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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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담긴 뜻이 정확하다면 몇 주째 저를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의 정체를 슬럼프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명치 한가운데를 묵직한 바위의 뾰족한 모서리가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국을 떠나 멀리 인도까지 오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과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번 마음 편지를 보내고 나서 여러 통의 답장이 바다를 건너 날아왔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답장을 쓰지는 못했지만 응원과 기도가 담긴 편지들에서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편지를 쓰지만 더 많은 것을 얻는 쪽은 언제나 저입니다. 감사한 그 편지들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인도에 머물고 있던 영국인들은 객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골프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훼방꾼이 나타났습니다. 골프장 주변의 원숭이들이 필드에 떨어진 공을 집어서는 엉뚱한 곳에 내려놓곤 했던 겁니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였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원숭이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규칙이 바로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입니다.
이 규칙은 뜻밖의 효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공을 원숭이가 잡아서 홀컵에 넣어주는 행운을 맛본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홀 가까이로 날린 공을 집어다가 물 속에 빠뜨리는 불운을 겪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행운과 불운의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겠지요. 영국 사람들은 그 골프 경기 속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들은 아마도 삶 또한 원숭이가 훼방을 놓는 골프 경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삶의 모든 부분을 계획하고 조절할 수는 없다는 것을, 때때로 원숭이가 공을 집어서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는 것이 인생임을 말이죠. 그렇다면 불가항력과도 같은 어려운 난관 앞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계속해나가야겠지요?
이제 날이 밝으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정리하고 귀국하는 거냐고요? 천만에요. 아직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리기 전이거든요. 가능하면 홀에서 가까운 곳에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겁니다. 홀 근처에 바나나를 늘어놓아보는 건 어떨까요? 응원해주실 거죠?
* 이 글의 원숭이와 골프장 이야기는 류시화씨의 인도 여행기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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