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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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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수 0
2010년 10월 28일 02시 01분 등록

2주 전쯤의 일입니다. 외출을 한 뒤 산방으로 돌아왔는데 바다가 보이질 않습니다. 여러 대의 차 소리가 섞여 들릴 때도 나의 차 소리를 정확히 알고 마을 근처까지 마중을 나오는 녀석이 바다인데, 그날은 마을 주민의 항의 때문에 묶어두고 외출한 이만 나를 보고 안절부절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내가 이를 풀어주며 바다 어디 있어?” 묻습니다. 평소와 달리 이 맞은 편 산 쪽을 바라보며 짖습니다. 아니, 짖는다기보다 울부짖는다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그 순간 그 산 언저리 어디에서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다에게 분명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합니다. 신발을 고쳐 신고 지팡이를 들자 벌써 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뒤돌아 나를 바라봅니다. 나는 그것이 내게 따라오라는 표시임을 알아챕니다. 가을 들풀 우거진 길을 헤치며 맞은 편 산으로 들어서서 바다야~!” 외쳐보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앞장 선 을 믿고 도착한 곳은 마을 형님이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밭입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산은 내 곁을 지키며 내가 걷는 대로만 따라다닐 뿐 길잡이 역할을 끝냅니다. “바다야~! 다시 여러 차례 바다를 부릅니다. 하지만 바다의 대답은 들리지 않습니다.

 

날은 저물어가고 나의 마음을 채운 애잔함은 농도를 더해 갑니다. 독 오른 뱀에게 물린 것일까? 이따금 올라오는 마을 사냥꾼의 총에 맞은 것은 아닐까? 녀석에 대한 걱정이 증폭되다가 원망으로 변해 갑니다. 온 산 헤매며 사냥에 몰두하는 일을 자중하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완전히 무시하고 개의 본분이 사냥에 있다는 듯이 산천을 누비던 녀석이었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누르며 여기저기 찾아보지만 다 자란 콩과 큰 키의 풀로 가득한 비탈진 밭에서 도무지 녀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오로지 주인 곁을 지킬 줄만 아는 도 야속해집니다. 분명 바다의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알 텐데, 더 이상 안내를 하지 않고 평소의 습관대로 나의 곁만 충직하게 지킵니다. 긴 시간 바다를 찾아보았지만 나는 녀석을 찾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다의 팔자라 여기기로 하고 나는 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네댓 걸음 집을 향해 발을 놓았습니다. 그때입니다. 아홉 시 방향으로 20m쯤 떨어진 풀 투성이 속에서 바다가 마치 자맥질하고 사라진 물고기처럼 단 한 차례 솟아올라 울음을 토하고 풀 속으로 사라집니다.

 

서둘러 달려가 그를 봅니다. 거의 탈진한 듯 쓰러져 희미해진 눈빛으로 나를 봅니다. 녀석의 시선을 비켜 나의 눈은 녀석의 앞 발로 향합니다. , 이게 왠 일입니까? 바다의 오른쪽 앞발을 날카로운 톱니를 가진 쇠 덫이 물어버렸습니다. 발에 피가 보입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가져간 지팡이를 써서 덫의 톱니를 벌려보려 합니다. 덫을 조금 벌리는 데 성공했지만 지팡이가 튕겨나가며 다시 톱니가 바다의 발을 차갑게 물어버립니다.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 순간적으로 튀어오르며 바다가 내 왼 팔을 물었다가 얼른 놓습니다. 지독한 통증으로 거의 무의식을 헤매면서도 녀석은 나를 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느끼는 순간이 찰나처럼 지났습니다. 몇 번의 시도로 잠시 벌어진 덫에서 바다가 얼른 발을 빼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오른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합니다. 내가 앞장 서서 걷자 심하게 절뚝이며 겨우겨우 나를 따라 움직입니다. 이따금 주저앉아 쉬기도 합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산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별도의 치료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며칠간 웅크린 채 스스로 제 상처를 핥고 절뚝이며 걷기를 반복하더니 열흘 정도 지나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다시 사냥에 나서 기어이 산토끼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나타났습니다. 이대로라면 바다는 마을 사람들이 고라니로부터 밭 작물을 지키기 위해 놓은 덫에 또 다시 걸릴 지도 모릅니다. 한편 은 나와 함께 있는 한은 절대 덫에 걸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삶은 저 둘의 삶에서 어떤 삶을 닮은 것일까? 혹은 어떤 삶이 주어진 삶을 더 맛있게 사는 것일까?

IP *.38.18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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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10.28 09:55:22 *.168.105.169
정답은 없지요. 그때 그때 따라 변화무쌍해야 되지 않을까요. 때로는 산처럼, 때로는 바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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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10.29 22:21:07 *.20.202.217
정샘~!
부처 얼굴도 그렇게 많았다지요? 정샘도 이제 걸림이 없으신 경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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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10.10.28 10:10:03 *.58.57.136
바다가 지금은 괜찮다니 다행이예요 형. 바다도 사냥거리를 찾아 돌아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겠죠. 그래도 가고 싶은게 바다의 마음. 산의 충짐함도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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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10.29 22:22:44 *.20.202.217
아~ 건재! 오랜 만이다.
춥기 전에 함 보려나 했더니 벌써 겨울 문턱이다.
다시 봄꽃 피면 볼 수 있으려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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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10.10.28 11:19:06 *.246.146.18
창졸 간이긴 했지만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업에 매인 몸인지라 늦은 시간에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했고,
산방으로 잘 돌아갔으리라 믿네.
흰 까마귀 노니는 공간에서 하루 저녁 막걸리로 밤을 지새울 기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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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10.29 22:29:39 *.20.202.217
그러게,
얼굴 빛에서 모감주처럼 여물어 가는 사십대 중반의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다.
멀리 출타했다 돌아온 빛깔이 그 정도면 산중에 살면 산도 날아서 넘겠더라.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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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옥
2010.10.29 15:30:53 *.158.234.30
읽는내내 긴장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 괜찮겠지 등
참 다행입니다
산이와 바다가 언제나 씩씩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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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10.29 22:30:14 *.20.202.217
산과 바다에게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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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11.02 15:25:16 *.253.124.89
자자산방이 눈에 선~합니다.
산위로 떠오르던 달님이랑, 바람결에 들리던 풍경소리,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장작불~
모든게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런 산속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 가는 용규선생님이 참 많이 부럽습니다.
눈이 오면 한번 가겠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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