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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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손님이 오신다기에 근 열흘 만에 자자산방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모처럼 불을 넣는 아궁이인데도 불은 잘 타올랐습니다. 불쏘시개에 불을 지피고 조금씩 큰 장작을 넣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스쳤습니다. 아궁이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잠시 떠올랐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과 타닥타닥 나무 타오르는 소리에 그 느낌도 이내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아궁이 바닥에 붉은 알불이 생겼고, 잠시 뒤 잘 타던 불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작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바람이 통할 틈이 별로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작을 교차하여 얹어놓은 아궁이의 하단부에 바람구멍을 내주었습니다. 공기 구멍을 확보해 주면 장작의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면서 다시 장작이 활활 타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구멍을 내고 채 1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아궁이 바닥의 시뻘건 숯이 놓여진 불 구멍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며 작고 시커먼 물체 하나가 후다닥 튀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쥐 한 마리가 온 몸을 불에 그을리고 내 무릎과 무릎 사이를 지나 사타구니 아래 언저리까지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에게서는 심지어 고기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순간 무척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내 쥐가 얼마나 뜨거울까 그의 통증이 내게도 전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는 그 작은 쥐를 더 보기가 불편해서 멀리 밭둑 근처에 던지듯 놓아주었습니다. 돌아와 다시 장작 두어 개비를 집어넣었습니다. 잠시 뒤 또 다시 시커먼 무언가가 튀어나왔습니다. 또 다른 쥐였습니다. 녀석은 외상이 별로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내 발 언저리를 헤매며 안절부절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어나서 몇 발짝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피한 채 녀석을 지켜보았습니다. 다행일까요? 녀석은 곧 툇마루 아래쪽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었습니다.
한동안 불을 지피지 않자, 자자산방의 아궁이를 몇 마리의 쥐가 자신들의 거처로 활용하고 있었나 봅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땅의 찬 기운이 덜한 아궁이를 녀석들은 안전한 안성맞춤 은신처로 택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하나가 나타나 연기를 피우고 이내 뜨거운 장작불을 활활 집어넣었겠지요. 연기와 뜨거움을 피해 구들 아래 고래로 피했겠지요. 연기는 더욱 그 농도를 더해 오고 퇴로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들 아래에 숨어 있다가는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녀석들은 불구덩이를 넘어야만 하는 선택이 놓여 있었습니다. 불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불을 마주하고 그 불을 넘어서야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중 한 마리가 먼저 죽기살기로 달궈진 빨간 숯불 위를 달음박질치며 건넜습니다. 입구에 산처럼 앉아있는 인간이 두려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녀석은 온몸이 불에 그을리고 말았습니다. 치명상을 얻은 것이지요.
아직 불 너머에 남아 있던 다른 한 마리는 입구에 산처럼 앉아 있는 커다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로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죽기살기로 불의 장벽을 넘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성공한다 해도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는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 죽기살기로 넘어야 하는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의 운명은 신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숯불을 타고 넘는 혁명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이 신은 그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자리를 피하게 했습니다. 불의 장벽을 죽기살기로 넘은 생쥐는 드디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연기와 뜨거움으로 가득 차오르는 아궁이 속에서 쩔쩔매던 쥐 두 마리를 만나던 날, 나는 내가 떠나온 아궁이의 속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게도 요 몇 년은 그렇게 죽기살기로 넘어야 하는 삶의 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쥐들아~! 차라리 멀리 가서 두려움 없이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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