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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11시 03분 등록

법의 정신에 대하여

 

<돼지고기와 리사>

 

한 달전쯤 우즈베키스탄 소녀가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그동안 부모중 한 명이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 어린이는 종종 보아왔지만 이처럼 온 가족이 외국인인 진짜(?) 외국인 아동은 처음 입학했던지라 모두들 조금 당황했다.

일단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이라 어린이집에 등록시키는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애를 먹었다. 현실적으로는 아이는 물론 부모 모두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이라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겨우 손짓 발짓과 영어까지 섞어가며 최소한의 전달사항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절차의 문제도 의사소통의 문제도 아니었다.

바로 이슬람교도인 이 가족들은 절대로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그것도 어린이집 단체급식에서 한 아이만 어떻게 돼지고기를 빼고 먹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메뉴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날에는 리사만 고기를 빼고 다른 반찬을 주기로 했다.

잘 넘어가는가 싶더니 다른 아이들이 먹는 돼지고기가 먹고 싶었던지 결국 리사가 식판을 들고 나와 선생님에게 ‘ 나도 고기 주세요’ 서툰 한국말로 부탁했다는 것이다.

일단 오늘은 안되니까 부모님께 물어보고 다음에 준다는 말로 아이를 이해시켜 넘어갔다.

당장 부모에게 전화해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데 조금만이라도 주면 안되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NEVER,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한국에서 돼지고기 없이 어떻게 단체생활을 할수 있냐는 흥분한 목소리부터, 돼지고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주면 안될까하는 눈가리고 아웅형, 아이가 섭섭하든 말든 눈 딱 감고 주지 말자,아이의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부모의 선택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까지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이슬람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이유에 대한 이해 없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한 오해와 불편은 나에게 매일 음식을 장만하는데 예기치 않은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법은 중동의 건조하고 척박한 기후과 관련이 있다는 걸 옛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초식동물인 소나 양과는 달리 잡식성인 돼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보잘 것 없는 식량을 인간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 지역에서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법으로 돼지고기의 섭취를 금함으로써 민족의 생활양식도 규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몇 천년을 이어온 이 율법이 급속도로 변화한 오늘날까지도 이슬람인들의 식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 뿐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외국에서도 이슬람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리사같은 어린 아이들도 부모의 종교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희생해가며 외국 기관에서의 급식시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화해왔다. 인간의 생활 양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고 법과 생활양식은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상황에 맞추어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슬람의 율법과 같이 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법은 조금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은 유기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전제군주들이 휘두르던 법을 적용한다면 과연 온전할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큰 법이 아니라도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날로그적 법률은 많은 국민들을 불편과 고통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나는 아직 리사의 급식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리사부모의 완강한 태도에 비추어 원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슬람 율법이 바뀌지 않는한 돼지고기 메뉴가 포함된 날은 대체 식품을 마련하거나 아이를 붙들고 설득을 하거나 둘중에 하나를 반복해야 할 것같다. 아마 당분간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급식을 제공하다 결국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퇴소를 권유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일 점심에 난 소고기를 넣은 카레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IP *.100.18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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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20:49:24 *.236.20.55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마트에서도 

이제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쉽게 마주치며

국제화를 실감하곤 하는데

꽃마리님의 글을 보니 정말 실감나네요.

이제 구체적인 지침들이 세워져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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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0:32:55 *.65.133.142
리사가 한국땅에서 상처보다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은 선생님 같은 분이 교육자이시기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먼훗날 리사도 분명 기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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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3:17:21 *.58.97.136

정말 생생한 리얼 스토리네요...

이 상황이 어린이 집단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참 난처하고 힘드셨을 듯...

 

효은님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리사네 가족의 입장도...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역시 좋은 글은 생생한 경험에서 나오네요..^^

이후에 어떻게 될 지도 궁금해 집니다.

신문사 [발언대]같은 코너에 이 문제를 내셔도 좋을 듯...^^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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