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세린
  • 조회 수 2262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3년 2월 18일 07시 53분 등록

 아름답구나, 그 이름 수학!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미술학원도 다녔다. 어머니께서는 초등학생이 된 딸에게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나는 피아노도 배우고, 바이올린도 배웠으며 미술도 배웠다.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가 딸에게 공부 말고 음악과 미술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 주신거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딸이 학원 간 사이 어머니는 자유시간을 누리신게 아닐까?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미술 학원에 처음 갔을 때 선생님과 어머니는 나를 옆에 앉혀 두고 상담을 끝낸 뒤 어머니는 집에 먼저 가시고 나는 한 시간 동안 남아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억에 의하면 나는 이제 앞에 앉아 4절지 하얀 스케치북 한 면을 온통 선으로 채웠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끝까지 직선을 그리라고 하셨다. 선과 선 간견은 아주 촘촘하게 그리고 선의 굵기와 진하기는 일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먼저 가로 선을 그렸다. 처음엔 조금 구불 구불 한데 그리다 보니 점점 직선이 되어갔다. 그리고 세로 선을 그렸다. 세로 선은 좀 어려웠다. 4절지 스케치북을 세로로 세워두고 했기에 가로보다 세로가 훨씬 길었다. 그렇게 선 그리기 연습을 며칠동안 했다. 물론 매일 가로 선, 세로 선을 그린 것은 아니다. 선 그리기 연습 중 생각나는 게 또 있는데, 짧게 선을 그리는데, 강약을 조절해서 그리는 연습을 했다. 시작은 진하게 그리기 위해 힘을 주고 끝은 흐리게 마무리 하는 선이었다. 

 선 그리기가 끝난 후 나는 도형을 그렸다. 사각형, 삼각형, 원, 오각형 등 평면도형을 그렸다. 그리고 난 후 입체도형을 그렸다. 육각기둥, 정육면체, 원뿔, 정사면체, 사각뿔 등을 그리고 선으로 색칠을 했다. 명암을 준거다. 입체도형이 빛을 받는 것에 따라 어떤 면은 밝고 어떤 면은 어두웠다. 그것은 그림자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입체도형을 시작하고 마무리 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불평 없이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입체 도형을 그려 나갔다. 

 뎃생을 배우면서 중간 중간 포스터도 그리고 물감을 사용하는 그림도 그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강서구에서 개최한 불조심 그리기 대회에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다. 장려상에게 주는 상품은 국어사전이었다. 나는 그 국어사전을 아주 좋아했다. 심심할 때마다 펴보고 또 펴보았다. 어머니와 나는 내가 미술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은 없었다. 피아노도 함께 배우고 있었는데, 4학년 때 나간 콩쿨에서 떨어졌어도 나는 계속 피아노를 하고 싶었다. 역시 우리 내부에는 좋아하고, 끌리는 게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외부의 보상과 상관없이 말이다. 

 입체도형이 거의 끝날 무렵 미술 선생님께서는 내게 아주 간단한 정물화를 그리게 하셨다. 벽돌, 사과, 파, 물병들이 서로 기대어 있었다. 나는 선 그리기와 입체도형 뎃생으로 단련된 실력을 가지고 실제 사물을 그리고 명암을 주고 색칠을 했다. 하지만 정물화를 그리 오래 그리진 못했다. 방배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미술학원을 그만 두었다. 이사를 오고도 5학년 때, 미술 선생님인 이모를 둔 친구와 함께 그 이모에게 미술을 배웠었다.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계속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줄리앙, 아그립빠 등 인물도 그릴 수 있었을텐데 친구 이모는 내게 그런 것을 그리게 하진 않았다. 

