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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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해야 마땅한 절기이거늘 볕 만나기가 요즘 밤하늘 반딧불 보기만큼 힘듭니다. 비가 얼마나 잦고 심하게 퍼붓는지 산방으로 올라오는 길 여러 곳이 파여나가 보통 차로는 왕래가 어려운 정도입니다. 햇볕 한 줌 들 때마다 빨래를 해서 널어보지만 오늘로 널었던 빨래를 네 번이나 걷어서 다시 하고 또 널기를 반복했습니다.
비가 잦으니 산중의 일상도 늘어지기 쉽습니다. 삶이 처져서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은 날, 습관처럼 즐기는 기괴한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홀딱 벗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마당으로 나섭니다. 볕 좋은 날엔 샤워를 마친 뒤 수건 한 장 들고 데크 위에 서서 몸의 물기를 닦으며 젖은 머리를 텁니다. 부는 바람의 자유로움을 몸의 잔 털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의자에 앉아 책 몇 장 읽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맡겼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폭우 대단하던 사나흘 전에는 다 벗은 채로 퍼붓는 빗속을 서성이다 들어왔습니다.
그대는 혹 다 벗고 자연에 서 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시는지요? 처음의 경계심을 넘고 찾아오는 그 자유함의 극치를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바람이면 바람대로, 햇살이면 햇살대로, 퍼붓는 비면 그 비 그대로 몸의 감각은 무방비함의 즐거움에 젖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롭습니다. 모든 억압이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면서 구석구석 세포들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1만년 전의 인간 유전자가 그러했듯,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본래 이렇게 자유롭고 거침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숲을 뛰노는 자유한 짐승들의 주파수대역과 같은 대역에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산방 생활이 어느덧 만 2년입니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내키는 대로 살아가기’의 삶 속에서 가장 좋은 순간 중의 한 장면이 바로 위의 장면입니다. 나는 최근 이 자유로움의 행복과 충만함을 그대와 나누기 위한 공간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말 그대로 삶의 길 위에 함께 서있는 벗들을 위한 방입니다. 마을의 총각 목수들이 깎은 기둥과 보로 구조를 만들었고, 이 곳의 흙을 써서 손으로 찍고 말린 흙 벽돌로 벽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 역시 창이 좋습니다. 너른 군자산을 그대로 품어 방으로 들이고 서산으로 향하는 햇살을 길게 머물게 할 작은 창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아담한 욕실도 하나 두었습니다. 나는 특히 나무를 지펴 방을 데울 아궁이 공간과 어우러지게 놓은 툇마루를 좋아합니다. 그 툇마루에 눕거나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탁주 한 사발을 치고 빈대떡을 뜯어도 정말 좋습니다. 때로는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방을 자자산방(自恣山房)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내 오두막 전체의 일부이므로 그냥 백오산방의 사랑채로 부를 수도 있으나, 따로 그렇게 특별한 이름을 두고 싶었습니다. 자자(自恣)는 ‘자기 마음대로 함’ 혹은 ‘승려들이 하안거를 마치며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나는 그대를 이 방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 방에 머물며 그대도 나처럼 마음대로 살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그대 걷고 싶은 길 위에 당당하게 설 힘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자산방이 늘어지고 지친 삶을 추스르는 공간이면 좋겠고, 그대 품은 이야기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자산방에 오면 스스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추운 계절에는 스스로 불을 지펴야 할 테고, 스스로 야채를 뜯고 음식을 하고, 스스로 정리를 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 그대 오시는 날에는 나는 다만 그대의 자자(自恣)를 돕는 투명인간으로 있고 싶습니다. 그대 언제 다녀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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