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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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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9일 14시 51분 등록

 

법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유형선

 

 

헌법재판소장 선출을 놓고 방송은 연일 뉴스를 쏟아낸다. 나처럼 법이나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동흡 이라는 호칭과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이 분이 언론에 나왔나 보다. 시끄러운 것을 해결하라고 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명색이 법관인 분을 놓고도 이리 나라가 시끄러우니 안타깝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동흡을 넣자마자 온갖 시끄러운 글들이 한가득 올라온다. 덩달아 내 머리도 시끄러워진다.

 

도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법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내친 김에 서재를 총동원하여 때 아닌 법 공부를 시작해 본다. 하면 떠오르는 상징은 역시 법의 여신이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여신. 눈앞에 보이는 욕심에 현혹되지 말고 저울로 재듯 공명정당하게 법의 힘을 휘두르라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법의 여신 이름을  찾아보니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티아Justitia,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스트라이아 Astraea라고 불리었으며, 정의 Justice 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 한다. 요컨대 법과 정의는 샴쌍둥이 처럼 영원히 붙어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아스트라이아 여신의 이야기는 처녀자리 별자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우스 신과 거인 타이탄족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스트라이아는 정의의 여신이었다. '금의 시대'에는 신과 사람들이 어울려 지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지상에 계절이 생기고 농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자 신들은 지상을 버리고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아스트라이아만은 인간을 믿고 지상에 살면서 열심히 정의의 길을 설명하였다. 이 시대를 '은의 시대'라 한다. 이윽고 '동의 시대'가 되자 인간은 거짓과 폭력을 일삼게 되어 친구와 부모 형제들까지도 피를 흘리며 서로 죽이게 되자, 아스트라이아도 끝내 참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처녀자리는 이 아스트라이아의 모습이라고 한다. 사실 아스트라이아는 '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통 서양에서는 정의의 여신이 칼과 천칭을 들고 있으나, 옛 별자리 그림의 처녀 자리는 보리 이삭을 든 여신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노동의 결과물 보리이삭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는 대지야 말로 진정한 처녀의 모습이며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 경배해야 할 여신인 셈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울이라는 법의 상징을 정의라는 덕목으로 기억하기 보다 눈먼 권력 정도로 여기고 있다. 전국민의 77%가 법원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시민단체 여론조사도 있었다. 사법 테러를 미화한 허구라는 대법원의 유감표명에도 불구하고 영화 부러진 화살은 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원동력이 되어 3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최근에는 성접대를 요구한 검사도 있다고 하고 뇌물로 벤츠를 선물 받은 판사가 있다고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의 여신'은 하늘의 별은 커녕 땅에 떨어져 지하실로 숨어버려도 시원찮을 형국이다. 

 

법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은 단 한가지 방법뿐이다. 법의 정신 근본으로 돌아가 샴쌍둥이 정의 Justice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해 힘써야 한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저서 <법의 힘>에서 법의 근원적 의미인 정의와 힘의 관계를 함께 회복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힘 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 없는 정의는 반격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의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1]

 

    정의의 힘과 법의 재결합을 위해 ‘법의 여신 두 손에 칼과 저울 대신 보리 이삭을 쥐어주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인간의 노동과 대지의 생산력이 어울려 추수와 축제의 환희를 그려내는 보리 이삭’을 쥔 여신상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 앞에 세워진다면 어떨까? 권력을 위해 힘쓰는 법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자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법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이며 진정한 힘이라고 알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여 밤하늘 처녀자리 별자리 같이 맑고 투명한 법의 정신을 다시 세운다는 선언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한가지 더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사전에서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에게는 아이도스라는 자매가 있다고 한다. 아이도스라는 말의 의미가 우리말로 염치라고 한다. ‘염치청렴하고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헌법재판소장처럼 높으신 자리에서 법을 판단하시는 분이 꼭 기억했으면 싶은 아름답고 고운 말이다.

 

2013 2 9, 坡州  雲井에서

 



[1] <법의 힘> 자크데리다 지음, 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p 27

 

IP *.14.1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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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9 20:04:43 *.6.134.119

대단하십니다. 빠르시군요. 설연휴라 미리미리 하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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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0 08:35:23 *.62.163.129
네~ 좋은 명절 보내세요.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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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0 11:50:11 *.58.97.136

빠름~빠름~ LTE 작가 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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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0:54:20 *.65.133.142
제 속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슬픕니다. T T 그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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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20:09:45 *.236.20.55

'책 읽고 쓰는 거야 늘 하던 거니 내게 별거 아니지...'

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시작했건만

2주만에 숨넘어갈 지경입니다.

다른 분들 글 까지 다 읽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유형선님

대단하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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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0:51:36 *.65.133.142
저도 이번 주 입술 터졌습니다. ㅋㅋ 이러다 코피도 터지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차몰고 대전찍고 밀양 돌아 파주 돌아오는 시간 확보하려니 정말 숨차더군요. 그래도 스마트폰 덕분에 짬짜미 다른 분들 글을 보니 ~~ 모두들 정말 쟁쟁하시네요. 엘모님도 파이팅입니다. 그나저나 저희 5살 딸이 좋아하는 그 엘모가 님의 엘모 맞나요?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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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2:25:44 *.58.97.136

정말 피곤하셨겠어요...

지방 2곳을 다녀오셨다니... 저는 댁에 계신 줄 알았어요... ㅋㅋㅋ

정말 전국적으루다가 터지는 LTE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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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1:58:56 *.91.142.58

형선님께서 1빠로 글 올리셔서 연휴내내 완죤 부담 100배+자극 100배였어요 ㅎㅎㅎ

 

형선님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글에도 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도 강한 것 같아요~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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