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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8일 10시 00분 등록

현대의 영웅에 대하여

 

유형선

 

현대의 영웅 중에서 내 가슴속 최고의 영웅은 단연코 안중근의사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독립군의 중책을 맡아 싸우시다가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분. 대학 시절 이 분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접하고서 놀랐었다. 세례명이 도마(요즘 말로 토마스)이신 천주교 신자이셨고, 여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신 위대한 평화사상가였다. 무엇보다 재판진술에서 보이신 당당함에 일본인들조차 고개 숙였다고 한다.

그대는 천주학을 믿는다고 밝혔는데, 하얼빈역에서 저격을 도모하기 직전에도 그대의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는가?”

거사를 치른다고 따로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 나는 다만 하느님께 매일 기도 드리고 있을 뿐이다.”

대학시절, 나는 안중근 의사의 재판기록을 읽으며 바로 이 대목에서 전율했다. 조국을 침략한 일제의 최고 사령관을 저격하는 날에도 따로 기도 드리지 않고 다만 어느 하루와 똑 같은 기도를 드렸다는, 거대한 태산 같은 기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힘이었을까? 감히 내 깜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지만, 분명 분노나 원망을 넘어선 단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내 마음속 영웅으로 모셨다.

 

2013, 올 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은 시작되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금식과 금욕을 시작하는 사순절의 첫 주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주일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께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여주시면서 문제를 하나 내셨다.

왜 피에타의 성모님은 예수님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끌어 안고 계실까요?”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신자들은 모두 침묵으로 신부님의 해설만을 기다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를 안는 어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어머니 왼쪽 가슴에 오도록 합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오른손잡이 혹은 왼손잡이는 무의미 합니다. 7 8할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왼쪽 가슴으로 가도록 안습니다. 바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머니 자궁에서 늘 듣던 바로 그 소리,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더 잘 들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신부님의 설명은 이어진다

피에타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끌어 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이상 성모님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예수님,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외에도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모든 피에타는 모두 성모님의 오른쪽으로 머리를 둔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처 몰랐던 교회의 상징체계를 배운 것에 탄식하면서도 다음의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피에타의 성모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관객인 우리들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려고 우리들의 왼쪽 가슴 방향으로 예수님을 끌어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심장소리가 울려 퍼질 때 만이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있는 것 아닐까?’

 

현대의 영웅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본다. 학창시절부터 품어 왔던 나의 영웅 안중근 의사와 피에타의 예수님이 끊임없이 주변을 맴돈다. 두 분의 연결지점을 설명할 혜안이 아직 내게는 없다. 나 같은 범인이 감히 안중근 의사의 지조와 절개를 흉내 낸다는 것은 분명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오늘 미사에서 내 앞에 쓰러진 예수님을 성모님으로부터 내가 받아 안고서 내 심장소리를 듣게 해드려야 한다는 마음은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은 구원을 위한 투쟁이라고 밝히고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작품에서 내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았다. (중략)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의식하게 된 내 글쓰기의 목적은 크레타와 선과 빛을 최선을 다해 도와서 이기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 작품의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이었다[1]

 

이 구절을 읽으며 마치 먼 훗날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히는 대목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평생 이끌어주시는 예수님과 내 마음속 영웅 안중근 의사. 이 두 분을 가슴에 품고 내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내가 가야 할 길를 찾아 올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린다.

 

 

2013-02-17 坡州 雲井에서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628-629

IP *.221.5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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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17:54:03 *.62.167.27
형선님은 이미, 개인적 글쓰기를 넘어 시민적 글쓰기로 가고 계십니다. 안중근의사의 재판기록까지 보셨다니....감동이네요. 좀더 좋은 세상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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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22:31:55 *.62.164.220
개인적 글쓰기는 무엇이고 시민적 글쓰기는 무엇인지요? 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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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21:40:20 *.68.48.63

유~~유유히 걸어가다 보시면

형~~형선님이 원하는 길로 가시는 자신을 발견하실 거니다.

선~~선택은 늘 자신의 자유의지가 있으니까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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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0 21:59:35 *.62.167.48
앗! 감사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 제 자신에게 기대어 가보겠습니다.무수한 에너지들이 겹쳐 제가 존재한다고 믿으니까요. 힘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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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1 23:45:04 *.100.185.237

'도마'가 호가 아니라 세례명이었군요.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

형선님의 진지하고 성실한 모습에 늘 감탄이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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