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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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쯤 아랫마을 형님 집에 들렀다가 홀리듯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올라왔습니다. 이미 ‘산’, ‘바다’, ‘바람소리’까지 세 마리의 개가 있는 나는 더 이상 개를 키울 의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어쩐 일인지 닁큼 달려와 내 신발을 핥고 놀아달라 청하는 그 강아지를 덥석 끌어안았습니다. “형수님 이 녀석 제가 데려다 키워도 될까요?” 형수님은 망설임도 없이 말합니다. “그러세요. 아이구, 그 놈은 이제 복 받았네. 선생님 집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로 살 테니…”
녀석을 트럭 조수석에 앉히고 산방에 이르는 길을 덜커덩대며 올라옵니다. 신기하게도 제 어미와 아비를 찾는 기색도 없이 내내 나의 눈만 응시합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무구한지 마음을 빼앗습니다. 강아지를 내려놓자마자 샘 근처의 1호 개 집 옆에 ‘산’을 먼저 묶었습니다. 서로 사귈 때까지 아직 어린 강아지를 해치지는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다음으로 ‘바다’를 묶기 위해 쇠말뚝을 박기 시작합니다. 내내 묶여 살지 않던 놈들이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다 생각하면서.
아궁이 근처의 2호 개 집 근처에서 한참 쇠말뚝을 박고 있는데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강아지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산’을 묶어둔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해머를 팽개치고 허겁지겁 뛰어갑니다.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금방 얻어온 그 강아지를 ‘산’이가 험하게 물어버린 모양입니다. ‘산’ 근처에서 얼쩡대다가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녀석은 4~5m 떨어진 곳의 트럭 바퀴 밑으로 깨갱대며 기어가고 있습니다. 뒷다리 두 개를 질질 끌면서 오직 앞다리로만 기어가고 있습니다. 순간 대형사고가 터졌음을 알게 됩니다.
녀석을 살펴봅니다. ‘산’의 그 큰 입과 이빨이 강아지의 척추와 배를 동시에 물어버린 것 같습니다. 뒷다리가 덜렁이고 털에 약간의 피가 보입니다. 아무래도 척추신경을 다친 것 같습니다.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와 동물병원을 찾아 전화를 합니다. 두어 곳의 동물병원에서 증상을 듣더니 수술비가 100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제부터 전하면서 대학의 수의대 동물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대학의 수의대 병원으로 전화를 합니다. 하지만 스케줄 상 수술이 열흘 뒤에나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녀석을 다시 살피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마루로 나오는데 녀석이 그 길고 높은 거리를 두 발로 기어서 내게로 오려고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 차를 타고 오면서 나를 바라보았던 그 맑은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순간 녀석의 눈을 바라보기가 너무 미안합니다. ‘산’에게 다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녀석을 흠씬 패줍니다. 다시 강아지를 봅니다. 여전히 그 유리알 같은 눈빛이 내 흔들리는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듯 합니다. 내가 시선을 피합니다. 수술 후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 비용도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라는데 어찌해야 하나?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인터넷을 뒤집니다. 60km쯤 떨어진 작은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일단 후송을 하기로 합니다. 승용차 조수석에 박스를 놓고 녀석을 뉘였습니다. 연신 가느다란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이제 나도 녀석의 눈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척추도 척추지만 복막이 터져서 얼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수술해 주세요. 그리고 가능한 녀석이 저 두 다리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세요.” 돌아오는 길, 나는 녀석을 ‘자자’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주가 지났지만, ‘자자’는 아직 다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자자’와 함께 살 것입니다.
숲 생활 3년 만에 나는 풀도 나무도 강아지도 모두 생명인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놈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그의 유리알 같은 눈빛은 아이의 눈빛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네 어른 한 분은 그 비싼 돈을 버렸다고 내게 유별나고 판단력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책망하셨지만, 나 역시 쾌히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닌 형편이지만, 돈보다 생명이 귀한 가치가 되는 시대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구할 방법이 어디 있겠냐고 외치는 놈이니 나는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책 날개 안쪽에 있는 이메일(happyforest@empas.com)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독자의 피드백 메일은 늘 즐겁고 감사합니다. 상의하실 일이 있으시면 그리로 연락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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