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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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장지에는 이미 포크레인이 하관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려놓은 일회용 상여는 그 자리에서 불태워졌고, 망자가 누워있는 좁다란 관은 넓게 터를 닦아 놓은 무덤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상주와 가족들 중심으로 땅의 신에게 간단한 제를 올린다. 하관이 시작되면 이제 망자는 영원히 땅으로 돌아갈 것이고, 땅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족들은 지금 싸늘한 시신조차 더는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을 영원한 작별 의식을 감당하는 중이다.
나는 하관을 하고 봉분을 만들기 전 땅을 다지는 요원을 자청했다. (땅을 다지는 연장을 달구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그 행위 전체를 달구라고 부른다) 요령잡이에 대한 매력을 강하게 느낀 나는 달구 요원이 되어 장례의 마지막까지도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관을 하지 않고, 탈관을 한다. 그것은 관을 모두 해체하여 땅 속의 바닥으로 깔고, 온전히 곱게 염을 한 망자의 시신을 드러내어 땅에 그대로 매장을 하는 것이다. 내가 궁금해서 어르신을 붙들고 “탈관 매장의 문화가 마을의 풍습인가요?” 여쭈니, 우리 마을은 많은 집에서 그렇게 해왔다고 한다.
나는 놀랍고 반가웠다. 우리 문화에서는 죽음을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본 것이 아주 오래되었다. 그래서 석관이나 미이라 같은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탈관을 해서 매장한다면 훨씬 생태적 부담을 줄이고 최대한 빨리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 아닌가!
여하튼 그렇게 망자가 흙으로 돌아갈 자리를 잡은 뒤, 가족들이 조심스레 삽을 들어 고인의 몸 위로 한 삽씩의 흙을 덮었다. 시골집을 지킨 그 형님의 눈시울과 얼굴이 붉어진다. 다른 이들도 깊은 침묵 속에서 흙 한 줌씩을 덮었다.
기다리고 있던 포크레인이 시동을 건다. 쌓아둔 흙을 몇 바가지 옮겨 고인을 덮는다. 요령잡이가 다시 요령을 치고 나와 몇몇은 달굿대를 집어 들고 빙빙 돌며 땅을 다진다. 요령잡이의 구슬픈 만가가 이어지다가 숨표의 박자에 이르면 우리는 달굿대를 서로 부딪히며 “에헤 달구요”를 후렴처럼 외친다. 그 소리가 마치 ‘애닯어요’를 합창하는 소리처럼 먼 산으로 퍼져나가다가 소멸하며 만가로 이어진다. 내게는 이 반복적인 과정에서 슬픔이 소리를 만나 씻겨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령잡이는 다시 망자의 입이 되어 유가족들을 하나하나 부른다. 한 명씩 나와 금줄에 노자를 얹고 절을 한다.
나는 요령잡이가 부르는 만가의 내용이 상여를 옮기던 때의 내용과 사뭇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아들과 며느리와 딸과 사위, 손자와 손녀, 조카 등 모두에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기를 당부하는 내용이 그 골간을 이루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유가족들에게는 화해를 촉구하는 내용이 만가로 흐리기도 했다. 시골집을 지키던 그 총각 형님에게는 그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고향을 지킨 것을 치하하고 있었다. 마침내 평소 그렇게 투박했던 형님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하지만 평소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조카는 자신이 호명되고 화해하고 용서하라는 만가를 듣자 끝내 절하지 않고 나의 오두막 쪽으로 달아나듯 사라져버렸다. 나야 그 속 사정을 잘 모르지만, 무엇이 이 마지막 앞에서도 화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싶어지며 슬퍼졌다.
투박한 그 형님은 가난과 배우지 못해 겪어야 했던 결핍과 상처와 분노와 원망을 눈물로 씻어내렸다. 한 사람의 저승길 행차 속에서 동네사람들은 자연스레 결속을 다졌고, 수많은 다른 개인들은 내가 그랬듯 자연스레 자신의 현재를 생각했다. 아직도 화해하고 내려놓을 수 없는 조카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여를 메던 날 나는 만가를 녹음해 두었다. 벌써 3주가 넘었다. 이따금 나는 그 녹음된 소리를 듣고 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내게 묻는 시간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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