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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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암으로 와병 중이셨던 마을 어른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내일 상여 메러 내려와!” 동네에 애사가 발생했을 때 서로 도와 장례를 치르는 일을 주관하는 마을의 연반계 총무 형님으로부터 짧은 전언을 받았습니다. 상여를 메라 하시는 걸 보니 이제 나도 이곳 사오랑마을의 한 사람으로 여겨주시나 봅니다. 나는 어떤 주저도 없이 “예. 형님”하고 대답했습니다. 나이 들면서 문상을 하는 일이야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릴 적 꽃상여에 긴 장례행렬을 본 경험 역시 또렷하지만, 세상이 변한 요즘 상여를 메는 일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해본 적도 없는 상두꾼 일을 즉각 “예. 합지요.”하고 대답하는 내가 스스로 신기해서 빙긋이 웃음을 짓습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을 가는 것도 불편해 하던 사람입니다. 군 전역 직후 막역한 친구의 선친을 보내드릴 때, 관을 운구하고 하관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지만 장사의 마지막 의식을 수행하는 일을 흔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숲에 살면서 달라졌습니다. 나의 책 <숲에게 길을 묻다>에서도 ‘죽음’이라는 장을 길게 다루었지만, 숲에 서면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임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매일 태어나고 꽃피고 열매 맺고, 죽어가는 생명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자연주의적 관점이 생겨났습니다.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침 9시. 마을 입구에는 이미 상여가 도착해있었고 떠나는 분과 상주들이 슬픔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근처 다른 한 켠 모닥불 주변에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출발을 기다리며 서있었습니다. 내게는 가장 큰 무게감을 느낀다는 상여의 가운데 자리가 배정되었습니다. “오호오~ 오호오~!” 요령잡이가 요령을 치며 선소리를 하자, 상여가 박자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마냥 서있던 나의 다리도 느닷없는 상여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박자에 무딘 나지만 금새 알아차리고 발을 그 박자에 맞추어 움직입니다. 요령잡이의 선소리와 상여꾼들이 후렴처럼 외치는 “오호오~ 오호오~!”를 포함한 만가(輓歌) 전체는 아주 느린 네 박자였습니다. 그것은 상여꾼 모두가 만가의 흐름을 따라 발을 맞추라는 요령잡이의 요청이었습니다. 만가는 그래서 옛날 상두꾼 노릇을 했던 천민들의 노고를 쓸어 내리는 노동요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만가(輓歌)를 이끄는 요령잡이는 이 동네가 고향인 50대의 대학교수입니다. 장례가 있을 때마다 그는 고향으로 달려와 요령을 잡고 만가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공과대학의 교수라는 점, 서른 아홉에 처음 요령을 잡았다는 점 등을 전해 듣고 참 특별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읊조리는 만가는 썩 구슬펐습니다.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만가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조물주에게 망자의 죽음을 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망자의 지난 삶을 구슬피 노래하는 대목에서는 상주들의 곡소리가 커졌습니다. 망자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고향의 산천과 들녘을 바라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참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의 배경이었던 언덕과 숲과 개천과 들판을 망자가 요령잡이를 통해 관 속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어느새 망자가 되어 주변의 산천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 쌓인 겨울 숲이 시리게 아름답고, 굽이치는 길과 밭둑이 느리고 고요하게 무심한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맑은 하늘 따스한 햇볕도 이제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만가는 구슬프지만 또한 묘한 경쾌함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삶이 무상하다는 것, 그 무상함을 안다면 화해하지 못할 것, 내려놓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절묘한 가벼움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저 양반이 요령을 놓는 날, 내가 요령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피고 지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위한 선소리를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엉뚱하지만, 무척 강렬하게 그런 생각이 피어 올랐습니다.
(저는 이 경험의 시종을 몇 번 더 편지로 연재하려 합니다. 단번에 압축할 재주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상여를 메고 장례의 끝을 경험하면서 나누고 싶은 생각이 조금 더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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