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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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서를 좋아합니다. 대체로 책을 읽으면 즐겁고, 책은 에너지와 영감을 줍니다. 그에 비하면 글쓰기는 제게 모순적입니다. 글을 쓰는 건 즐거움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글쓰기에서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에너지가 방전되기도 합니다. 또 글을 쓰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같은 길만 맴돌다 지쳐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아직 내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아침 6시 30분부터 9시까지를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해두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글을 쓰자고 다짐하지만 어떤 날은 쓰고 어떤 날은 안 씁니다. 글쓰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심신의 에너지와 글감의 여부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신체적 에너지가 떨어져 있을 때는 글쓰기를 미루게 됩니다. 지친 심신이 안정이 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비겁한 합리화이자 허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열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에는 “그냥 쓰라”고 합니다. 글쓰기는 훈련이고, “훈련은 공연에 앞서 무용수가 몸을 풀고, 시합 전 육상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과 똑같다. 육상선수라면 ‘난 어제 뛰었어요. 오늘은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당연한 말이 이제야 가슴 깊이 들어옵니다.
나란 존재가 어떤 상태이든,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정해둔 시간만큼은 글을 쓰자고 다짐합니다. 글감이 바닥나면 그 바닥에 대해서 쓰고, 글감을 찾는 방법에 대해 쓰고, 머릿속에 들어온 ‘첫 생각’에 쓰고, 어제 읽은 책에 대해 쓰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글감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재해 있는 글감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글감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감고 있는 내가 있을 뿐입니다.
선(禪)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골드버그는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만약 당신 몸이 진정으로 글쓰기에 실려 있다면, 거기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글 쓰는 행위만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13세기의 선승이었던 도겐은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일매일이 글쓰기 좋은 날입니다.
* 나탈리 골드버그 저, 권욱진 역,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문화, 2005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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