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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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좌) 갯메꽃(우) ; 메꽃 좌측 뒤편의 잎과 갯메꽃 주변의 잎을 비교해 보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꽃이 아무리 좋아도 십일을 넘겨 피어있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십 년을 넘기는 권세가 드물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과 함께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경계하는 말로 자주 쓰입니다. 허나, 우리 인간의 언어와 다른 말을 쓰는 저들 식물이 자기를 실현하는 방법은 그리 간략하지 않습니다. 꽃 한 송이의 붉은 빛이 열흘을 넘기지는 못한다고 하나, 그 한 종 전체의 개화시기는 수개월에 이르는 식물이 대부분입니다. 나팔꽃과 비슷하지만 그 색을 훨씬 수줍게 피우는 메꽃도 그런 꽃입니다.
나팔꽃이 보라색 나팔 모양의 꽃을 초가을에 피울 때, 메꽃은 연분홍빛 나팔 모양의 꽃을 여름철에 피웁니다. 메꽃 한 송이야 금새 피고 지지만, 메꽃 전체로 보면 6월부터 8월까지 포기마다 그 시간을 나누어 꽃을 피웁니다. 아랫마을 어귀 논둑에서는 6월에 한참 메꽃이 피어났지만, 나의 오두막에 이르는 길섶 밭둑에는 8월을 앞둔 지금도 메꽃 몇 송이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메꽃은 이렇게 논밭둑에 잘 자라지만, 갯메꽃은 바닷가 자갈 위에서 바다를 보며 자라는 풀입니다. 어쩌다 갯메꽃은 바닷가를 터전으로 삼았을까요? 바다의 강한 바람도 견뎌야 하고, 유기물이라고는 한 톨도 없을 것 같은 바닷가 자갈더미의 척박함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그곳을 터전으로 삼게 되었을까요? 그 사연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청산도에서 갯메꽃에게 말을 걸다가 그가 어떻게 그 자갈밭 위에서 자신의 열망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사막만큼 힘겨울 자갈밭 위에서 갯메꽃이 어떻게 제 꽃을 피우고 삶을 지속하고 있는지, 그 비밀은 무엇인지는 그가 자라는 모양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메꽃과 그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갯메꽃의 잎은 메꽃의 잎과 확연히 다릅니다. 메꽃은 좁다랗고 긴 잎을 가졌지만, 갯메꽃은 깔때기 모양의 오목한 잎을 가졌습니다. 나는 단박에 그것이 부족한 물을 모으기 위한 갯메꽃의 오랜 노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빗물을 깔때기로 모아 자신의 뿌리로 천천히 내려주기 위한 장치인 것입니다. 또한 그는 기는 줄기를 만들어 자갈 틈에 바짝 붙어서 기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는 잎이 모아 놓은 빗물을 네 줄기 내 줄기 가리지 않고 받아 쓸 수 있고, 키를 낮춘 기는 줄기는 바닷가의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장치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갯메꽃은 바닷가 자갈밭 위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는 삶을 핍박하는 그곳의 제약을 완벽하게 이겨낸 식물입니다.
혹시 그대 삶도 자갈밭 위에 놓였다 여긴 적이 있는지요? 그런 그대라면 오늘은 갯메꽃을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얻어보면 어떨지요? 자갈밭 위에 피운 갯메꽃의 삶을 배워보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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