 미술을 배우면서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기회는 얻지 못했다. 물론, 선 그리기까지 예술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아름답다’라고 형용사를 붙여주는 예술 작품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담겨 있거나 실력이 느껴지는 것 들이다. 나 또한 정물화를 더 많이 그려냈다면 미술을 배우면서 내 그림에 감탄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내 그림을 보고 감탄하고, 놀라워해 본 적은 없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놀랍고, 감탄할 만한 것을 보려면 더 오래, 깊게 배우고 작품을 그려낼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는 선 그리기와 같은 연습을 하는 단계다. 수학의 언어인 ‘수’를 배우고, 그 수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눈다. 분수, 약수, 배수까지 배우고 올라온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수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엔 너무 기초적이다. 이런 수를 보고도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수학자가 되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중학교 때는 입체도형을 그리는 단계이다. 수학의 각 영역을 조금 심도 있게 배운다. 방정식도 배우고, 함수, 확률, 통계, 도형을 배우면서 증명도 한다. 수학의 맛을 좀 알 수 있는 단계랄까? 고등학교 때는 예술 작품을 보기 직전 단계이다. 중학교 때와는 양도 다르고 내용의 질도 다르다.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어쩌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에게 수학은 그저 어렵고, 계산해야 하고, 실생활에 필요없는 것들 뿐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면 아름다운 정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수학을 공부할 때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다. 대학 수학을 배우고 난 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수학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2100년 전에 유클리드가 증명한 ‘소수는 무한개이다’라는 정리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도대체 수학자들은 ‘소수(prime number, 1과 자기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를 좋아하고, 자신의 생애를 바치면서 까지 가장 큰 소수를 찾아내려고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다른 때 같으면 ‘대학 때 이 정리 증명보면서 어려워 했었는데.......’ 하고 말텐데 이번에는 집요하게 왜 수학자가 소수에 대해 집착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 소수가 무한개라는 사실이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라고 느끼게 됐다. 계속 몰입했더니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언빌리버블! 소수가 무한개라니! 무한? 무한의 세계?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기뻤다. 폴 호프만이 지은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라는 책은 내게 수학의 아름다움을 선물해줬다. 

 중학교 친구들에게 수학이 아름답다고 하면 뭔소리냐고 내게 야유를 보냈다. 지금까지는 내게 그런 야유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야유 앞에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상태다. 왜냐하면 아직 예술 작품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학이 아름답다는 소리가 강아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미술 전시관에서 작품이 어떤지도 모르고 휙휙 지나가는 관람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작품 하나하나에 스미어 있는 예술가의 정신과 사상을 느끼고,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관람객이 되고 싶은가? 오케스트라의 웅장하고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그 시간을 황홀하게 보내고 싶은가? 아니면 피곤에 쩔어 졸고 싶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학은 아름답다. 또 다른 예술이라고 말이다.

IP *.142.242.20

프로필 이미지
2013.02.18 19:53:01 *.194.37.13

모든 예술에 담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하나가 되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나 또한 수포자의 한 사람이지만,

세린의 글에서 수학이 아릅답다고 느낀다~^^

 

프로필 이미지
2013.02.20 07:34:51 *.51.145.193

수의 명암, 수의 입체, 수의 미술, 숫자의 음감...그리고 수학적 예술.

뭔가 짜여져 가는 느낌이야. 예술적 수학과 수학적 예술. 캬~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52 나는 청중 중심의 스피치를 하는가? [5] 샐리올리브 2013.02.04 2670
1851 #3그냥쓰기_균형감각이 중요해 [1] [2] 서연 2013.02.04 2596
1850 그림책 읽어주는 특수교사 캐릭터 [2] 콩두 2013.02.04 2748
1849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여! 어서 봄을 가져와다오 [4] id: 깔리여신 2013.02.04 4000
1848 알려지지 않은 신 12 [4] 레몬 2013.02.11 2827
1847 하늘길 원정대 [16] 콩두 2013.02.12 2283
1846 고깔모자를 쓴 미다스왕과 신라인 [1] id: 깔리여신 2013.02.12 4354
1845 #4 그냥쓰기_투자와 투기사이 [3] 서연 2013.02.12 2212
1844 마주함에 대하여 [1] 용용^^ 2013.02.12 1971
1843 말 더듬이 왕 조지 6세와 한비 [4] 샐리올리브 2013.02.12 3515
1842 서른 아홉의 행복여행 [2] 한젤리타 2013.02.12 2204
1841 이번 사건이 뭐야? [2] 세린 2013.02.12 3284
1840 권력을 쥐는 이들은 무엇이 특별한 것일까? [1] 학이시습 2013.02.12 2527
1839 알려지지 않은 신 13 [2] 레몬 2013.02.17 1985
1838 서른 아홉의 행복여행(2) - 유혹의 순간 [4] 한젤리타 2013.02.17 4155
» 아름답구나, 그 이름 수학! [2] 세린 2013.02.18 2262
1836 추락의 추억 [2] 용용^^ 2013.02.18 2335
1835 비즈니스 구루에게서 배우는 10X [3] 학이시습 2013.02.18 2536
1834 당신의 어린 시절 스피치 파트너는 누구였나? [4] 샐리올리브 2013.02.18 2085
1833 #5그냥쓰기_세번의 경험 [2] 서연 2013.02.18 2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