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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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환희를 느끼는 것은 너에게 가고 있다는 그 자체다. 마침내 너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그 자체가 나에겐 더없는 기쁨인 것이다.
- 이정하,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더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게 그 사람은 ‘첫 사랑 그녀’이고, 그 장면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입니다.
십대였던 여름의 어느 날, 햇살이 밝게 내리 쬐던 오후였습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도적으로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30m쯤 앞에 있던 그녀는 눈부셨습니다. 아마도 흰색 반바지에 같은 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찡그린 표정이었고, 저는 눈부신 그녀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만 이 장면만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면서 문득문득 이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면 어느 새 미소 짓곤 합니다. 오랫동안 혼자 좋아하며 그녀를 보며 웃었고 또 울었습니다. 그녀가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았기에 그녀는 또한 세상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도 그녀를 사랑할 것 같습니다.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아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결과가 뻔함에도 다시 시작해도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랑, 어쩌면 그런 게 첫사랑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첫 사랑은 슬픔과 기쁨으로 혼색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슬픔인 것은 이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고, 더 잘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기쁨인 이유는 그 사랑의 순수함과 그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몇 개의 장면일지라도, 그 이후에는 느끼지 못한 마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은 내게 아픔과 희열을 함께 줬지만, 그 기억은 하나의 의미로, 몇 개의 장면으로, 그렇게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그 장면들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로 남는다는 건, 그 사람보다 내게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첫 사랑 그녀처럼 그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그녀에게 아름다운 장면 하나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사랑은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정하 시인의 가슴에 박혀 있다는 어떤 글이 내 가슴에도 박히는 오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본래 우리의 모습보다 훨씬 적다."
* 이정하 지음,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자음과모음, 1998년
* 이 책은 여러 차례 재출간(개정판) 되었고, 저는 초판을 읽었습니다.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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