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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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영웅에 대하여
유형선
현대의 영웅 중에서 내 가슴속 최고의 영웅은 단연코 ‘
“그대는 천주학을 믿는다고 밝혔는데, 하얼빈역에서 저격을 도모하기 직전에도 그대의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는가?”
“거사를 치른다고 따로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 나는 다만 하느님께 매일 기도 드리고 있을 뿐이다.”
대학시절, 나는
2013년, 올 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은 시작되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금식과 금욕을 시작하는 사순절의 첫 주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주일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께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여주시면서 문제를 하나 내셨다.
“왜 피에타의 성모님은 예수님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끌어 안고 계실까요?”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신자들은 모두 침묵으로 신부님의 해설만을 기다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를 안는 어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어머니 왼쪽 가슴에 오도록 합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오른손잡이 혹은 왼손잡이는 무의미 합니다. 7할 8할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왼쪽 가슴으로 가도록 안습니다. 바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머니 자궁에서 늘 듣던 바로 그 소리,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더 잘 들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신부님의 설명은 이어진다
“피에타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끌어 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이상 성모님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는 예수님,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외에도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모든 피에타는 모두 성모님의 오른쪽으로 머리를 둔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처 몰랐던 교회의 상징체계를 배운 것에 탄식하면서도 다음의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피에타의 성모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관객인 우리들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려고 우리들의 왼쪽 가슴 방향으로 예수님을 끌어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심장소리가 울려 퍼질 때 만이 예수님은 부활하실 수 있는 것 아닐까?’
현대의 영웅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본다. 학창시절부터 품어 왔던 나의 영웅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은 구원을 위한 투쟁이라고 밝히고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작품에서 내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았다. (중략)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의식하게 된 내 글쓰기의 목적은 크레타와 선과 빛을 최선을 다해 도와서 이기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 작품의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이었다[1]
이 구절을 읽으며 마치 먼 훗날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히는 대목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평생 이끌어주시는 예수님과 내 마음속 영웅
2013-02-17 坡州 雲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