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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7일 17시 08분 등록

현대의 영웅에 대하여


현대의 영웅이란 늬앙스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굳이 영웅이라고 하지 않고 현대의 영웅이라고 하는 것에 뭔가 독특함이 느껴졌다. 영웅이면 그냥 영웅이지 현대의 영웅이라니..

 

그리고 곧 깨달았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봐왔던 거대한 전쟁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잔인한 살상도, 인류의 사상을 바꾸는 혁신도 이제 경험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살고 있으며, 사회는 복잡해져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기회도 필요성도 충분하지 않아진 것이다.(물론 몇몇 나라들은 제외한다)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개인적인 일로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자기만의 확고함도 가지고 있다. 혜성이 떨어지는 큰 일이 아니고서는 이제 혁명이 일어나기 힘들어진 시대인 것이다.

 

현대의 영웅은 바로 그거다. 예전의 영웅같이 혁명적이고 선동적일 필요가 없어진 사회에서 조용한 영웅들 말이다. 묵묵히 일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바로 현대의 영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대의 영웅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그 모습의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영웅의 모습은 이제 없다. 사람들은 모두 추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영웅 역시 여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우리 아버지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오시고 36세에 돌연 광주로 오셨다. 국정원도 다니셨고, 한번씩 서울에 가시면 이길은 이랬다면서 예전 얘기도 많이 하시지만 왜 지방으로 내려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신다. 전북 임실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일 거라 추측해보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정이 많으신 분은 아니시다.

 

젊은 시절에는 두달 월급을 모아서 최고급 카메라를 사셨다. 당시의 사진들과 메모를 통해 사진에 빠져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라톤에 빠지고, 테니스에 빠지고, 종교에도 빠지셨지만 무엇보다 사색이 많으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단체활동을 싫어하셨지만 눈에 띄었고, 점잖고 지적인 모습은 어릴적 동경의 대상이였다.

 

위계질서, 군대문화를 싫어하신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금방 그만두시고 장사를 시작하셨다. 장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버지가 조금 답답하고 무능해 보이기 시작했다. 깐깐하고 원리원칙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깐깐했지만 손해도 자주 보고, 부정을 끔직히 싫어하면서도 실천력은 부족했다. 집이 잘 사는 것은 아니였지만 자식들에게는 지독히 절약을 강조하셨는데 정작 자신은 교회 헌금으로 엄청난 돈을 기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큰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학을 핑계로 도망치듯 광주를 떠났다. 한번씩 내려가 보면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고 성인이 되고 나니 서로의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주로 듣는 입장이셨다. 사랑이 넘치시는 분은 아니지만 어릴적부터 매한번 들지 않을 정도로 유하신 분이셨으니 자신에 대한 비판도 스스럼 없이 인정하셨다.
아들 입장에서 그냥 아버지가 답답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훨씬 더 성공하실 수 있을텐데 너무 느리고 너무 생각이 많아 기회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원리원칙보다 대충대충이 통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만 빼고 우리 가족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난 절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10년 넘게 사회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운좋게 병역특례도 했고, 월급이 밀리는 영세한 기업, 매일 신문에 나오는 대기업, 가족같이 즐거웠던 아르바이트등 참 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아버지 같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욕심이 많았을 뿐 진지하게 사색하거나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똑똑하고 깔끔하고 예의바르지만 자기 것을 내려 놓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돈, 이성, 가벼운 농담들과 자기만족을 위한 취미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썩 좋지도 않았다.

이리채이고 저리채이면서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 사회성은 없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금 손해보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하였고, 겉모습이 아닌 내적인 것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이다. 현대의 영웅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청렴하지도 않으며, 포용력이 뛰어나거나 성인군자같은 덕이 있는 인물도 아니였다. 그는 계산적이였으며 가끔은 괴팍하기도 했지만,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그를 추모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난 휴대폰을 개발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살아생전에 맨날 싸웠던(지금도 싸우고 있지만)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실 우리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사장은 대놓고 스티브 잡스처럼 팀을 운영했고, 초장기 우리 역시 아이폰의 위대함에 기가 눌렸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모두들 인정한다. 그는 역사의, 아니 기술의 선구자였다. 그의 성격이나 속물적인 행동은 한참 아래의 문제이다. 그는 어찌되었든 자기 분야의 정상이 되었으며 많은 기념비적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현대의 영웅에 대해 생각한다. 현대의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탁월함’이라는 것에 대해 말이다.

 

잡스가 죽던 날이 기억난다. 그날 난 잡스가 최초로 아이폰을 발표했던 2007년 프리젠테이션을 다시 보았다. 산업을 바꾼 역사적인 프리젠테이션이였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보면서 잠시동안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영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처럼 위대한 영웅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아니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스티브 잡스를 추종하지는 않지만 그의 흑백 사진을 보면서 슬픔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느꼈었다. 젊은 날의 나에게는 잡스의 젊은 날처럼 ‘탁월함’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현대의 영웅은 이제 예전의 영웅과 다르다. 그들은 조용하고 진지하고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의 탁월함과 실천력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추대해 줄 뿐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나 자신감보다 진지함과 실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다양한 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정형화된 영웅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자기 답게 행동하고, 자기답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영웅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현제의 문제에 직시해야 한다. 모든 이전의 영웅이 그랬듯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탁월함은 공포가 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상은 괘변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겪는 현재의 문제는 불평등이라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일 수도 있고, 정보의 격차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우리는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나뉘어져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못가진 자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고 있다.
지금 이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가? 정면으로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자격은 충분하다. 식량난을 해결해줄 과학자도 좋고, 불평등한 구조를 혁신해줄 정치가도 좋다. 이 문제를 뚜렷히 보고 있다면 그리고 영향력이 있다면 현대의 영웅이 될 조건이 충분하다.

 

명심하자. 누구나 현대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력이 필요할 뿐이다. 매일은 아니여도 가끔씩 현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냥 나만 살자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에 ‘탁월함’을 키우는 것, 그리고 그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 그게 바로 실천력이다.
진지해지고 탁월함을 키워가는 것이 현대의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IP *.251.2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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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21:53:49 *.62.164.220
저도 제 아버지의 세계를 요즘에서야 조금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열 형제의 맏이 이시지만 가족들만 모이면 침묵으로 일과하시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시던 아버지...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이 결국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가난 때문이었음을 요즘에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아버지처럼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아버지는 충청권에서 인정받는 중견화가 이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2.20 04:13:45 *.185.21.47

진지함과 실력이라...

그것도 탁월함이라...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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