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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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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일 15시 05분 등록

오늘은 인도, 코발람 해변의 아름다운 리조트 호텔에서 편지를 씁니다. 팔자가 아주 늘어졌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업무 관련 회의를 위해 트리반드룸에서 뱅갈로르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직항 비행기를 타면 불과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요. 문제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뭄바이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예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료도 3배나 더 물게 됐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지요. 

india_map.jpg
 
더 큰 문제는 트리반드룸에서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착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뭄바이에서 뱅갈로르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지요. 다음날 아침 가장 이른 시간에 뭄바이에서 뱅갈로르로 가는 비행기와 뭄바이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을 수소문하고 예약을 했습니다. 지리를 잘 모르니 호텔에서 택시 기사를 보내주기로 했고요. 여기까지도 그럭저럭 참을만했습니다. 오만 가지 회의에 끌려 다니느라 점심을 굶은데다가 연착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녁도 건너뛰었지만 정신이 없어서인지 허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더 기다리고서야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텁텁한 공항 터미널에서 땀에 절어있다가 에어컨 바람 씽씽 나오는 비행기에 오르니 기분이 삼삼하더군요. 뒤틀렸던 모든 일정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적어도 엔진에 이상이 생겨서 수리가 필요하다는 기장의 안내 멘트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죠.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다시 비행기에서 내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는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 황당하더군요. 공항 카운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비행사가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고 다음날 비행기편을 예약해주는 것으로 사고는 일단락되었습니다. 불운은 끝이 나고, 행운의 차례가 온 것입니다.
 
항공사에서 제공한 택시가 저를 내려놓은 곳은 5성급 리조트 호텔이었습니다. 호화로운 모습에 약간 주눅이 들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게 공짜라 생각하니 배시시 웃음이 나오네요. 푸짐하게 차려진 뷔페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습니다. 감히 제 돈 내고는 와보기 힘든 고급 호텔에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편지를 쓰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서야 하니 서둘러 잠을 청해야 하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어쩌면 저쪽 침대 위에서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코를 골며 잠든 낯선 인도 할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resize_hotel.jpg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내내, 그리고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서 편지를 적는 이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뭄바이 공항에서 우릴 픽업하기 위해 기다렸을 택시 운전 기사입니다. 뒤늦게 취소 전화를 하긴 했지만, 공항에 서서 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한참 동안 기다렸을 그에게 참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기를, 마음 상하지 않았기를 바래봅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비슷한 일만 해오던 제게 이곳의 생활은 막막한 불운과 가슴 뛰는 행운의 연속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제게 벌어질까요?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전 제 가슴 속의 떨림을 따라갈 테니까요. 오늘, 여러분의 하루는 어땠나요?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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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8.02 21:58:16 *.197.63.127
불행 중 다행이라니 그나마 다행이구려.
오늘 하루?
그냥 맥 없이 흘려보내는 날이었지비. 하루를 이렇게 쓸모 없이 멍~ 하니 지낼 수도 있구나. 하지만 뭐 그런게 어느 날의 삶이기도 하지. 잘 있다가 오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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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01:16:54 *.70.142.110
인도 그 멀고 낯선 곳에서도 편지를 띄워주는 선배에게 감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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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듣고너무반가웠던범
2010.08.05 07:48:24 *.67.223.154
전보다 더 맑고 더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기쁘던지....ㅋㅋ
"거기 어디예요? 종윤씨..."
이제 잠시 집에 왔고 곧, 다시 나가야할지 모른다네요.

어쩜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인디아에서 오는 편지들을
계속 보게될지도 모릅니다.
글속에 종윤씨의 웃는 얼굴이 늘 함께 따라오니...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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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2010.08.06 12:01:56 *.38.153.141
종윤~~~
머나먼 나라, 그 이름은 무수히 많이 들었지만,
마음만 역마살인 나는
내 집 구석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름만 친숙한 나라, 딴 사람들의 여행기로만 친숙한 나라, 인도에
생업을 위해, 또 자신의 내면의 새로운 소리를 따라 떠나간 그대의 편지를 읽고 있다.
행과 불행, 에피소드와 역사가 조우하는 것이 그냥 우리 삶이겠지?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게~~~
다음 편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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