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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 10시 55분 등록

 

 

한비는 왕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어머니가 천한 신분 출신이라서 왕실에서도 별로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또 다른 책에는 그냥 명문 귀족의 후예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차라리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랑받는 귀한 아들로 자란 것보다 훨씬 불행했는지도 모른다. 왕실에는 수많은 왕자와 공주들이 있었을 터, 그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때문이었는지 한비자는 심한 말더듬이였다.

 

의학적으로 보면 말을 더듬는 것은 심리적, 환경적 원인이 가장 크다.

대부분 5살 이전에 시작 되는데, 그 시기 환경과 거기서 비롯된 이상심리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한비자의 어린 시절 왕실에서 받았던 심리적 압박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 해 볼 때 말더듬이가 된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학자들이 추측한다.

 

한비에게도 그의 절규를 들어줄 좋은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시간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기원전과 후) 조지 6세에게는 로그라는 언어치료사가 있었기에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했던 것이고, 한비의 경우에는 스스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마도 대화는 거의 되지 않았기에 자기의 의견을 주로 죽간

종이가 발명되기 전 대나무를 쪼개 끈으로 엮어 글씨를 쓰도록 한 것) 등에 써서 전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난 ‘킹스 스피치’를 보며 조지 6세의 ‘Before & After의 삶에 혼자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한계를 넘기 위한 사랑에는 그의 아내, 불안과 두려움의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그리고 가장 위대한 변화의 주인공 조지 6세가 있었다.

 

 

‘말더듬이 왕 - 세상을 감동시킬 위대한 도전을 시작하다.‘

 

 

로그-‘형이랑 친했어요?’

조지 6세 - ‘늘 잘 몰려 다녔죠. 형은 늘 돋보였어요.

조지 5세 - ‘말을 내 뱉어. (종종 윽박지르며) ‘원래 아버지란 무서운 존재야. ’

이렇게 이야기하고 하셨죠!

 

 

 

위의 대화 장면은 말더듬이 왕 조지 6세가 드디어 그의 언어치료사 로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이다.

선왕 조지 5세가 승하하고, 왕의 자리에 맘이 없는 형이 왕위를 물려받기로 결정 된 그날 그는 복잡한 심경으로 로그를 찾아 온다.

조지 6세는 언어치료사 로그를 만나며 자신의 말과 관련된 삶을 Before & After로 변하게 만든다.

그를 만나기 전엔 말은 더듬고, 아버지와 형에 대한 두려움, ‘내가 어떻게 왕이 된달 말이지? ’자신감이 결여된 그런 인간이었다.

하지만 경험 많은 ‘불안과 두려움’의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은 자신감 있는 왕으로 변한다.

 

King's Spee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영국 왕 조지 6세가 ‘언어 장애’ 말더듬이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접근으로 시도한 언어 치료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은 조지의 언어 장애는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면서

그의 삶에 조금씩 빛이 들어온다. 로그에 의해 치료가 가능했던 것은, 환자의 정서적 측면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지는 로그에게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평민(로그)에게 왕자(조지)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그 생각이 그와 로그 사이를 단단하게 가로막는다.

 

 

라이오넬을 만나기 전의 모든 치료사들 그리고 조지 자신조차 그의 언어장애는 선천적이며 단순한 기능적 문제로 단정 지었지만,

라이오넬은 조지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그의 환경적 배경과 생각을 이해하고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요크공작: 박사! 날 어떻게 치료할 생각이지?

로그: 원하시면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요….우선 편하게 그냥 제 이름을 부르세요.

요크공작: 박사라고 부르는 게 편하오.

로그: 전 이름이 편한데…전 뭐라고 부를까요?

요크공작: 처음엔 저하…그 다음부터는 공작님.

로그: 치료하며 쓰긴 좀 딱딱하네요. 성함을 부르면 어떨까요?

요크공작: 그럼 알버트 패트릭 아서 조지 왕자님이라 부르게.

 

 

로그: 그냥 버티 (알버트의 애칭)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요크공작: 가족만 그렇게 부를 수 있소!

로그: 잘됐네요. 여기서는 서로 동등하게 대하는 게 좋습니다.

 

요크공작: 내 주치의들은 흡연이 후두를 편하게 한다고 하던데..

로그: 멍청한 사람들이네요.

요크공작: 모두 기사작위를 받은 사람들이지.

로그: 그럼 ‘공식’적인 멍청이들이네요.

요크공작: …

로그: 제 공간에서는 제 규칙을 따르셔야 합니다.

 

라이오넬은 제일 먼저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를 권하는 등 신분, 나이, 직위를 떠나 동등한 입장이 되길 원했다.

