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있는 장면은 ‘검은 돌이 물 위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넓은 바다 위를 둥실 떠다닌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다. ‘돌은 물에 가라앉는데, 내 꿈속의 돌은 가라앉지도 않고 둥실 떠오르는 것일까’ 하고 의문에 사로잡혔다.
‘수정이나 돌이 자기의 상징으로 특히 적합한 것은 바로 수정이나 돌이 지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성질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기'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정한 자아쯤으로 인식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돌은 영원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꿈속에서의 돌은 길에 나뒹구는 그런 돌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성들여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게 닦아놓은 것 같았다. 검은 보석처럼 빛났다. 이 꿈을 머릿속에 품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해석해보려고 노력했다. 꿈을 믿지는 않지만 이 꿈에 대해서는 애착을 가지고 나름 어떤 좋은 해석을 내리고 싶었다.
꿈을 꾼 시기와 비슷하게 ‘카를 구스타프 융’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쓴 책 ‘인간과 상징’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간략하게나마 꿈의 분석에 대해 적고 있다. 융은 무의식의 세계, 꿈에 대한 분석과 연구로 평생을 바쳤다. 융은 평생 동안 8천 가지의 꿈을 분석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누가 현실성 없는 말을 하면 ‘꿈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융이 밝힌 꿈은 그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며, 그 꿈속에는 신화의 상징성과 원시시대의 의식과 민족성과 그 사람의 과거까지도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나’라는 존재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수만 년 전의 유전자를 포함한 그들이 가졌던 생각과 의식까지도 내 안에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다.
융은 이에 대해 “인간은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면서 천천히 아주 힘겹게 의식이라는 것을 계발해왔다. 게다가 인간 마음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기에 이 진화의 역사는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다. 우리의 의식은 지금도 조용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깨어 있을 때 우리가 다루는 관념은 언뜻 보면 정확하고 잘 통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만큼 정확한 것도 잘 통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융은 ‘인간이 무엇을 완전하게 지각하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볼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의 주체가 얼마나 멀리까지 볼 수 있는지 얼마나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지 촉감으로 무엇을 알게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맛보는지는 그가 지닌 감각의 양과 질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우리 인간의 인지능력과 사고는 불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그런 구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것 같다.
‘인간과 상징’에서 다행히도 어떤 남자가 꾼 꿈이 소개되었다. 암곰이 검은색의 둥근 돌을 갈고 있는 꿈이었다. 이와 같이 분석해 놓았다. ‘암곰이 갈고 있던 검은 계란 꼴 돌은 꿈꾼 사람의 가장 내적인 존재, 즉 거의 진정한 인격을 상징하는 듯하다. 유럽의 많은 곳에서는 나무껍질에 싸인 채 동굴 속에 감추어져 있던 거룩한 돌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돌은 석시 시대의 인류가 신성한 힘을 가진 것들이라고 믿고 감추어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둥근 돌은 ’자기의 상징‘이라고 했다. 내 꿈속의 돌은 네모난 돌인데....
암곰은 열심히 돌을 갈고 있다. ‘돌이 연마되면 거울처럼 빛난다. 돌이 빛나면 곰은 자기의 모습을 그 돌에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이란 이 세상을 접촉하고 이에 따르는 고뇌를 수용해야 영혼을 하나의 거울로 변용시킬 수 있고, 그 거울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이미 돌을 갈아서 네모꼴을 하고 있으니 돌을 거울삼아 자신을 알아나가라는 뜻인가?
꿈 이미지에서 ‘거울은 개인을 객관적으로 비추는 무의식의 힘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거울을 통해서 꿈꾼 사람은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한다. 사람은 무의식을 통해서만 이러한 관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울은 메두사의 모습이 비친 페르세우스의 방패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메두사는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페르시우스는 메두사를 직접 보지 못하고 아테나 여신에게 빌린 방패로 비추어 볼 수밖에 없었다. 불가에서는 우리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여 거울에 먼지와 깨가 끼지 않도록 잘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난 이미 돌을 갈아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게 만들어두었으니 거울과 같아 어떤 사물을 비출 수 있는 그런 돌이다.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여, 말하자면 나의 무의식의 세계가 가지는 무한한 힘을 믿고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를 추진하여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중세 연금술사들이 말하는 ‘현자의 돌’을 떠올려 본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물질을 통해 신, 혹은 신의 기능을 알아내고자 했으며 그것이 ‘현자의 돌’에 현시되어 있다고 믿었다. 현자의 돌은 그 자체가 '가장 완전하고 불변불멸의 물질'이며, 게다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효과를 지닌다고 여겨졌다. 현자의 돌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를 가져오는 금의 한 종류, 다른 사람에게는 불로불사의 만병통치약, 성실한 연구자에게는 신의 지혜를 상징했다. 어떤 연금술사는 그들의 진짜 목적이, 완전한 인간을 향한 승화에 있다‘고 보기도 했다.
현자의 돌에 대해서 고대 아리비아의 연금술사 모리에누스는 “현자의 돌은 그대들의 내부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대는 바로 이 돌의 소재인바 그대 속에서 이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대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이 돌의 사랑과 존귀함이 그대 속에서 자랄 것이다.”라고 했다. 현자의 돌이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돌을 꺼집어 내어 쓰는 것이 무의식의 발현이요, 내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것이다.
내 꿈을 분석하자면 앞으로 자신을 좀더 연마하여 변모를 거듭하다보면 검은 돌처럼 빛날 것이다. 빛나는 돌은 언젠가는 대중들이 알아볼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쉬지 말고 노력을 거듭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꿈보다 해몽인가?
융은 꿈에 대해 ‘우리는 위험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리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이를 깨닫지 못해도 무의식이 깨닫는 수도 있다. 무의식은 꿈을 통해 그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꿈은 이런 식으로 자주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다.’고 했다. 꿈을 통해 보내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무시하지 말하는 융의 경고의 말이 조금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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