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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은 정조가 승하한 후 정치적 음모의 희생자가 되어 유배 되었습니다. 해배의 기약도 없이 시작된 유배 생활은 그 후로 18년간 이어졌습니다. 그는 유배 초기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달 들어서는 공사간에 슬픔이 크고 밤낮으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이 어인 신세인고. 더 말하지 않기로 하자”며 당시의 힘듦과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로 인한 분노와 삶에 대한 회한이 그를 덮쳤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산은 유배 시절 처음 4년간을 기거한 초라하고 낡은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적어 두었습니다.
“생각은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엄숙함이 엉기도록 해야 한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만다면 곧바로 그치게 해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후중해야 하니 후중하지 못하다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 방의 이름을 네 가지를 마땅하게 해야 할 방(四宜之齋)이라고 했다. 마땅함(宜也者)이라는 것은 의(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니 의(義)로 규제함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염려되고 뜻을 둔 사업이 퇴폐됨을 서글프게 여기므로 자신을 성찰하려는 까닭에서 지은 이름이다.”
다산의 말씀이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성찰한 다산을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불행한 운명을 세상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다산의 학문과 사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위기를 성찰의 장으로 만들었고, 분노와 억울함으로 스스로를 소모하는 대신에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를 키웠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덤으로 삼을 만한 유배지에서 학문 연구에 매진하며 자신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한 편지에서 가문이 폐족이 되었으니, ‘보통집안 사람들보다 100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을 거라며 두 아들에게 학문 수련을 독려합니다. 그리고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습니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왜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으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지식과 이론에 통달한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으냐. 꺼릴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게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진심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갖는 것이다.”
편지의 내용이 가슴 깊이 들어오는 이유는, 유배지에서 겪은 고충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은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 아들에게 말한 엄격하고 간곡한 당부가 마치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치 내게 주시는 맑은 약수 같은 가르침으로 들어옵니다.
* 박석무 저,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2003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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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농업관련 책을 내느라 나름 마음의 여유는 없었지만 무척 행복했다.
2권의 책과 함께 2011년을 열어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 푸근하고 기대도 된다.
농(農)에서 방향을 찾으려고 하는지라
이 번 방학동안에는 정약용 선생님 연구에 투자하련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글 감사
2008년도에 정약용에 대한 작은 연구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데 이 번에는
상생하는 농(農)의 방향에 대해 깊이있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
어제도 밤 늦은 시각에 충주엘 농업인 연수에 다녀왔는데 그 분들의 겸허함에...
늦은 시각 행복한 충만감으로 고속도로를 달려왔다.
언제 시간나면 만나고 싶네. 단군의 후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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