동등한 입장에서는 조지와 로그 중 누구도 우위를 차지하거나 소외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에게는 왕자를 버티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돈내기를 스스럼없이 제안하는 로그의 방식이 익숙할 리 없었지만 동등한 관계로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 결국 치료될 수 없다는 로그의 소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발한다.

조지가 왕자로서 권위의식을 벗고 로그에게 다가감에 따라 둘 사이의 인간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의 말더듬 증세는 조금씩 호전되어갔다.

 

 

라이오넬 로그의 치료 방식은 물리적 즉 기능적 치료와 정서적 치료가 병행된 것이었는데, 조지가 원하는 데로 천천히 말하기, 호흡법 등의 다양한 기능적 · 물리적 방법으로 치료해나가며 동시에 정서적으로 파고들어갔다. 라이오넬은 인간적으로 동등해지기 위해서 조지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애칭을 계속 부르는 등의 노력을 하는 동시에, 대화를 통하여 언어장애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라이오넬의 치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질문기법이 적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지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조지가 라이오넬을 찾아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때의 대화를 통해 조지는 라이오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다. 조지는 아버지를 여의고 형이 왕이 된 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으로 로그에게 찾아온다.

이 날 조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에 관련된 과거를 들려주는데, 이를 통하여 라이오넬에 대한 조지의 신뢰가 높아지게 된다.

조지와 라이오넬 사이의 신뢰가 굳어지고 긍정적 인간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조지는 마침내 가면을 벗어버리고는 자신의 과거와 속내를 말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위압적인 왕가의 분위기 속에서 국왕이자 엄한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형에 억눌리고 간질로 죽은 동생으로부터의 충격을 안고서 유모에게조차 학대를 받아야 했던 그는 라이오넬에게 가족관계와 심지어 왼손잡이와 안짱다리를 반강제적으로 교정해야 했던 괴로웠던 기억, 그에 따른 압박감, 두려움, 불안한 마음들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이때 라이오넬은 적절한 화제전환과 침묵 그리고 충분한 공감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화를 진행하였다. 부수적인 질문과 적당한 시점의 화제전환을 통해 조지의 과거 속에 있는 언어장애의 원인들이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간파하였으며, 조지가 대화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게끔 하였다. 또 이 대화에서 라이오넬이 대답보다는 침묵을 더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언어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조지의 말을 방해하지 않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라이오넬의 치료는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격한 방식을 취하였다. 그는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고,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권해보는 방법을 쓰기도 하면서 조지의 내면을 보듬으며 문제를 치료해나갔다. 그러나 한 번씩 격한 상황을 만들어내 조지가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게 하는 등 조지의 숨겨진 내면을 이끌어 내서 치료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러한 격한 방식은 조지가 다시 자신을 숨기려하거나, 심리적으로 움츠러들려고 할 때 효과적이었던 것 같았다.

 

 

 

말더듬이에 대한 문제는 기술적으로 변화 시킬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마음과 연관된 때문이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문제, 내가 무시당하고 수치스러웠던 기억들이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저장되어 나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더듬이라는 사실에 '킹스 스피치'를  오랫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라이오넬 그를 언어치료사라고 사람들은 부르지만 나는 불안& 두려움의 치료사라고 부르고 싶었다. 억압된 환경에 대해 재해석하여 달라진 나를 보게 해주는 일은 언어치료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프리젠테이션이나 스피치 교육을 하다보면  말을 더듬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의 히스토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깊은 신뢰와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사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긴 매우 어렵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끌어가는 사람을 믿고 전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내어놓는 일, 직면하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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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3:27:58 *.229.239.39

말더듬이 두명이 변화된 모습에는  마음과 연관된 데서 원인을 찾아내는 방법이 참~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 특히 초딩때  나를 암흑속으로 몰아 넣은 기억이 있습니다.

국어 시간이면 읽어 나서 책을 읽게 했어요. 말을 더듬어 책을 읽을 수가 없어지요.

지금은 치료 되었지만....그 때는 어두운  터널안에 있는 기분이였지요^^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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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23:20:05 *.9.188.82

아~

웨버님도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기분

저도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알지요

전 다른 종류의 일로 터널안에 갇힌 기분을 경험했는데..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이 ............때가 되니 끝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견디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지 나 가 리 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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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06:32:55 *.154.223.199

읽으면서 킹스 스피치가 영화일까 책일까 궁금했어요.

어떻게 샐리언니에게는 스피치와 관련된 그런 것들이 마구 가 닿을까, 언니가 자석인가 신기하기도 했구요. @@

한비자와 조지6세가 모두 언니 책에 나오겠네요. (한비가 한비자 맞지요? 하하^^;;;)

두 사람이 분리되어 각각 다루어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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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23:30:29 *.9.188.172

ㅋㅋ 영화여 콩두야.

난 자석이지롱~

맞어 분리해서 쓰는 편이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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