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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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덥지요? 올해는 산중에서도 정말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는 분이 보내주신 선풍기를 지난 해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올 여름 한낮에는 선풍기 날개 쉴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무슨 복을 타고난 것인지 이 더운 복날에 나는 손님방 짓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목수들의 도움으로 지붕을 얹고 흙벽돌로 벽을 쌓았습니다. 이제 구들을 놓고 미장과 함께 부엌과 욕실, 창문 작업을 끝내면 새로운 집이 완성될 것입니다.
날이 더우면 확실히 식물보다는 동물이 더 힘듭니다. 햇살이 너무 뜨겁고 기온이 높으면 식물들은 광합성을 중단하고 쉬는 지혜를 키워왔습니다. 요즘 한낮에는 식물들의 잎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개, ‘산’과 ‘바다’는 안쓰러울 정도로 힘든 한낮을 보냅니다. 그늘로 찾아가 눕고 쉬어보지만 땀구멍이 부실한 개의 특성상 헐떡이는 호흡은 위태롭지 않나 싶을 만큼 빠릅니다. 임신 중인 ‘바다’는 늘 더 힘겨워 보입니다. 한 여름에 만삭을 하고 지내는 여인의 고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개라고 특별히 더 나은 것은 없었습니다.
어젯밤 녀석들 밥을 챙겨주러 나왔습니다. ‘바다’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밥 냄새만 나면 쪼르르 달려오는 ‘바다’가 코빼기도 뵈질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랫마을로 마실을 갔나 보다 생각하고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에 다시 나가보아도 ‘산’이 뿐이었습니다. “’산’아! 바다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산’이가 길을 안내합니다. 녀석의 걸음과 몸짓이 짓고 있는 별채로 나를 이끕니다. 현관 문틀 앞에 서서 방을 주시합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바다’가 방 안에 있어? 어딘데? 어서 마저 가봐!” 놀랍게도 ‘산’이 껑충 뛰어오르더니, 벽돌을 쌓기 위해 합판으로 임시 바닥을 만들어 놓은 구들 방의 구석에 멈춰 섭니다. ‘산’이 주시하는 자리의 합판을 조심스레 들어올려보니 거기 바다가 있습니다. 지쳤지만 사슴처럼 맑은 눈으로 나를 주시합니다. 그녀의 젖가슴에 눈을 감은 채 달라붙어 있는 새끼 몇 마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바다’가 두 번 째 출산을 한 것입니다. “고생했구나. 바다야.” 그녀를 위로하고 축하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난감해집니다. 오늘은 벽 미장을 시작하기로 한 날인데, 또 며칠 뒤면 합판을 드러내고 구들을 놓아야 하는데, 어쩌나? 사실 어제부터 새로 짓는 집의 아궁이를 통해 합판 밑을 탐색했던 ‘바다’입니다. 지난 해 가을 첫 출산에 썼던 그녀의 목조 개 집을 마다하고 그녀는 이 곳을 출산지로 작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벌써부터 더운 날씨를 계산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개 집 대신 공사중인 손님방 흙 집의 시원함과, 아궁이와 게자리로 연결되는 합판 아래 이 곳의 안전함을 택해 강아지를 낳은 것입니다.
강아지가 눈을 뜨려면 보름은 걸릴 텐데, 그때까지 공사를 미룰 형편이 아니어서 실로 난감합니다. 뜨거운 여름에 출산하는 방법을 터득한 그녀가 내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아직 그녀가 안겨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녀를 통해 다시 한 번 생명이 지닌 자연성의 위대함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월트 휘트먼은 “풀잎 하나가 별들의 운행에 못지않다”고 했습니다. ‘바다’의 모성과 지혜 앞에서 휘트먼의 믿음에 나 역시 동의하게 됩니다.
그나 저나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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