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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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가운데 짬짬이 주어지는 휴식이 아주 꿀맛입니다.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그냥 바람을 쐬러 나선 것만은 아니었지요. 저에겐 싸고 싱싱한 해산물을 잔뜩 사다가 카레에 찌든 심신을 위로하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물어가며 어렵게 목적지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뜻밖의 상황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일요일엔 어시장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빈손으로 돌아오려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닙니다. 그냥은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서 아쉬움을 달랠 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어시장이 닫힌 걸 확인했던 순간의 낭패스러운 마음이 새로운 목표를 만나자 다시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해안 도로를 따라 얼마쯤 갔을까, 멀리 절벽 아래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딱 보는 순간 알겠더군요. 잘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직감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습니다.
족히 3~4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그물을 당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각각 하나씩 그물을 당기는 줄 알았는데, 길게 연결된 하나의 그물을 양쪽에서 당기고 있더군요. 앞바다의 물고기를 몽땅 긁어 들일 것 같은 기세입니다. 그물을 모두 당기는데 한 시간쯤 걸린다고 하네요. 제게는 그 말이 한 시간만 기다리면 싱싱한 생선을 살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작은 기다림이 시작됐습니다. 막상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서있으려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물을 다 당기기 전에 사람이 먼저 익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라, 그물을 당기던 할아버지가 손짓을 합니다. 놀지 말고 와서 힘을 보태라는 듯합니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하는 생각에 구두가 젖는 줄도 모르고 달려들었습니다.
무리 속으로 들어서자 조금 전까진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말라얄람어로 나지막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그물을 당기는 이들의 힘찬 몸짓에서는 흥겨움이 가득합니다. 동네 꼬마들은 잡아당기고 있는 그물 안쪽의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을 칩니다. 뜨거운 햇살과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입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일과 축제가 둘이 아닙니다.
그물을 모두 당기고 보니 잔챙이만 가득합니다. 그나마 그물에 구멍이 뚫려서 많이 도망가버린 모양입니다. 이거 잡으려고 그 고생들을 했나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오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만큼의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 수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사람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가진 것의 양과 행복은 정말 별다른 관계가 없는 걸까요?
팔뚝만한 생선 두 마리와 덤으로 얻은 작은 물고기들을 비닐 봉투 하나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비싸게 샀다고 투덜거렸지만 땀 흘리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좋은 하루가 모이면 좋은 인생이 되겠지요. 오늘 하루 덕분에 제 인생은 조금 더 행복해졌습니다. 멀리 그곳에서 여러분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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