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모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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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정신에 대하여130207
법의 정신이란 ‘입법의 원리’를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그래도 ‘법의 정신’에 대해 내게 분명히 떠오르는 개념은 없다.
운좋게도 나는 법을 따져볼 일과 맞닥뜨리지 않고 살아온 때문인가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법이 없으면 절대로 못산다.”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말장난을 하고 있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음미해보니 기막힌 명언이다. 법이 없으면 인간사회도 정글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법 없이도 살 만큼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은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의 등살에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소설(영화)<파이이야기>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파이 이야기>는 난파된 배에서 탈출해서 구명보트에 남게 된 하이에나와 오랑우탕과 호랑이와 소년의 이야기이다.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잡아먹는다. 아주 잔인하게. 산채로 뱃가죽을 쭉 찢어서 내장을 빼먹는 모습이란... 덩치는 크나 초식동물 특유의 온순함 때문에, 하이에나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얼룩말. 그래도 지능이 좀 되는 오랑우탕이 하이에나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지켜보다가 거칠게 항의한다. 하이에나는 그런 오랑우탕도 한 발에 때려죽인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그 하이에나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이제 구명보트에는 호랑이와 소년만 남았다. 소년이 먹힐 차례다.
소년은 자신이 먹히지 않기 위해 호랑이에게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주고 물을 준다.
피할 수 없는 일에는 적극 대응해서 살아남는 인간의 현명함을 본다.
송사에 휘말려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법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법의 구속과 보호를 받고 살고 있다.
그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인 국회는 그래서 중요하고, 그것은 우리가 국회의원을 잘 뽑고 존중해주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표를 주거나 포기해놓고, 그들을 욕하고 무시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아니, 국회의원들이 뭘 맨날 싸움만 한다는 거야? 맨날 싸우긴 뭘 맨냘이야...
열심히 일하는 건 안보고 말이야... 그리구 싸울 일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지... 안그래?”
국회의원 남편을 둔 한 친구가 그렇게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당당히 항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머지 친구들의 반응이 가관이다.
“그 쪽에서도 할 말이 있구나아...”
정치인에 대해서는 개나 소나 막말해대는 대중이나, ‘대중이란 원래 그런 거야’ 라고 생각하는지, 못들은 척하고 무조건 웃는 얼굴로 악수하고 다니는 정치인들이나 거기서 거기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대통령,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를 생각해본다.
나의 결론은, ‘법을 잘 만들고 잘 실행하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다.
간단히 말해,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 아닌가.
나라는 그들을 잘 보호해주고 도와주면 된다. 진리는 늘 가까이에 있고 단순명료하다.
<법의 정신>에서 참다운 평등과 자유가 법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언급하고 있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평등을 잃게 만들며, 인간은 법에 의해서만 다시 평등해진다.(107쪽)”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만약 어떤 시민이 법이 금하는 바를 행할 수 있다면, 다른 시민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그는 자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139쪽)”
최근에 구급차를 타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 일이 있었다.
내 눈 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요란한 사이렌소리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사실 구급차에게 양보하지 않는 차에 대한 벌금규정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양보하는 운전자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 대부분은 어쩌면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순한 양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친 구속과 나쁜 법이 우리의 순수성과 자발성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법은 분명 필요하다. 단, 처벌을 위한 법보다는 질서를 유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대다수의 양들을 하이에나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가능한 법이 필요하다.
몽테스키외는 ‘형벌의 힘’에 대해 말한다. 악폐를 없애겠다는 위정자가 처벌의 수위만 높인다고 악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가벼운 벌에 익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벌에도 익숙해진다(...) 인간을 과격한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되며, 그들을 지휘하도록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81쪽)
끝.
*인용: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홍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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