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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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알아가면서, 아는 것을 넘어 느끼면서, 느끼는 것 너머에 있을 숲과 하나되는 삶을 꿈꾸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 마침내 도처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제 소용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어 모두를 존중하게 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요즘 특별히 붉은 색 열매를 줄줄이 달고 있는 산딸기의 가시덤불은 그 소용을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의 열매는 이 즈음 새들에게 더 없이 좋은 먹이가 됩니다. 또한 가시로 무장한 채 숲의 경계지대를 차지하는 바, 큰 동물들의 접근을 막아줌으로써 작은 새와 다른 동물들에게 안전한 서식처 노릇을 합니다. 물가에 자라는 무수한 종류의 풀들은 유속을 줄여주고, 탁해진 물을 정화합니다. 숲 가장자리나 논과 밭 둑의 풀들은 흙의 유실을 막아 땅의 유실을 줄여줍니다. 이렇듯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들은 제 소용을 발하며 살아감으로써 숲과 지구공동체에 기여합니다.
하지만 유독 칡덩굴에 대해서만은 그 소용과 관련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칡은 좀 특별한 꼴로 살아갑니다. 그는 덩굴 모양으로 아주 빠르게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요새 산방으로 오르는 길 좌우 측은 칡덩굴로 가득합니다. 이 숲의 경사면은 지금 온통 칡들의 생장 욕망으로 채워진 셈입니다. 칡은 넓은 잎과 유연하면서도 질긴 줄기를 이용해 옆으로 기며 자람으로써 누구보다 넓은 대지 면적을 차지하는 방법을 터득한 식물입니다. 그렇게 자라는 것이 가능한 데도 칡은 꼭 다른 나무를 만나면 그들을 감고 올라가는 버릇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피우는 보랏빛 꽃이 수많은 벌과 나비를 부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감고 올라 결국 시들게 하고 죽게 만드는 나무의 숫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칡이 지닌 이 무도함이 궁금했습니다. 칡은 왜 꼭 자기 주변의 나무를 감아 죽게 만들면서 자기 삶을 이을까?
지난 해 어느 장날 묘목상으로부터 얻어다 집 뒤 경사지에 심은 자두나무 한 그루는 비실비실했습니다. 애초에 묘목상이 내게 부실한 나무를 공짜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 봄 그 나무는 무척 열심히 잎을 내고 가지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년쯤에는 저 나무에게 자두 몇 개 얻어먹겠구나’ 생각할 만큼. 하지만 그 기대가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습니다. 칡덩굴이 그 자두나무를 감고 오르면서 그 나무에게로 쏟아지던 빛을 차단하고, 그의 줄기를 옥죄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낮 무심히 뒤 뜰 경사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칡덩굴에 휘감긴 나무로부터 칡의 소용 하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태적 소용이 꿀 많은 꽃에도 있고, 콩과 식물 특유의 공헌인 땅 속 질소고종자의 역할과 경사지의 흙 사태를 막아주는 역할에도 있지만, 다른 나무들을 더 튼튼히 성장하도록 시험하는 시련 창출자의 역할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칡에게 휘감긴 나무들은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칡은 주로 탁 트인 공간에서 자랍니다. 칡덩굴에 휩싸이는 나무들도 대부분 탁 트여 빛이 좋은 자리에서 자라는 행운을 얻어 자랍니다. 하지만 신은 그런 공간의 나무들에게 오로지 그 유복함만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빛과 축적되어가는 양분을 활용할 수 있는 행운과 함께 더러 칡이 옥죄어 오는 고통도 감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모든 시련을 견딘 나무들에게만 새로운 개척지 숲의 주인이 될 것을 허락합니다. 칡이 주는 시련을 견디고 너른 그늘을 만들 만큼 성장해야 비로소 그 나무들은 더 이상 자기 근처에서 칡이 자라지 못하도록 할 수 있으니까요.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려는 이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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