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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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인도 주정부가 지난 9월부터 진행해온 저희 프로젝트를 취소시키고 재입찰 공고를 내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유조차 분명치 않은 억지 결정이어서 더욱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사소한 문제로 인해 최종 서명이 미뤄지긴 했지만 이렇게 계약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결정이 내려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뜨거운 날씨, 전혀 다른 음식, 낯선 문화와 사람들, 그 속에서 땀 흘리며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에 마음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터넷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사건의 피해자인 저희들에게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발 없는 말은 네트워크를 타고 천리를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하며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고마운 연락도 있었지만,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월별로 대금결재를 해온 렌트카 업체는 갑작스럽게 청구서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찾아왔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 걱정의 대상이 우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몇 달째 이용해온 호텔의 매니저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묻습니다. 가능하면 호텔 비 계산을 서둘러줬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팀 내부에서도 갖가지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황망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만 피워댑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여 날 선 분노를 토해냅니다. 불안한 모습으로 어떻게 해야 좋겠냐고 이리저리 들쑤셔서 다른 사람마저 불안에 휩싸이게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물론 반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동료들을 다독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시절에는 모두 좋은 동료요 친구였는데, 문제가 터지고 보니 함께 하고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금새 드러납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으로 버스를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짐 콜린스의 이야기가 끈덕지게 머리 속을 휘젓습니다. 정말 그의 말이 정답일까요? 폭풍처럼 몰아치는 혼란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주제넘게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질 즈음, 화살이 제 자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어려울 때 함께 하고픈 사람인가? 작은 질문이 끊임없이 맴도는 하루입니다.
*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상황과 소송 준비 등으로 인해 오늘도 편지가 늦었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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