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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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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09시 05분 등록

법의 정신에 대하여

 

 

 공포(恐怖)다. 법이란 것은 말이다.

‘법’이란 단어는, 들리는 순간마다 부정적 인상에 지배된다. 그것으로 행복하다거나 다행이다라는 생각 따위야 들어올 여지가 없다. 법은 그것이 있음이나 없음이나 존재가 불쾌함을 유도한다. 법이 있음으로 구속과 억압을 느끼며 위축되는데 분노하고 법이 없음으로 황당함과 억울함에 분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퍼지는데 분노한다. ‘법 없이는 살아도 법대로는 못 산다’는 말에 담긴 그 체념과 탄식을 입법자는 알까. 이 말에 담긴 정의의 인식을 사법부는 알까.

 

 지난 1월 26일 한 방송(SBS 그것이 알고 싶다)은 아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정신보건법 24조’에 의하면 보호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환자의 동의없이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자를 확보하기 위한 병원, 환자를 병원에 ‘공급’하는 사설응급환자이송단, 재산이나 유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보호자 간의 결탁이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고 있었다. 이처럼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산 때문에 정신질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사례가 많은데 문제는 현재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법’에 의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모든 것은 법대로, 이루어졌다. 법은 이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법’이 가지는 한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이고 조목조목 처리하지 않으면 또다시 ‘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법의 문제이다. 완벽해야 한다. 도대체 법을 완벽하게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방송 이후 ‘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정에 대한 의견이 빗발쳤던 듯하다. 한 의원은 전문의에게 지나치게 재량권을 부여한 이 법에 대한 개정안을 제의하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곧이어 같은 방송(2.2자 방송)에서 하나의 시신에 두 개의 이름이 부여된 일을 취재했다. 오래도록 집을 떠나 있던 오빠가 시신으로 돌아왔다. 경찰로부터 시신을 인계받은 가족은 그를 화장했다. 얼마 후 오빠가 살아서 돌아왔다. 가족들은 황당했다. 그들이 화장한 사람은 누구인가! 결론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한 남자가 공원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신원확인을 위해 지문을 채취했다. 담당 경찰은 화장실 오물 속에 있던 남자의 더러운 손 때문에 대충 손가락 한 개만 지문을 채취했다. 지문감식 담당자는 신원불상인 남자의 지문을 전체 연령이 아닌 4~50대로 한정하여 검색했다. 검색되지 않자 단 1분이면 검색되는 클릭질을 종료했다. 남자는 ‘신원불상’으로 처리되었다. 남자는 60대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남자는 응급 수술이 필요했다. 병원은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했고 경찰은 관례적으로 전화상 신원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의 이름이 전달되었다. 그 사람은 남자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쓰러진 노숙자였다. 남자는 노숙자의 이름으로 수술 후 두 달을 더 병원에 있었지만, 구청직원은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노숙자이기에 가족이 찾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후 남자는 사망했고 타인의 이름을 부여받고 노숙자 가족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남자는 가벼웁게 산책하러 나간 길에서 1년여가 지나 시신도 아닌, 유골도 아닌, ‘죽었다’라는 통보만으로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이 사건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지만,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할 일은 다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법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법의 문제가 대두된다.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때 전문가가 말한다. 행정처리 과정에 대한 법적인 조항은 이미 다 있다고. 다만 사람이 문제라고. 이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다만 최소한 행했을 뿐이다. 그렇다. 결국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안고서도 여전히 ‘법’에 기댄다. 약자인 우리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라고 비판하면서도 늘 법이 정의롭게 우리를 어루만지리라고 기대한다. 법을 제정하는 것도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니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 가진 도덕과 정의를 믿고 싶은 것이다. 법은 공포일지 모르나 인간이 공포이지만 않다면 약자인 나는 아직은 법을 믿고자 한다.

IP *.177.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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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19:14:48 *.33.153.57
사람이 문제!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법의 탓을 하고 제도 탓을 하고 운명 탓을하여도 늘 핵심은 사람이 문제 맞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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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21:10:31 *.236.20.55

운전중 삼거리나 사거리에서 어쩌다 정전으로 신호등이 나가서 당황스럽던 기억이 납니다.

신호등의 고마움을, 더 나아가 법질서의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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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4:42:31 *.58.97.136
신화글 읽고 나서 에움길님의 법정신 글도 궁금했는데, 정성스레 쓰신 글, 잘 읽고 갑니다^^
다른 분들을 글을 읽으면서 제 생각를 반성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다음글도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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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20:41:33 *.177.80.208

모두 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이래 저래, 지쳐있다 이제서야, 좀 깨어난답니다.

남들 안 겪는 명절 혼자 겪은 것처럼....

사실, 설 전날 북리뷰 작업하다 컴터를 날려 먹었답니다. 멍하고, 벙찐 채로 꼴딱 밤 지세우며

이게 도대체 뭔 의미지?라며 한탄하다 담날 읍소하여 겨우 시스템복원하고 데이터를 3/1은 날려먹은채 사수했습니다.

명절날 가족들과 친척들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으며 겨우 시간 내 북리뷰며 칼럼을 올려 놓고 보니, 완전 오타 작렬이네요..ㅎㅎ

며칠을 컴터와 밤새우다 보니 정말 눈알이 빠지게 아프네요. 이러다 담것두 늦어질라 걱정하면서도 푸욱~자고 싶네요.

이번엔 작업하면서 정말 10분 단위로 저장하고, 종료할 때마다 usb며 메일이며 담아놀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꼬옥~~~저장 확인!!!하세요. 경험자로서 정말 이런 경험 다신 안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이번 2주차에 강종희님 글이 안 보이네요..강종희님...무슨 일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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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01:02:49 *.20.137.74

도망갔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법의 정신을 읽다가 그만 용기를 잃었습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레이스 맞나 싶어져서... 데드라인을 넘기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려서요. 이대로 포기하면 진짜 멘붕이 닥칠 것 같아 넝마같은 원고나마 취합하여 방금 올린 참입니다. 레이스를 계속 할 자격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불안 초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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