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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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 역할을 맡은 컨설턴트들은 프로젝트가 가진 생태적인 위험 요소들을 조목조목 파고듭니다. 고객들은 당장 결과물을 달라고 야단이고요. 하도급업체들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습니다. 이들 사이에 끼어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짬짬이 현지 사무소로 쓸 건물도 알아봐야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살 집도 찾아봐야 합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큰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연히 기대감과 부담감이 절묘하게 오버랩 되고 있지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무엇 하나 놓칠 새라 신경이 곤두섭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온몸이 노곤합니다. 할 일이 잔뜩 있지만 진도는 더딥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골아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생활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힘이 좀 드는군요.
혼자 멀리 인도로 오고 보니 참 많이 다릅니다. 먹는 음식과 잠자리가 그렇고요.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 또 그렇네요.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일을 하던 지난 10년을 생각해보면 지금 제게 벌어지고 있는 일 하나하나가 새롭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문득 얼마 전까지 저를 감싸고 있던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역시 변화는 쉽지 않네요.
매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인도 내 협력회사의 현장 대리인 정도라고 하면 맞겠네요. 호텔로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했더군요. 긴장된 마음으로 필기구를 챙겨서 로비로 나섰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면서 말이죠. 로비에 도착한 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편안한 외출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그는 8살짜리 아들, 죠셉과 함께였습니다.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더군요. 저녁 무렵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산책을 마친 우리는 바닷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음식점 가운데 한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낯선 바닷가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곁들여 맥주를 한잔 들이키니 짜릿한 한숨이 쏟아집니다. 얼마쯤 지나자 바닷가를 따라 달리며 소리치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죠셉에게 물으니 '엄마'와 '아빠'라는 말은 우리 나라와 똑같다고 하네요. 신기하죠?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두 단어를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이곳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알 속의 새끼와 알 밖의 어미가 동시에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큰 일을 하려면 언제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손을 내밀어야지요.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걸음 깊이 들어가 친구가 되는 것! 멀리 인도에서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마음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현지 인터넷 사정이 열악해서 메일 한 통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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