탈진한 듯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들도, 새벽을 밝히며 응원한 우리도, 그리고 하늘도, 함께 울었습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그 누구도 우리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경기 내용은 훌륭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뿌리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성숙한 문화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요, 이것이 조금 묘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허정무호는 2008년 1월 칠레전을 시작으로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년 반의 시간 동안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수비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대표팀에 '허무' 축구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지난 토요일 경기를 보며 응원과 감탄을 쏟아낸 이들과 초기에 대표팀을 비난했던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은 '애정'과 '관심'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때로 그들은 부모와 형제의 얼굴로 다가오기도 하고, 친구나 동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꿈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비난은 결국 현재 상황에 대한 타인의 의견일 뿐이니까요. 또한 현명함을 가장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객관적이라는 잣대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조차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참고는 하되 결국 판단은 여러분이 내려야 합니다. 타인이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방치하지는 마세요. 만약 대표팀이 비난에 휘둘리기만 했다면 이번 같은 멋진 패배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축구 경기를 응원하다 보면 심심찮게 듣게 되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밥 먹고 축구만 하는 놈들이 왜 저래?'라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요. 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누군가가 갑자기 저를 향해 '밥 먹고 회사에 나가 일만 한 너는 어떠냐?'고 물어올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밥 먹고 축구만 하는 놈' 운운한 그들도 이 질문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함성과 환호는 잠시 가라앉았지만 축구와 인생은 계속되어야겠지요. 밥 먹고 축구만 하며 세계 수준에 다가서고 있는 우리 선수들에게 손바닥이 터질 만큼 큰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의 성급한 비난을 잘 이겨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땀과 눈물, 잊지 않겠습니다.
밥 먹고 매일 하고 있는 일에 좀더 마음을 기울여야겠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한 주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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